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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신상(神象)>이란 영화가 있었다. 1972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수입된 인도 영화로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78년에는 아낙(Anak)이 우리나라 가요계를 휩쓸었다.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귈라가 타갈로그어로 부른 이 노래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로 시작되는 한국 번안가요까지 히트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것은 스쳐 가는 바람이었다. 이후 다른 인도 영화나 필리핀 가요가 인기를 끈 적은 없었다. 우연히 얻은 관심을 지속해 가기엔 이들 나라의 문화적 기초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미국을 위시한 서구문화의 생명력은 강하고 질기다. 할리우드 영화, 빌보드 차트의 팝송에서 햄버거, 피자, 원두커피에 와인까지 세대를 거쳐 가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문화와 예술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한류라는 현상 자체가, 우리나라의 많은 부분이 자연히 다른 곳으로 흘려내려갈 만큼 앞서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20세기 세계 산업화 역사에서 유이(有二)한 신화다. 일본은 20세기 초반에, 우리나라는 20세기 후반에 신화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일본의 생선초밥(스시)과 만화(망가)는 경제발전과 함께 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도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한류’라는 흐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소녀시대를 비롯한 K팝은 유튜브를 매개체로 전세계에 열광적 팬층을 형성했고, 한국 드라마는 중동에서도 고정팬을 확보했다. 나아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도 수출되기 시작한다. 한국식 카페인 커피전문점이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진출했고, 비빔밥이 외국 항공사의 기내식으로 서비스되어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류는 이제 문화, 예술, 음식에서 정책 분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먹고 입고 즐기는 것을 따라하던 수준에서 한국의 성공경험과 시스템을 배워 가는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한류가 ‘한강의 기적’이 만들어 낸 문화예술 분야의 결과물에 대한 것이었다면, 정책한류는 ‘한강의 기적’ 원인에 관한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공공정책과 서비스의 가장 뜨거운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전세계 개발도상국 고위공무원들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와서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근대화과정을 배우면서 자신들의 나라에 접목하는 길을 고민하고 있다. 전세계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가수와 연기자의 팬이 되었듯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전자정부, 공항운영, 건강보험, 증권거래소 등 각종 서비스와 시스템 자체를 이식시키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춤과 노래, 비빔밥에서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른 나라가 닮고 싶어하는 한류의 진원지로 변모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시작된 한류 1.0이 공공정책 분야로 확산되는 한류 2.0은 우리나라의 성공모델을 다른 나라로 확산시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21세기 글로벌사회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글·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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