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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훈련때처럼 질서정연한 국민성 본받아야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규모 9.0 강도의 강진이 발생했다. 센다이로부터 불과 1백30킬로미터 떨어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최대 30미터가 넘는 지진해일이 내습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해일 속보를 발표했고, NHK 방송은 긴급 재난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짧게는 10여 분, 길게 20~30분에 불과했던 시간은 지역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이번 지진해일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지만, 일본 전국 해안 마을에서는 수십 년간 지진해일 대피훈련이 수행돼 왔다. 얼마 전 TV를 통해 그들의 지진해일 대피훈련 모습이 방송된 적이 있다.

마을 전신주의 나팔 스피커로부터 긴급 사이렌이 발하자, 어린아이들은 헬멧을 챙기고 어른들은 가족을 모아 함께 산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들 손에는 ‘해저드 맵’이라는 대피용 지도 한 장이 들려 있었고, 발걸음이 급해도 애써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꼬마를 등에 업고 달리는 어른부터 심지어는 휠체어를 산으로 올리기 위해 청년들까지 애를 썼다. 산 정상에 다다른 아주머니 손에는 스톱워치가 들려 있었으며 “지난 훈련 때보다 2분 늦었네”라는 이야기를 했다.




대피훈련은 그들 생활의 일부다. 정부가 준비한 해저드 맵은 대피 방법에 대한 매뉴얼이며, 주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대피할 경로와 목적지를 구깃구깃한 종이에 그려 숙지하고 있다. 나팔 스피커의 사이렌은 생명을 지켜주는 신호인 동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대피하게 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들의 생활 일부분이 된 대피 과정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비상시에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그러한 자구책이라는 것을 어려서나 나이 들어서나 언제나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불가항력의 재난을 만났지만, 수십 년간 규격화된 재난 훈련을 해온 ‘방재 선진국’의 사례는 지금 우리 상황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필자는 얼마 전 강원도의 한 지역방송국에서 지진해일에 대한 우리의 태세를 점검하는 대담프로그램 녹화를 했다. 동해안 지역 주민들의 인터뷰와 민방위 훈련 대피상황들을 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강원도가 가진 지진해일 방재대책을 직접 소개받는 귀한 기회였다.

지진재해대책법이 공포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 제도와 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십여만 명이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가 지정되고, 침수예상도를 통해 대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리는 등 현재까지 알려진 최첨단의 지진해일 방재대책이 소개되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 상황실에는 지진해일 경보를 위한 첨단의 정보기술(IT)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지진해일이 내습하는 약 두 시간 동안의 상황관리에 대한 전략이 완성돼 있었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이번 일본 재난 이후 민방위 훈련에 지진해일 대피훈련이 포함됐으나 이전과 달리 관광객이나 낚시꾼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도심에서의 훈련 역시 지진재해에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좋은 현상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먼저 경보의 문제다. 예를들어 지진해일 경보는 어떻게 울리는지, 우리 국민 누구나 그 경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강원도 지역주민들은 방송 인터뷰에서 “최소한 해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제때 경보를 울려주면 좋겠다”는 요구를 했다. 이는 지진해일이 올 때 어떤 경보가 울리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요구다.

둘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상황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훈련으로 확인된 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적은 것이 매뉴얼이다. 매뉴얼은 그 자체가 목적이거나 목표가 아니다. 매뉴얼과 실상이 따로 놀아서는 의미가 없다. 매뉴얼에는 온전한 요구 사항과 그에 따른 절차가 숨어 있어야 하며, 그 결과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때까지 훈련되는 것이 이상적인 형태다.

여기에다 우리에게도 일본인들이 그러하듯 스톱워치를 들고 뛰면서 스스로를 점검하는 자발적인 대응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름 휴가철이면 누구나 언제든 해수욕장을 찾게 된다. 지금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다소간의 긴장감을 통해 국민 스스로 관심과 ‘니즈(needs)’를 이끌어내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최첨단 IT시설을 활용한 경보시스템도 ‘효율적인 대피를 위한 니즈’로부터 도출돼야 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재해대책 상황실에서 지진해일이 도달하기까지 카운트다운되는 대형 컴퓨터 화면이 주민 대피에 도움이 된다면 도입해야 하겠지만, 그런 니즈 파악 없이 대형화면을 준비하는 일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비상상황이나 광역 단위로 활용될 시스템이라면 복잡한 첨단 시스템보다는 거의 수작업에 준하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과 의사 결정이 편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본의 나팔 스피커와 구깃구깃한 대피지도, 그리고 주민 손에 들린 스톱워치가 자꾸 떠오른다.

우리는 아직 큰 규모의 지진해일 내습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의 재앙을 보건대 언제든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재앙이 경제, 사회에 출몰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이라도 기업과 주민들은 어느 정도의 대응능력이 있으며, 기업의 자조(自助)에 더하여 지역 또는 국가차원의 공조(公助), 그리고 그 양자 간에 어느 정도 공조(共助)되고 있는가 점검이 필요하다.

훈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니즈와 참여 의지를 우리 스스로 확인해 보자.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한 만큼은 함께 긴장 좀 합시다”라는 캠페인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글ㆍ이호준 (삼성화재 방재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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