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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틀 벗으면 창의적 리더 될 수 있어요




지난해 11월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산업 전시회 ‘지스타(G-스타) 2011’에는 수많은 게임 마니아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역대 최대 규모인 28개국 3백74개사가 참가한 가운데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은 곳 중 하나가 ‘식스웨이브스 롤랩스(6waves Lolapps)’다.

지난해 6월 홍콩의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 ‘식스웨이브스와’ 미국의 게임 디벨로퍼 ‘롤랩스’가 합병하여 만들어진 소셜게임 제작, 서비스업체다.

최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보급과 더불어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소셜게임은 한 게임의 사용자가 1천만명에 이르고,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식스웨이브스 롤랩스는 ‘레이븐우드 페어’ ‘레이븐스카이 시티’를 앞세워 연간 8천만~1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소셜게임업계 선두인 징가에 이어 ‘넥스트 징가’로 주목받는 유망기업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식스웨이브스 롤랩스 본사에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이 유학생 출신 박형철(30)씨다. 온라인으로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분한 목소리를 듣다 회사 내에서 촬영했다는 그의 사진을 받아보았다. 헉! Mr. 뽀빠이? 만화스러운 그의 사진과는 달리 누구보다 한국스럽고 자랑스러운 청년이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콘셉트 아티스트(Concept Artist)란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게임 디자이너들이 게임 내용을 글로 제작하면 그것을 시각화(Visualization)하는 작업입니다. 굉장히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작업이죠. 현재 ‘레이븐스카이 시티’ 게임 팀에 속해 있습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부친은 30년째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시고, 어린 시절엔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머니께서 가정도우미 일도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기억에도 어머니가 일하시던 집에서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살 아래 남동생은 고졸 학력만으로 취업해 제 유학시절 월급을 쪼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착한 동생!).”

넉넉지 않은데 ‘사교육이 필수’란 미대를 졸업한 건 대단합니다.
“홍익대 판화과 99학번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동네 미술학원에 다니게 됐고, 그때 제게 붓 잡는 법부터 연필 잡는 법까지 가르쳐주시던 선생님 덕분에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겐 둘도 없는 은사님이세요.”

미국에 가게 된 계기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대학 졸업 후 미국 서부 지역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시는 사촌누나와 매형으로부터 학원 일을 도우면서 어학연수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여러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제껴두고 건너왔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으로 간 건?
“사실 미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모든 계획이 백지가 됐어요. 학원 일도 어학연수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동네 아이들 미술 가르쳐주며 생활비 정도나 간신히 해결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러던 중 제가 있던 곳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Academy of Art University’라는 미술대학이 있다는 걸 알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상 후반작업 분야인 ‘비주얼 이펙트(Visual Effects)’를 전공했는데, 1년 반 후 ‘비주얼 디벨럽먼트(Visual Development)’로 전환했습니다. 비주얼 디벨럽먼트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영화 등에서 콘셉트를 잡고 스토리보드를 제작하는 등의 보다 창의적인 분야입니다.”

전화위복이 되었군요. 그러면 학비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미술 과외를 통해 많은 부분 해결했고, 가발가게 파트타이머로도 일했습니다. 돌이켜보면 20년 노하우를 가진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이런저런 노하우를 들었던 것이 미국이란 사회를 이해하고 또 다른 면을 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럼 식스웨이브스 롤랩스에 취업이 된 것은 언제쯤?
“2010년 5월 졸업하고 6월 제안을 받아 7월 20일부터 출근했습니다. 그 무렵 페이스북의 소셜게임 시장이 굉장히 커지고 있어서 일자리가 많았죠. 제가 가진 크리에이티브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긴 했어요. 사실 저를 설명할 때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손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좋아요.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분명 어떤 분야에서건 탁월함과 창의력을 가진 리더가 될 거라고 전 확신합니다.”

한국인은 회사 내 혼자이신가요?
“현재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저 혼자입니다. 픽사(Pixar)의 아티스트로 있다 제가 속한 팀의 아트디렉터로 있는 글렌 김(Glenn Kim)이란 한국 동포가 한 분 더 있습니다. 열 살에 이민 온 분인데, <니모를 찾아서> <벅스 라이프> <토이스토리3> 등에 참여한 베테랑입니다.”

젊은 후배들이 같은 길을 걷고 싶어한다면?
“비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고 믿어요. 물론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지만 제 경험으로 그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만약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면, 그게 돈이 되든 안 되든, 요즘 대세가 어떻든, 사람들이 선호하든 말든, 차근차근 그 재능을 키워나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수없이 많은 상황과 사람들의 말에 휘청거리는 시간들을 겪었어요. 그런데 결국 가장 큰 무기는 조급해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쌓아올리고 내가 즐기고 잘하는 것을 하는 것이더라고요. 세상이 원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꾸준히 그 재능을 가꿔나가길 바라요.”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미래를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요.
“어려운 아이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프리카 아이들도, 북한에 있는 아이들도 창의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세상의 인정을 받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단 한명이라도 그것을 발견하고 개발해 그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다면 제 삶이 의미 있게 끝맺지 않을까요.”

글ㆍ박경아 기자

박형철 개인 미디어 : 페이스북 hanspark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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