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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장바구니에 담는 게 많아졌어요”




한정자(58), 이견자(56), 심정섭(55) 주부는 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서 자발적으로 수십 년간 장바구니물가를 모니터링해 온 베테랑 주부들이다. 이견자 주부는 198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30년 장바구니 역사를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다. 6월 7일 오후 서울 잠실의 한 대형마트에 모인 주부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요즘 들어 장 보는 재미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렌지를 살까 체리를 살까, 과일을 하나씩 집어들던 주부들이 FTA 덕분에 풍성해진 장바구니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한 아름씩 풀어 놓았다.



한정자(이하 한) 몇년 전, 아니 지난해까지만 해도 과일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지 않았어요. 확실히 요즘은 과일을 더 자주 먹는 것 같아요.

심정섭(이하 심) 올해 들어 처음으로 체리를 간식 삼아 먹었는데 체리가 그렇게 몸에 좋다면서요? 노화를 늦추고 암 예방에도 좋대요.

이견자(이하 이) 여기 자몽도 있는데 요즘 딸아이가 다이어트한다고 자몽을 자주 사 먹더라고요. 2개에 4천원인데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니 과자를 먹는 것보다 훨씬 좋은 간식거리인 것 같아요.

한 반상회같이 주부들 모임을 할 때도 과일이 자주 나오죠. 예전에는 비싸기만 하던 과일이 지금은 저렴해진 만큼 양도 많아졌어요. 체리가 5백 그램에 9천원인데, 한·미FTA 발효 전에는 3백 그램에 6천원 정도 했거든요. 아주 싸진 건 아니지만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어요.

발걸음을 옮겨 유제품 코너 앞에 섰다. 다양한 브랜드의 유제품을 이리저리 살피던 주부들의 이야기가 삼겹살과 해산물, 와인에까지 흘러갔다. 이날 미국산 삼겹살은 1백 그램에 9백5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와인 코너에는 1만원대부터 갖가지 와인이 진열돼 있었다.

심 치즈도 종류가 참 많아졌죠. 그러고 보면 한·EU, 한·미FTA가 차례로 발효되고 나서 식탁 위에 올라가는 음식 모습도 달라진 것 같아요.

이 와인이 대표적이에요. 아무래도 와인은 특별한 날에만 마신다는 생각이었는데 주말이면 아이들과 와인 한잔 하는 게 일상이 된 것 같아요. 가격도 저렴한데 남으면 요리할 때 쓸 수 있고.

심 전에 장을 보다가 시음하고 와인을 한 병 사 갔는데 남편이 맛있다고 얼마짜리냐고 묻더라고요. ‘1만5천원 정도 했던 것 같다’고 대답하자 깜짝 놀라던데요.

이 과자 중에 뮤슬리라는 게 있어요. 통곡물을 단단하게 스낵바처럼 압축한 건데 FTA 덕분에 무관세로 수입하게 됐거든요. TV에서 탄수화물을 먹을 거면 통곡물을 먹으라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뮤슬리를 아침 식사로 대신하는 사람이 많아졌더라고요.

한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게 FTA 효과가 잘 와 닿는 것 같아요. 뮤슬리로 통곡물을 섭취하고, 여러 가지 과일을 먹게 되고. 예전에는 미디어에서 ‘이런 게 몸에 좋다’고 해도 막상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미국에서 파는 걸 여기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결혼한 제 딸은 외국 사이트에서 아기들에게 좋은 것을 일일이 메모해 둬요. ‘마트에서 사야지’라면서요.

주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육아와 건강이다. 육아·건강용품에도 FTA 발효 전후의 차이가 느껴진다.

한 최근에 유모차가 아이들 발육에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나왔어요.

대신 ‘소서’라는 유아용 의자가 유행이래요. 딸아이가 손자 앉힌다며 소서를 사려고 했을 때만 해도 온라인 수입업자들이 직접 하나씩 수입해 파는 바람에 배송비며 뭐며 돈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종질이 이번에 소서를 사려고 봤더니 가격이 내려갔대요. 정식 수입경로를 밟는 데다 관세가 철폐돼서 그렇대요.

심 혈압기 같은 의료기기도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점점 저렴해지고 있어요. 의료기기 같은 건 불티나게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수입해 놓고 다 팔리면 수입해 오곤 하잖아요. 그러니 FTA가 발효됐다 해도 효과가 나중에 나타날 텐데 벌써 가격을 인하하는 움직임이 있더라고요.

이 건강식품이나 약도 저렴해졌다던데요. 앞으로 더 저렴해질 거라고 하고요. 건강 챙기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냄비나 프라이팬 같은 주방용품도 가격이 조금 저렴해졌어요.

예전에는 30만원 주고 마련한 냄비가 얼마 전에 보니 20만원대더라고요.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앞으로 마련할 것들은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가격이 저렴해진 것도 그렇지만 이름만 들어 봤던 브랜드 제품이 수입돼 기대하는 친구들도 있더군요. 예전에는 제품을 구하지도 못했다면 이제는 선택할 수 있죠. ‘FTA, 주부의 선택 폭을 넓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이 늘어나며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주말 여가를 즐기려 악기를 배우거나 등산이나 캠핑을 갈 때도 FTA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심 이웃집 아이가 피아노를 샀는데 가격을 들어 보니 제가 살 때보다 싸더라고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악기에 붙던 관세도 폐지됐대요.

이 캠핑 다니는 사람이 많다던데 주말에 서울시내에 캠핑카가 지나가는 걸 봤거든요. 신기해서 쳐다보는데 남편이 얘기하기를 캠핑카가격이 많이 내렸대요. ‘우리도 하나 살까?’ 하는 걸 ‘돈이 어딨어!’라고 타박했지만 문득 사고 싶어지긴 했어요.

한 한·미FTA는 발효된 지 이제 겨우 세 달밖에 안됐잖아요. 그런데도 벌써 이런저런 기대 섞인 말이 흘러나오는 거 보면 1, 2년 뒤에는 더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FTA 발효 후 장바구니가 넉넉해졌다고는 하지만 수입업체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상품도 많다. 한정자씨는 “수입 타이어를 사려고 봤더니 성동구에서 25만원 하는 타이어가 송파구에서는 50만원 했다”며 장 보기 전 가격을 꼼꼼히 비교해 볼 것을 주문했다. 세 주부는 입을 모아 FTA 후 수입되는 물품도, 가격대도 다양해진 만큼 현명한 소비생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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