문화/생활

민희가 덧셈을 시작한 건 여섯 살이 되던 해 이른 봄이었다.
설날에 선물로 들어온 사과와 배, 귤을 가지고 언니는“사과 하나에 사과 하나를 더하면 사과 둘!” 또는 “귤 세 개에 귤 두 개를 더하면 귤 다섯 개!”라고 손가락을 꼽으며 민희에게 덧셈에 대해 설명했다. 네 살 터울의 오빠를 둔 덕분에 또래보다 한글을 일찍 깨친 민희는 곧 ‘13+11= 24’
처럼 손가락 열 개를 꼽아 가며 셈할 수 없는 복잡한 덧셈까지 깨쳤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길거리에 보이는 한글 간판의 글자를 속속들이 읽어 내는건 민희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하지만 한글에 익숙해진 민희는 점점 간판이 아닌 동화책의 한글 속에 빠져들었다. 민희는 쉽게 싫증을 느끼는 편이라, 여섯 살 여름이 되기도 전에 덧셈이 아니라 뺄셈까지 배우고 싶다고 엄마에게 노래를 불렀다.
“여섯 살밖에 안된 꼬마한테 그렇게 일찍 수학을 가르쳐도 돼?”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언니를 바라봤다. 하지만 언니는 그게 ‘수학’이 아니라 ‘산수’라고 정정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옆집 민준이는 벌써 구구단도 외는데, 뭘.”
“뭐?”
“내가 더 놀랄 만한 얘기 해 줘? 민준이는 구구단도 영어로 외우잖니. 영어 유치원에서 배웠대.”
민준이가 다니는 영어 유치원에선 민준이를 ‘찰스’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찰스’이면서 동시에 ‘민준’이인 여섯 살짜리가 구구단 카드를 들고 영어로 구구단을 외우는 모습이 나로선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뺄셈 한번 가르쳐 봐. 미래의 선생님이 조카 상대로 연습 좀 해보라고. 교대는 괜히 다니니? 이런 게 다 생활 속 교육이야.”
그렇게 민희에게 뺄셈을 가르치는 일은 내게 맡겨졌다. 그런데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덧셈을 빨리 배우던 민희는 뺄셈의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민희는 뺄셈이 싫어. 사라지잖아. 민희는 없어지는 게 싫어.”
여섯 살짜리 내 조카가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라는 걸 나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민희가 네 살 때, 그 애는 변기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잘 가, 응가야. 나중에 또 만나~ 언니가 또 보러 올게. 안녕!”
‘안녕’을 외치며 민희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민희가 ‘변기 레버’ 누르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자기 몸 밖으로 나온 것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아동심리학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내 조카는 모든 사물을 의인화하고, 친구처럼 여기는 아이였다.
나는 숫자나라 친구들을 어떻게 만나고, 또 그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하고 예를 들어 줘야 했다. 민희는 다행히 덧셈만큼 뺄셈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희와 버스정류장 근처를 걷게 되었다. 우리는 마트에 가는 길이었지만 민희는 버스를 바라보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모. 우리 설날에 할머니 집에 가는 거지?”
민희는 공릉동에 가는 버스와 미아리에 가는 버스를 가리켰다.
공릉동엔 할머니가 사는 집이있었고, 미아리는 작은엄마가 사는 집이 있었다. 민희가 내게 조잘대다가, 막 정류장을 향해 들어오는 ‘110-1’버스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모, 저건 어디로 가는 버스야?”
“글쎄. 종암동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110-1번은 이모도 처음 보는 번호인데?”
나는 민희에게 ‘백십 다시 일 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민희가 나를 보더니 깔깔대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이는 배를 움켜쥐더니 “이모는 바보야!”라고 몇 번씩 중얼대며 볼이 발개지도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저게 어떻게 110-1번이야 저 버스는 109번이지. 이모는 멍충이. 히히. 저 버스에는 뺄셈이가 붙어 있잖아.”
민희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한글을 배우던 아이의 눈에 세상의 모든 간판은 동화책이었고, 덧셈을 배우던 아이의 눈에 세상의 모든 숫자는 합해지는 것이더니, 이젠 뺄셈 속에 빠져 있는 아이의 눈엔 버스 번호마저 뺄셈 기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정말이네! 이모가 바보였네. 너 정말 뺄셈 좋아하는구나.”
나는 110-1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민희. 만약에 지금 2013-1 버스가 지나가면 그건 몇 번이지?”
“2012번!”
민희가 대답했다.
“그래. 넌 뺄셈의 천재야! 이제 곧 2012년이야. 꼭 기억해 둬!”
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그랬는데, 떡국 한 그릇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거래. 그건 덧셈이지?”
앞니가 빠진 민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버스 한 대가 또 지나갔다. 2011년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글·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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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