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심사에 참여하셨던 분이 저희 부부가 상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스갯소리로 ‘한 사람만 줬으면 부부싸움 날 뻔했다’고 하셨어요.”
국민포장 사상 최초의 부부 수상자인 박종월(62) 안효숙(51)씨 부부는 10여 년간 ‘찾아가는 안경맞춤 봉사’(이하 안경봉사)로 눈이 불편하거나 시력이 좋지 않은 2만여 명의 노인에게 ‘광명을 찾아준’ 주인공이다.
부부는 한 달에 네다섯 번, 개조한 25인승 차량을 이용해 전국을 돌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노인, 불우청소년, 재소자 등의 시력을 검사해 주고 그에 맞는 안경을 무료로 맞춰 주는 봉사를 해 오고 있다. 부부가 봉사를 위해 움직인 거리만도 벌써 지구 세 바퀴를 돌 정도다.
“‘안경봉사’는 우리가 아니어도 그 누군가는 꼭 했어야 할 일이에요. 내가 가진 달란트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상소감을 묻자 박종월씨는 이렇게 말했다. 1999년 서울 구의동 강변 테크노마트에 안경점을 개업한 부부는 늦은 나이에 대입 검정고시에 나란히 합격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후 2000년 당당히 김천대 안경광학과에 입학했다.
부부는 학과 강의를 통해 ‘약시나 사시 등은 일곱 살 이전에만 발견해도 쉽게 치료가 가능해 평생 건강한 눈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취학 전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무료 시력검사 봉사를 하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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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봉사를 다니다 보니 ‘안경봉사’는 어려운 노인들에게 더욱 절실한 일임을 깨달았다. 약시나 사시 어린이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들은 대부분이 시력을 잃어 가면서도 교정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인 부부는 2002년 본격적인 ‘안경봉사’를 위해 25인승 버스를 시력검사 및 안경제작 기능을 갖춘 ‘이동식 시력검사 버스’로 개조하고 전국 산간 오지 마을을 찾아가 안경맞춤 봉사활동을 펼쳤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 찾아가는 봉사’였다.
아무리 남을 돕는 봉사라고 해도 시작 당시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시력검사에 안경 무료 제작까지 해 주다 보니 ‘영업방해’를 이유로 지역 안경점의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안경봉사’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후에는 오히려 지역 안경협회가 돕겠다고 나서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부의 ‘안경봉사’는 단체나 지역 교회에서 신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대개 30~40명으로 한정한다. 인원을 한정하는 이유는 “30~40명이 하루에 시력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적정인원이기도 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봉사를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게 박씨의 설명이다. 10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 온 봉사다 보니 후일담도 많다.
“지난달 소록도에 갔을 때 한 늙은 모자를 만났어요. 아들은 60세, 노모는 86세였죠. 노모가 한센병으로 소록도에 들어온 지 60년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얼굴도 다 녹아내린 노모의 시력을 측정하고 안경을 맞춰서 씌워 주니 엉엉 우시더군요. ‘잘 보인다’면서. 우리 부부가 봉사를 멈출 수 없는 이유와 그곳에 간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부부는 안경봉사가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쯤에 일어나 짐을 챙긴다. ‘봉사이기 때문에 약속시간을 더욱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 부부의 철칙이다.![]()
때로는 안개 낀 지리산을 지나기도 하고, 악천후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했지만 약속을 못 지킨 적은 10년 동안 딱 한 번 있었다. 그것도 아내 안씨의 축농증 수술 후유증으로 지혈이 안돼 벌어진,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 이 때문에 미뤄진 봉사는 이튿날 바로 진행했다.
부부는 2006년에 아예 서울 집을 정리하고 전국 각지로 봉사활동 다니기가 용이한 지역인 경기도 이천으로 이사했다. 이후 2009년엔 이천 자택에 ‘희망나눔센터’를 세우고 아예 봉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다.
한 달에 네다섯 번 봉사를 다니고 주중에는 안경제작 후 택배까지 보내다 보니 사실 부부가 안경점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어려워 현재는 처남이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부부는 “유일한 스폰서가 있다면 처남일 것”이라며 웃는다. 10년 동안 후원도 받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이 있었지만 고집스럽게 후원을 고사하는 이유에 대해 박씨는 “좋은 의미라 하더라도 후원이라는 것 역시 받다 보면 실수할 수 있다”면서 “하나님이 이 봉사가 계속되길 바라신다면 여건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부부는 앞으로 북한이나 어려운 나라로도 ‘안경봉사’를 떠나 볼 작정이다. “언제까지 봉사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부부는 “운전을 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70세 정도까지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
글·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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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