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기고-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교육은 그 자체로 복지이며 투자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의미에서 교육은 복지이고,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힘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교육은 투자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초등교육에는 복지적 동기가 우선하고, 고등교육에는 투자적 동기가 우선한다. 복지적 기회는 평등주의의 이념에 따라 분배되어야 하고, 투자적 기회는 능력주의의 원칙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교육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개인이나 집단이 있을 수 없고, 투자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능력을 겨루어 선발된 대상에게 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이다.

우리의 교육문제를 두고 그동안 평등주의 이념과 능력주의 원칙, 그 어느 한 쪽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집단들 간의 극심한 대립으로 국가교육제도의 운영이 순탄치 않았던 경우가 자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의 교육은 이러한 대립된 사고가 타협하기 어려운 격한 감정까지 실은 상태에 있고, 많은 교육종사자들은 이 때문에 빚어지는 불안과 우려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교육에서 복지와 투자라는 두 가지 사회적 동기는 어느 한 쪽도 가벼이 여기거나 유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질을 희생하면서까지 국가의 발전지표를 개선하는 데만 열중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넓게는 인류의 더 큰 복리의 증진을 가져다줄 역량을 키우기 위한 투자를 게을리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어느 한 쪽으로든지 과도하게 기울면 헤어나기 어려운 함정을 만나기는 마찬가지다. 평등은 민주사회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이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가치다. 자연히 평등한 분배를 담당하는 제3의 권위를 요청하게 되고 종국에는 독재적 체제를 구축하기도 한다. 반대로 통제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기회나 가치의 희소성이 존재하는 한 경쟁이 있게 되고, 사람들 사이에 능력의 차이가 있는 한 앞서가는 자와 뒤처지는 자가 있게 마련이어서 양극화가 당연히 초래된다. 어느 쪽의 노선도 정의로운 사회를 보장해주는 철칙일 수는 없다.

인간은 개체로서 자유롭고자 하며, 좋은 사회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면서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사회다.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어느 조직이든지 좋은(민주적) 조직이란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이다. 자유롭게 앞서가는 자를 작위적으로 막으면 그 개인도 자유롭지 못하고 그가 생산할 복리적 가치도 포기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국가는 오히려 뒤처진 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보살필 것인가에 성실한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