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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구호에 그치지 않게 주기적 실적평가를




‘공생발전’이란 정부가 시의적절하게 잘 잡은 개념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착한 정책’인 셈이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배가 고픈 ‘헝그리 사회’였기 때문에 빵 문제를 해결하고 부를 창출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헝그리 사회’는 극복했는데, 이번에는 ‘앵그리 사회’가 되었다.

시장의 경쟁이 공정해야 하는데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고, 또 시장이 매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아무리 효율적이며 생산성 높은 선진경제를 만들고 ‘고용 있는 성장’을 지향해도, 시장의 경쟁에서 탈락해 고통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고령자, 아이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며, 또한 이것이 우리 자본주의에 ‘온정성’과 ‘따뜻함’이 추가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사회의 이미지가 크다. 그러기에 1등만 기억할 뿐 2등은 기억하지 못하는 매정한 사회다. 2등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3등·4등…, 항차 꼴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라는 불만도 때때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기에 생산성과 책임감, 경쟁력을 강조하는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되,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실패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보이며 사회적 책임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행위자들 사이에는 자본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비대칭적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 흔히 이런 관계를 힘 있는 ‘갑’과 힘없는 ‘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갑’이 ‘을’을 지배하고 강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약자를 괴롭힌다면, 결코 정의로운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고 탐욕과 부정의가 횡행하는 비열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쓴 막스 베버도 진정한 자본주의는 신의 소명의식에 의하여 삶을 가꾸어 가는 사회로서 탐욕이 판치는 ‘천민자본주의’와는 구분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진정한 자본주의라면 양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을 신봉하기보다 베풂과 배려, 정의를 원칙으로 삼는 사회다.


21세기 한국형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자본주의라면,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한 단계씩 진화해 온 자본주의의 역사가 말해 주는 것처럼 진화한 형태, 즉 온정적이고 따뜻한 모습과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옳다.

이런 점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비록 ‘한강의 기적’을 만든 자본주의였으나, 한편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떤 성격과 특징을 가진 자본주의였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잘못된 것은 무엇이며 고칠 것은 무엇인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는 시장의 행위자들에게 공정을 보장하고 품위있는 거래를 보장하는 자본주의였는가. 혹시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책임”이라든지, “사회적 약자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횡포와 억압을 정당화한 자본주의는 아니었는가.

진화된 한국의 자본주의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관계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중소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시장침탈 등 여러 유형의 ‘불공정행위’를 경험하거나 강요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면, 중소 협력업체들이 끝없는 경영난의 굴레에서 허덕인다면, 그 결과 전 업종에 걸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된다면, 지속가능성을 가진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기 어렵다. 중소기업들이 건강해야 장기적으로 대기업도 성장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대기업 못지않게 중소기업들도 수많은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 관계 정착이야말로 진화된 한국형 자본주의의 중요한 ‘어젠다(agenda)’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공생발전이란 이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특효약이다. 정부도 그걸 알고 있기에 정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부가 과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구호로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언론홍보용으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적을 내기 위해서는 실사구시적인 방법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 또한 실적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평가지수를 개발해야 하고 여기에는 정량평가뿐 아니라 정성평가도 병행해야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을 때만 반짝하고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져 동력만 떨어지다가 사라져 버리는 하루살이 정책이어서는 곤란하다.

사람들이 큰소리로 말은 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도 이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주기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생발전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과감하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정부일 때, 비로소 그의 공생발전 정책은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

글·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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