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10월 31일 전주 한옥마을. 한옥체험관 ‘동락원’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유럽에서 온 스타 셰프들 때문이었다. 동락원 마당엔 20여 가지 장아찌와 10여 가지 김치, 색색의 비빔밥 재료가 차려져 있었다.
전통식품명인 39호 김년임(74) 선생이 앞에 놓인 재료를 하나씩 설명하자 외국인 셰프들은 일제히 큰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 파리의 미슐랭 별 세 개 레스토랑 ‘라스트랑스’ 오너셰프 파스칼 바흐보(40)는 장아찌 만드는 순서를 일일이 받아 적고 사진까지 찍었다.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서울 고메’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서울 고메’는, 해외 유명 셰프를 초대해 그들의 요리를 국내에 선보이고 동시에 그들에게도 한식의 매력을 소개하는 행사다. 전주 한옥마을을 유럽 셰프들이 찾은 건 이 때문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온 셰프들은 새벽 5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경매 현장도 지켜봤고, 한국 호텔 주방에서 한국인 셰프들과 함께 자신의 요리도 만들었다. 셰프들은 일정 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외국인 셰프들은 발효음식 중에서도 장아찌에 특히 주목했다. 피클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장아찌 만드는 법을 일일이 받아 적은 바흐보는 “날것이었던 채소를 긴 시간 동안 말리고 데치고 숙성시켜 장아찌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마치 채소에 제2의 삶을 부여한 것처럼 느껴진다”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장아찌 중에서 김장아찌와 명이장아찌를 오묘한 맛이라고 칭찬했으며, 다양한 젓갈류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장아찌가 한 종류가 아니라 지방에 따라 종류가 다른 것이 인상적이라는 답변도 많았다.
된장·고추장 등 장류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한국 입양아이자 벨기에의 레스토랑 ‘레르 뒤 탕’의 상훈 드장브르(41) 오너셰프는 “평소 벨기에에서 고추장을 듬뿍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익숙하다”고 답했지만, 한국의 장을 처음 접한 셰프가 더 많았다.
스웨덴의 레스토랑 ‘프란첸 린드버그’ 오너셰프 비요른 프란첸(34)은 “이전까지는 일본 된장만 접해 봤고 지금 내 레스토랑에서도 일본 된장을 쓰고 있지만 한국 된장이 훨씬 더 맑은 맛이 난다는걸 이번에 알고 무척 놀랐다”고 털어놨다.![]()
“작년부터 스페인의 내 레스토랑에서 한국 된장을 쓰고 있다”고 밝힌, 스페인의 레스토랑 ‘엘 세예 데 칸 로카’의 호안 로카(47) 셰프는 “나에게 놀라운 건 발효음식인 장을 사용해 다시 채소를 발효시켜 장아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셰프들은 모두 자기 나라엔 활어를 파는 어시장이 없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스페인에서 온 로카는 “스페인 시장에선 헤엄도 치고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살아 있는 생선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셰프들은 수산시장 상인들이 현장에서 재빠른 솜씨로 굴을 까서 판매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프란첸은 굴 껍데기를 까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스웨덴에선 매년 굴 까기 대회를 하는데 당신이 거기 나간다면 우승할 것”이라며 “할머니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미더덕도 다들 처음 보는 해산물이라며 신기해했다.
스타 셰프들의 쓴소리가 가장 많이 몰린 곳은 한식을 알리는 방법이었다. 바흐보는 “독특한 채소 요리가 많지만 외국인을 위한 정확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식의 영문 표기법에 대해서도 지적 사항이 집중됐다.
이번 ‘서울 고메’에 초청된 한국계 미국인 셰프 주디 주(37·영국 ‘플레이보이 클럽 런던’ 오너 셰프)는 “김치만 해도 표기법이 열 개는 될 것”이라며 “영문 표기법부터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주디 주는 이어 “외국에서 삼성이나 현대를 일본 기업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유럽에서는 훌륭한 한식을 먹고서도 일식이나 중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식이 해외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현실을 꾸짖었다.
프란첸은 “한국은 발효음식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우처럼 품질 좋은 식재료도 함께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주디 주 역시 “일본이 생선, 중국이 돼지고기로 특화돼 있는 것처럼 한국은 갈비나 불고기를 활용해 쇠고기라는 식재료를 특화하는 것도 유력한 방법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한식세계화를 추진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프란첸은 “스웨덴과 스페인 정부도 자국의 음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지원하고 투자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바흐보는 “한국 정부가 뉴욕 한식당을 추진하다 포기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한국 정부의 우선 순위가 잘못된 것 같다”며 “한식 영문법 표기나 자세한 영문 설명 등 표준화 작업이 당장 더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셰프들은 한식세계화 전략에 관해서도 조언을 했다. 로카는 “요즘 유럽에선 그동안 덜 알려졌던 다양한 국가의 음식이 인기”라며 “한국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알려줬다.
프란첸은 “전 세계 스타 셰프들은 항상 일본을 주시하고 있다”며 “한국도 일본이 어떻게 일식세계화를 추진하는지, 요즘 일식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꼼꼼하게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솔직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글과 사진·이상은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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