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들라면 역시 고생 끝에 만든 <명성황후>지요. <명성황후>가 낳은 ‘옥동자’격이 <영웅>입니다. 이 둘은 우리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몇 십 년이 되어도 이 작품들이 공연되고, 후세에 전해 줄 한국 뮤지컬의 전설, 문화유산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12월 6일부터 <영웅>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뮤지컬 연출가인 윤호진(63)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를 만났다.
윤 대표는 1995년 12월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한 ‘대한민국 뮤지컬 1세대’다. 비극의 역사를 재조명해 명성황후를 우리 가슴에 불러일으키고, 이어 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조국애를 다룬 <영웅>을 선보인 그는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대부’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가 연출한 <명성황후>는 그동안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등지의 무대에 오르며 대한민국 뮤지컬 수준을 세계에 알렸다. 지난 8월에는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영웅>이 선보였다. 세계 속의 한국 뮤지컬 현 주소를 말하기에 윤 대표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역사적 소재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제대로 알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쓰여진 역사’를 ‘살아 있는 역사’로 움직여 보고 싶었습니다. 결국 뮤지컬 <명성황후>로 인해 명성황후는 살아 있는 역사로 거듭났습니다. 뮤지컬을 통해 역사적 교훈에 감동까지 더해진다면 우리 가슴속에 더욱 깊이 남을 수 있지 않겠어요?
뉴욕에서 <명성황후> 공연을 할 때 유대인 할머니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명성황후>를 보면서 일본과 한국만 본 게 아니라 유대와 나치를 보았고 모든 강국과 약국을 보았다.’ 그 말에 한편의 역사적 뮤지컬이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 세계 속의 한국 뮤지컬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요.
“역사는 짧지만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급성장하는 추세에 있어요. 연간 공연되는 작품 수가 일 년에 1백50편 이상이란 건 세계적으로도 다작(多作)에 속합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경우 1년에 열편 정도 신작이 나오고, 롱런으로 이어져 살아남는 것은 한두 편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생존이 어렵죠.
물론 한국 뮤지컬이 모두 퀄리티가 높다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 수준 이상으로 뮤지컬을 제작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입니다. 한국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고, 특히 아시아 최고입니다. 일본보다 10년, 중국보다 20년 이상 앞서 있죠.
뮤지컬은 콘텐츠와 더불어 음악과 춤, 연기, 무대디자인 등 볼거리가 풍성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뮤지컬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뮤지컬 한류’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뮤지컬이 급성장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은 흡인력이 높은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한류가 가장 먼저 형성된 것이 드라마란 점을 보면 그렇죠. 그리고 K팝이 뒤따랐는데 스토리라인에 노래와 춤이 이어진 형세죠. 춤이란 것도 그래요. 민속무용이야 전 세계에 아주 많지만, 발레나 궁중무용 등 춤이 발달한 나라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또 한국인이 예로부터 ‘가무에 능한 민족’이란 점도 작용했을 겁니다. 비보잉도 흑인춤이지만 지금 한국의 비보이들이 전세계를 주름잡아요. 그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모여 한국이 뮤지컬을 잘 만들 수 있는 재능으로 발달했다고 봅니다.”
‘뮤지컬 한류’의 미래는 어떨까요.
“지금 K팝이 전 세계에 파급되며 한류의 중심이 되고 있어요. 대중음악보다 한 차원 높은 뮤지컬과 같은 고급 공연문화가 전파되면 그 생명력이 몇 십 년씩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명성황후>만 해도 벌써 17년째 공연이 이어져 20년을 바라보고 있고, <영웅>도 3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뮤지컬 한류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지닌 한국의 문화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뮤지컬을 해외 무대에 올리기까지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요.
“몇 차례의 엄청난 어려움을 감수하고, 때론 불가능한 상황을 이겨내고 얻은 결과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제작비입니다. 고품격의 뮤지컬을 제작하다 보면 전회 매진이 되어도 적자입니다. 따라서 기업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뮤지컬이란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고급문화입니다. 세계 일등상품들을 만들어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충분한 문화적 기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한국 뮤지컬의 해외공연 지원에 정부와 기업 모두 관심을 두셨으면 합니다. 경제만 세계 10권 안에 드는 나라가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10위 안에 드는 나라가 되어야 국가 경쟁력이 더욱 공고해질 겁니다.”
‘뮤지컬 한류’를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재정지원은 물론이지만 음악과 춤, 연기, 외국어 등 뮤지컬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필요합니다. 노래가 포함된 뮤지컬이 더욱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다중언어 구사가 필수입니다.
스웨덴 그룹 ‘아바’가 세계적 스타가 된 것도 그들이 영어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획사 차원에서 교육을 하지만 여러 문제가 있어요. 제대로 인성교육도 받을 수 있는 종합음악학교 같은 곳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구상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간 해외공연을 통해 느낀 것이 우리 것을 얼마든지 세계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브로드웨이에서 <명성황후>와 <영웅>을 통해 교훈과 감동을 함께 줄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어요.
앞으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도미설화를 무대에 올려 보려고 해요. 미인을 꿈꾸는 왕, 그 왕이 찾아 낸 미인이 하필 도미의 아내였죠. 왕이 그 미인을 차지하기 위해 계략을 꾸며 도미를 쫓아냈으나 결국 그 아내는 자신의 얼굴을 훼손하면서 도미 곁으로 갑니다.
이런 소재를 한 폭의 동양화처럼 무대에 올린다면 충분히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몇 년 더 걸리겠지만 외국 자본 투자와 외국 배우 도입까지 고려해 글로벌한 한국 뮤지컬로 만들 구상을 하는 중입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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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