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소년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이혼을 했다. 의붓어머니 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자라는 동안, 소년은 생모와 만날 날만을 꿈꿨다. 생모만 만나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날 무렵 처음으로 생모를 만났을 때 꿈은 사라졌다. “아들 하나뿐”이라며 소년의 형만 데리고 재혼했던 생모는 그를 거둘 수 없었다. 소년은 밤새도록 울었다. 떠나는 생모의 등을 바라보면서 소년은 ‘나는 혼자’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으로 ‘기술을 배워 성공해야겠다. 성공해서 뒤틀리기만 한 내 인생을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70년, 고등학생이 된 소년은 몇 달 학교를 다니다가 학업을 접었다. 더 이상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살 수 없었다. 그가 택한 곳은 빵집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빵집 진열장에 가득 쌓인 빵을 보며 군침을 삼켰던 기억이 그를 빵집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년이 대한민국명장회 회장인 김영모(58) 김영모과자점 대표다.
지방의 작은 빵집을 전전하던 그는 1973년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 삼선교 나폴레옹과자점, 무교동 보리수제과점 등을 거쳤다. 선배들은 기술을 전수하는 데 인색했다. 배합비율 같은 것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고, 정작 중요한 공정에서는 등을 돌리고 만들었다. 남들이 퇴근한 후 그는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연습했다.
어느 날 공장장이 출근하지 않자 주인은 그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날 그가 만든 케이크는 전부 팔려 나갔다. 처음으로 그는 ‘아, 내게 소질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982년, 스물아홉 살 때 그는 서울 서초동에 자기 이름을 딴 과자점을 열었다. 문을 연 지 30년이 된 오늘 김영모과자점은 서초본점을 비롯해 네 개의 매장과 샌드위치카페 등을 거느린 매출액 1백50억원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8월 4일 아침 김영모 대표를 만났다. 김영모 대표는 부모의 이혼 때문에 받았던 상처, 고1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일등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학력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낀적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공부를 학교 공부에 한정하니까 학력 콤플렉스가 생기는 겁니다. 저는 백화점이나 은행 직원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서비스에 대해 생각하고, 회계·경영 등 제가 모자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늘 책을 읽습니다. 공부는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을 통해 평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학력 콤플렉스 같은 건 생기지 않습니다.”
옛날 학교 동창을 만나면 ‘괴리감’ 같은 걸 느끼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에는 동창회에 나가면 고시 합격해서 고위 공무원이 됐거나 대기업 중역이 된 친구들이 좀 거들먹거리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좀 마음이 상하죠. 그럴 때면 웃으면서 ‘야, 목에 힘 좀 빼라’고 말하곤 했죠. 그 친구들은 지금 대부분 퇴직하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어요. 이제는 그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합니다.
저는 정년이 없잖아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큰아들 재훈(31)씨는 재료구매, 창고관리, 제품출고 등 말단사원 업무부터 시작해 지금은 기획·마케팅·점포관리 등을 맡고 있다.
작은아들 영훈(30)씨의 국내 학력은 중1 중퇴다. 어려서부터 제빵일에 재미를 느꼈던 그는 프랑스국립제과학교를 나와 제빵사의 길을 걷고 있다. 2003년 프랑스제과월드컵에서 개인상,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제과 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김영모 대표는 “영훈이를 비롯해 우리 과자점에서 일하는 젊은 이들을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면서 “젊은이들의 재능과 잠재성을 일깨워 줘야 하는데 대학 진학만 강요하는 부모들이 오히려 문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 관련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능인에 대한 처우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스위스 시계산업이 명성을 잃지 않는 건 50~60년 동안 시계일을 하면서 노하우를 쌓은 기능공들이 장인정신을 가지고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시계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바람에 그런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하고 있어요. 한 사람의 장인으로 기능이 절정에 달할 때인 55~60세면 정년퇴직을 강요하거나 급료를 터무니없이 깎는 바람에 기능인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기능인을 예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현장에서는 기능인을 박대한다면, 누가 기능인이 되려 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제2의 성장을 이룩하려면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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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대표는 지난 3월 제10대 대한민국명장회 회장에 취임했다.
명장(名匠)은 한 직종에서 15년 이상 종사하면서 기술 발전에 공헌한 기능인을 일컫는다. 현재 2백67개 분야 4백96명의 명장이 회원으로 있다.
명장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김영모 대표는 명장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기술을 후대에 전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법적으로 15년이면 명장이 될 수 있지만, 40~50년 외길을 걸어야 명장이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축적된 지식을 후대에 전수하기 위해 현재 전국의 마이스터고(高)와 MOU체결을 추진하고 있어요. 더 나아가 정부에 명장학교 설립을 건의할 생각입니다. 명장학교는 최고의 기능인들이 자기가 가진 국보급 노하우를 후진에게 가르치는 장(場)이 될 것입니다.”
글·배진영 기자 / 사진·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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