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차 투표에서 개최지가 결정됐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평창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최지 발표 전 입장하던 IOC 위원들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거나 윙크하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포커 페이스를 하고 올라와 단상에 서는 순간, 과거 두 차례 2차 투표에서 간발의 차이로 역전패 당했던 악몽이 떠오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로게 위원장이 ‘평창’이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12년 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라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유치 특임대사(전 강원도 지사)는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7월 14일 3번의 도전 끝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낸 김진선 특임대사를 인터뷰했다.
지난 12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2014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놓고 전북 무주와 경합이 붙었을 때와, 2007년 2014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후 3수에 도전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열망하던 도민들도 ‘평창은 안 되는 것 아니냐’면서 회의(懷疑)하고, 많은 분들이 ‘되지도 않을 일을 벌인다’면서 비판했을 때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두 번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민들은 90퍼센트 가까운 지지율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높은 지지율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합니까?
“오랜 세월 동안 발전에서 뒤처지고 인구도 적다는 데서 온 변방의식, 한계의식을 극복하겠다는 열망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사람들이 울뚝밸이 있습니다. 달아오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달아오르면 쉽게 식지 않는 게 강원도 사람들입니다.”
평창은 시설 간 이동거리를 30분 이내로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뮌헨이나 안시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처음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때 우리도 남북공동올림픽이나 남북한 분산개최를 고려했습니다. 또 평창과 강릉 이외에 춘천을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이러한 방안을 IOC 위원들에게 타진해 보기도 했습니다. IOC 위원들은 ‘올림픽은 개최도시를 중심으로 치르는 것이며, 특정 국가의 이벤트가 아니라 IOC의 이벤트다. 국내 정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선수 중심, 경기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고 조언해 줬습니다. 이런 조언을 받아들여 시설을 최대한 콤팩트하게 구성하려 노력했습니다.”
과거 두 차례의 도전 때와 이번 도전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선 많은 IOC 위원들이 평창이 과거 두 차례나 잘하고서도 떨어졌다는 데 대해 부담감 내지 동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둘째, 과거에는 계획서만 가지고 도전한 셈이었지만, 이번에는 경기장과 알펜시아리조트 등 그동안 구축한 시설들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IOC도 이런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셋째, 2018년이 나가노동계올림픽이 열린 지 20년이 되는 해여서, 다시 아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을 열 때가 됐다는 우리의 주장이 더욱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1백여명이 넘는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 부분에서는 정부와 체육계, 유치위원회가 전에 없이 힘을 모아 강력하게 지원해 준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나 애썼는지는 언론이나 국민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더반에서 IOC 위원 몇 명 만나고,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한 것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2년 전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강원도와 국가발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해당국 정상에게 평창 유치 지원을 부탁하고, IOC 위원과의 만남을 마련했습니다. 우리가 IOC위원을 서너 번 만나는 것보다 대통령이 한 번 만나는 것이 휠씬 효과가 컸습니다.”
남아공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을 어떠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를 위해 남아공에서만 5박6일을 머물렀습니다. 이는 우리 외교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10~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고 끼니도 걸러가면서 30여명의 IOC 위원을 개별면담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어땠나요?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계, 재계,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 사이에서 고위전략회의를 잘 조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밖에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쓴 분들을 꼽는다면?
“이건희 IOC 위원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조양호 유치위원장, 문대성 IOC 선수위원 등도 애를 많이 쓰셨고, 각 경기단체 관계자들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국제체육계 인사들을 움직이기 위해 모두 나섰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 모든 분들과 강원도민 등 국민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일궈낸 전 국민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이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입니다.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에 진입하는 시점입니다.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했던 것처럼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그리고 국가브랜드파워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생각입니까?
“지난 12년 동안 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그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가지고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에는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까지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길 생각입니다.”
글·배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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