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염전으로 갑시다. 거기가 조용하고 얘기하기 좋아요. 먼저 갈 테니 따라오십시오.”
지난 7월 15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강경환 부성염전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두 팔은 손을 잃었지만 능숙하게 핸들을 조종했다. 급할 것 없다는 느낌의 여유로운 운전솜씨였다. 그는 1급 지체장애인이지만 자신이 어렵게 번 돈으로 이웃돕기를 활발히 실천해 왔다. 이번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은 그의 선행을 눈여겨본 지인들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여기가 염전인데, 보다시피 비가 와서 지금은 비어 있어요. 얼마 전까지 허리디스크로 한 20일 입원을 해서 날이 좋았어도 일을 할수 없었죠. 훈장 받을 때도 통증 때문에 겨우겨우 갔어요. 지금은 그래도 조금 수월해졌네요.”
염전 일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벅찬 고역이다. 이런 일을 양손이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 하고 있다니…. 강 대표는 갖은 고생 끝에 겨우 몸에 익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오래 일해야 했다.
남들이 다섯 번 삽질하는 동안 겨우 한 번을 하고, 대패는 마음먹은 대로 가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염전 일을 시작해 6~7년 동안은 하루 한두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제 사정을 딱하게 본 지인이 먼저 권했어요. 처음엔 부친의 농사 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친이 돌아가시니 막막해지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부친의 지인이 염전을 빌려줄 테니 해보겠느냐고 해요. 그러겠다고 바로 답했죠. 당시 염전은 큰 소득원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후회도 많이 했죠.”
강 대표의 초년은 그의 마음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연한 사고와 만남이 그의 삶을 이끌었다. 먼저 장애가 그랬다. 강 대표가 손을 잃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바닷가에 떠내려 온 지뢰를 무심코 가지고 놀다가 생긴 일이다. 술에 절어 하루하루를 보냈고 몇 차례나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1980년 2월 18일, 강 대표는 우연히 <그루터기>라는 잡지에 실린 한 장애인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된다. 간호사로 일하던 중 감전사고를 당해 두 팔과 다리 하나를 잃었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앙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말이 무엇보다 가슴을 울렸다.
“‘나도 믿어보자’, 그런 맘이 불쑥 듭디다. 전에도 교회는 몇 번 나갔었죠. 하도 술 먹고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니까 형님이 억지로 끌고 갔는데, 그런다고 믿음이 생깁니까. 하지만 잡지를 본 후엔 그냥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강 대표는 달라졌다. 술을 끊었고 동네에 교회를 세우는 데 주축이 되기도 했다. 근처도 가지 않던 밭에 가 농사를 배우고 글씨쓰기도 연습했다. 그의 변화에 마을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전히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워졌다. 힘든 염전 일을 선뜻 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마음의 변화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염전 일이 몸에 익어가던 1996년 무렵 그는 하나의 계획을 세운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른 것이다.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좌절 속에서 살다가 용기를 얻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서산시지체장애인협회 대산읍분회장과 함께 어려운 가정을 돌아보는데 눈물이 납디다. 저들을 품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나더라고요.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다가 ‘그래 소금을 주자’ 결심을 하고 소금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나눠주려니 운전을 해야겠기에 면허도 땄지요.”
강 대표의 나눔의 길은 조금씩 넓어졌다. 장애인 가정에 소금을 나눠주는 것에서 시작해 염전에서 나온 수익금의 1할을 떼어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들을 도왔다.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스스로 포기했다. 관계자들이 만류하자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한푼이라도 더 나눠주라고 강짜를 부리듯이 고집을 세워 기어이 정부보조금을 반납했다.
2008년에는 스스로 자선단체인 ‘사랑의 밀알회’를 설립했다. 혼자 힘으로 이웃을 돕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주위의 뜻을 모으기로 결심한 것이다. 뜻이 있는 지인들은 순순히 강 대표에게 후원금을 맡겼다. 그동안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지켜본 마당이니 그를 의심할 까닭이 없었다.![]()
“저는 돈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그해 들어온 후원금은 그해에 다 사용합니다. 돈이 쌓이면 욕심이 생기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한해 1천만원가량의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3백~4백 가정에 생활용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주위만이 아니라 먼 곳의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있다. 그의 사연이 방송과 언론에 소개되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의 삶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삶의 희망을 얻었다는 암환자, 사업 실패로 좌절하다 용기를 얻었다는 가장, 돕고 싶은 마음에 태평양을 건너온 독지가 등이 전화로 혹은 직접 그를 찾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한 30억원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매일 60만명의 후원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분들이 한명당 5천원만 기부를 해도 30억원이 되거든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이 꿈도 이뤄지는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글·변형주 기자
사랑의 밀알회 후원계좌 : 수협 355-62-103149·예금주 강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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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