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매주 수요일이면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배달하는데, 어버이날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준비한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어수선하네요. 그래도 단원들이 ‘하고 싶다’며 발벗고 나선 거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는 사회적기업 ‘한울타리’ 정신장애인자원봉사단 이진욱 팀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정신장애인들의 자원봉사 활동이 쉬운 일이 아니라며 운을 띄웠다. 대개 정신장애인들은 일반인보다 집중력이 약하고 대인관계에 서툴러 자원봉사 활동을 능숙하게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자원봉사단원들이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을 떤 대전 서구 도마경로당에서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후 2시, 어르신들이 한 명씩 입장하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원봉사단원들이 어르신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준 후 손을 잡고 앉을 자리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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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과일, 음료수를 차려놓은 잔칫상 앞에서 장애인들은 장기자랑을 했다. 자원봉사단원 남윤완씨가 대중가요 ‘무조건’을 부르자 어르신들도 하나둘 일어나 어깨춤을 추면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
“자, 손뼉 치는 게 몸에 좋다는 건 다 알고 계시죠? 손뼉치기게임 해봐요. 마주 앉으시고. 보글보글, 짝짝! 지글지글, 짝짝!” 사회복지사 채송화씨가 진행한 손뼉치기게임을 따라 하면서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 이어 봉사단원들이 어르신들의 어깨를 주무르자 여기저기서 ‘시원하다’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르신의 입이 심심할세라 포크로 과일을 찍어주는 박성희씨 옆에서 임권규씨는 성대모사를 하며 재롱을 떨었다.
봉사단원들이 입을 모아 ‘어머님 은혜’를 부르자 어르신들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도마경로당 노인회 회장 허학구 할아버지는 “어버이날 낮 동안 무료할까 걱정했는데 즐겁게 해줘서 아주 고맙고 신난다”며 웃었다. 박영자 할머니는 모두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못내 아쉬운 듯, 음료수를 마시다가 “내년에도 꼭 와요”라고 당부했다.
한울타리는 중증 정신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과 자립을 위해 쿠키와 빵 만드는 공장을 차려 판매하고 있는데, 2천5백명의 후원자가 보내준 후원금으로 33명의 장애인이 월 4천2백만원의 수익을 낸다. 얼마 전부터는 대전시청 등 공공기관 3곳에 ‘건강카페’를 열고 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팔고 있다.
한울타리에 자원봉사단을 꾸린 것은 2004년 8월이다. 도움만 받던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받은만큼 돌려주면서 사회 적응 훈련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힘든 일 투성이였다. 2005년부터 자원봉사단에 합류한 이진욱 팀장은 “처음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일일이 ‘어디로 가세요’, ‘무엇을 하세요’라고 도움을 드려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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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을 전달하고 오라면 그냥 반찬통만 덜렁 놓고 오곤 했어요. 집을 찾아가다가 다른 곳으로 새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러나 같은 일이 한두 번 반복되면서 자원봉사단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박성희씨는 할머니들에게 말도 못 걸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수요일이 아니라도 틈틈이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느냐’며 얘기를 나누더라고요.” 사람 만나는 걸 꺼리던 홍성일씨는 남을 도우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얼마전에는 예쁜 신부를 맞아 결혼도 했다.
자원봉사단원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매주 토요일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빵만들기 교실이 열린다. 이진욱 팀장은 “거의 모든 토요일 일정이 잡혀 있다”며 “장애인들은 ‘선생님’이란 호칭에 즐겁고, 일반인들은 지식을 얻어가니 모두가 좋아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앞장서 찾았다. 가로수에 코스모스를 심고 쓰레기를 주웠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줬다. 2005년부터 자원봉사 활동을 한 임권규씨는 “그냥 지나가면 장애인이라고 피하던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노라면 ‘감사합니다’라며 말을 걸어 눈물이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슈퍼에 갔는데 모여 있던 아줌마들이 ‘오늘 수요일이네’ 하더라고요. ‘봉사단들이 저쪽 길로 줄레줄레 걸어가는 걸 보고 수요일인지 알아차렸다’고 했어요. 그 말이 그렇게 감동적이었어요.”
사회복지사 송미옥씨는 자원봉사 활동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도 일조한다고 했다. “장애인 시설을 ‘혐오시설’이라고 멀리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여기 주민들은 안 그래요. 서로 인사하고 웃으며 지나가는데는 꾸준히 봉사활동했기 때문이죠.”
올해 특별히 어버이날을 맞아 잔치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9년간의 활동을 나름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다. 임관규씨는 “이 자리는 어르신께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받았다고 고마워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2004년 자원봉사단 창설 당시부터 활동한 남미숙씨는 “처음에는 보람 있는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하면 할수록 즐겁고 뿌듯할 뿐만 아니라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도마경로당의 잔치 자리가 “10년, 20년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한울타리 정신장애인자원봉사단 모두의 소원이다.
글·김효정 기자 / 사진·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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