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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2008.8.8. 팡파르 | 베이징올림픽 출전 이색 선수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작년까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수영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고 헤어졌어요. 당분간은 안 사귈 거예요.” 
제법 야무지게 말해놓고, 이내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솜털이 보송보송한 양볼을 연신 비벼댄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한국 여자수영 대표로 배영 200m에 출전하는 강영서 양. 1994년 4월 16일에 태어났다고 하니 우리 나이로 열다섯, 만으로 치면 이제 14년 3개월 지난 진짜 소녀다. 그래서 강양은 베이징올림픽 참가 한국 국가대표 선수 중 최연소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지도 불과 3개월 남짓이다. 지난 4월 17일 수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등학생, 대학생 언니들을 제치고 당당히 실력으로 선발됐다. 한국 여자배영 200m를 중학교 2학년 선수가 석권한 것이다. 

“수영은 일곱살 때 처음 시작했고 선수생활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어요. 제가 수영하는 걸 워낙 좋아해요. 사실, 선수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많이 말렸거든요. 몸이 약해서 수영을 시킨 건데, 막상 운동선수한다니까 싫어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저 수영 못 하게하려고 바이올린, 플루트 이런 악기도 참 많이 시켰어요.” 

그래도 끝내 수영을 저버리지 않았다. 수영할 때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란다. “제가 키(163cm)에 비해서 팔다리가 긴 편이에요. 선생님들도 제가 물을 차는 느낌이 좋대요. 부력이 좋다고 해요.” 

강양은 자신의 장단점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배영은 발차기가 중요한데, 킥(Kick)을 하는 왼발과 오른발의 세기가 달라 상체를 밀어주는 추진력이 연속적이지 못하고 뚝뚝 끊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이 단거리에서는 치명적이지만 200m 거리에서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고 한다. 
“힘을 비축할 수 있어 후반에 강하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이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스피드를 키워 자유형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란다. 

문득 ‘라면 먹고 달렸다’는 육상선수 임춘애가 생각나, ‘뭘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다. 
“피자, 햄버거, 패밀리레스토랑 가는 걸 좋아해요. 먹으면서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것 좋아하는데 요즘은 전혀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선수촌 생활이 지루하다거나 힘들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언니들이 다들 잘해주고 많은 걸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는 식당에서 밥 먹을 때만 흘깃 봤을 뿐이라고…. 

올해 강양의 배영 200m 기록은 2분 16초대. 한국 최고기록(정유진·2분 13초00)과도 거리가 있고, 세계 최고기록(2분 6초39·크리스티 코벤트리)에는 무려 10초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이번 올림픽에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상위 랭킹에 들어 한 번이라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보는 것. 강양은 이번 올림픽 본선 첫 게임이 해외에서 치르는 첫 경기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두 살배기 서희는 엄마, 아빠 얼굴을 본 지가  오래됐다. 보고 싶지만 앞으로 한 달은 더 꾹 참아야 한다. 2008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려면 딱 그만큼 남았기 때문이다. 서희의 아빠는 국가대표 남자 핸드볼팀 골키퍼 강일구(32), 엄마는 국가대표 여자 핸드볼팀 골키퍼 오영란(36)이다.

올해 남녀 핸드볼팀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중동의 편파 판정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다른 팀은 한 차례만 치르는 예선을 남자팀은 2차례, 여자팀은 3차례나 거쳤다. 대표팀의 남녀 수문장 강일구-오영란 부부는 그 힘겨운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결정적 선방으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일등공신이 된 그들은 지난 1월 일본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올림픽 예선 재경기 때 부부 동반 최우수선수상(MVP)도 수상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태릉선수촌에서 불암산 등반을 하며 사랑을 키웠다. 공교롭게도 둘 다 다치는 바람에 걸어서 산을 올라가던 중 오영란 선수는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강일구 선수에게 “나 돈 많은데 나한테 시집올래” 하며 짓궂은 장난을 쳤다. 농담이 진담이 돼 둘은 사랑에 빠졌고 결국 2002년 5월 부부가 됐다. 

이들을 이어준 것은 간식. 강 선수는 “먹는 것에 넘어갔다. 아내가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보고 음료수도 사다 주고 과자도 사다 주고 한 뒤 선수촌 내 길에서 만나 간식만 주고 갔다”면서 “숙소가 따로 떨어져 있어 서로 전화로 잘 먹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오 선수는 “사귄다고 해도 믿지도 않았다. 20대에 4살이나 차이가 나니까 말해도 장난하지 말라며 안 믿더라”면서 “그래서 우리도 쉬쉬했다. 누군가는 ‘일구 씨가 나이도 어린데 그 늙은이를 만나나’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서로의 경기를 보다 보면 ‘욱’할 때도 많다. 강 선수는 “여자 선수들이 던져도 핸드볼 공 속도가 90km가 나온다. 힘 좋은 유럽 선수들은 이것보다 훨씬 더 빠르니 물론 아프다. 근데 아내 경기를 보고 있을 때 누가 아내 아픈 곳을 맞힐 때면 정말 가서 때려주고 싶다”면서 애틋함을 드러낸다.

부부 골키퍼지만 집에서는 핸드볼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강 선수는 “아내 경기 스타일은 세계에서 알아주고, 제 스타일도 국내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스타일” 이라며 “‘오늘 너 좀 막더라’는 정도의 칭찬은 해주지만 자존심이 상할까봐 서로 조언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 선수도 “가까울수록 핸드볼 얘기 하면 더 화낸다. 자기 분야에서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가지고 끄집어내면 싫어하는 게 당연해 핸드볼 말고 애 얘기를 거의 한다”고 맞장구쳤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부부는 따로 또 같이 태릉에서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집에 들어가본 지가 언제인지도 까마득하다. 부부가 모두 선수촌에 입소하면서 20개월 된 딸 서희는 시댁에 맡겨놓았다. 오 선수는 “엄마, 아빠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다 알아본다. 우리 경기도 텔레비전을 통해 볼 것이다”며 든든한 후원자인 딸을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이렇게 힘든 훈련을 어떻게 견딜까 생각이 들 정도다”며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있다고 밝힌 오 선수는 딸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내가 되도록 열심히 하고 오겠다”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체조 남자대표팀의 이주형(35) 감독과 이장형(34) 코치는 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남자 체조팀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한다. 이 감독은 1999년 중국 톈진 세계선수권대회 평행봉 금메달리스트이자 2000년 시드니올림픽 평행봉 은메달, 철봉 동메달을 딴 스타선수다. 동생 이 코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다. 둘은 지도자로 호흡을 맞춰 첫 출전한 지난해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단체전 5위(1992년 바르셀로나 이후 5회 연속 단체전 진출), 김대은 선수의 평행봉 금메달 등을 엮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레슬링에서도 형제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국가대표 그레코로만형 코치 김인섭(35) 코치와 84㎏급에 출전하는 김정섭(33)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 코치는 시드니올림픽 결승에서 갈비뼈 부상으로 은메달에 머물렀다. 김 코치는 자신의 올림픽 금메달 한을 동생이 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 선수도 ‘매트 위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10년 이상 태릉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김 코치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코치와 선수 관계이다 보니 불편한 게 더 많다. 동생에게 더 가혹하게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핸드볼의 강일구·오영란 커플 외에도 부부 출전 선수가 또 있다. 유도 남자 90㎏급 최선호(31) 선수의 여자 유도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이복희(30) 씨다. 최 선수는 2000년 시드니 대회 때부터 올림픽에 도전했다가 8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부부가 올림픽에 함께 나가는 것도 영광이라고 말하는 최 선수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 앞으로 태어날 2세에게 멋진 엄마 아빠가 되겠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이 밖에 핸드볼 남자대표팀의 윤경신(35), 윤경민(29) 선수 형제도 함께 출전한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는 15개국어 통역요원을 포함해 50여만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를 이번 대회를 위해 모집했다. 역대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수퍼파워’를 자랑하는 중국답다. 이미 지난달에 문을 연 올림픽 기자촌(미디어빌리지)과 선수촌에는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돼 속속 들어오는 올림픽 참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1천실 규모로 아파트 형태로 지은 후이위안 기자촌에는 등록과 안내 자원봉사자 말고도 아파트 동마다 `‘WELCOME’이라는 영문 글자가 새겨진 띠를 두르고 현관문을 열어주는 이색 봉사자까지 등장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한국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강혜옥(姜惠玉·22) 씨. 베이징 시내 중앙민족대학 조선문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강씨는 40만명의 자원봉사자에 포함돼 대회 기간 전 세계 기자들이 올림픽 소식을 타전할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한국어 통역을 하고 있다. 또 한국 선수단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리거나 인터뷰가 잡히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역대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어가 공식 통역 언어로 채택돼 자부심이 크다. 같은 학교 학생 300여명 중 3분의 1 정도인 100여명이 통역은 물론 선수촌, 경기장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중국 동포 사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재중국한국인회와 재중국체육회로 나눠져 있던 동포들의 응원 조직도 ‘한국인베이징올림픽지원단’으로 일원화,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펼친다. 또한 학생이 주축을 이룬 동포 응원단은 자원봉사자 600명을 결성, 8월 1일부터 베이징 서우두 공항과 각 경기장에서 의료지원과 경기장 및 교통 안내에 나서고 있다. 응원단은 오는 7일 친황다오에서 열리는 카메룬과 축구 본선 경기에 동포 2천명이 열띤 응원을 벌일 예정이다. 

중국 현지에서 한국선수단의 대외 연락관을 맡고 있는 정홍용 씨는  “중국 당국이 조직적인 응원을 못하게 하고 있지만 카메룬과 축구 본선 경기를 포함해 양궁 응원단 등 한국이 확실히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병규, 박경림, 박상민 등 스타급 연예인들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지난 7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대한민국선수단 결단식과 함께 베이징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발대식을 진행하면서 응원단 명단을 공개했다.





응원단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강병규를 단장으로 박경림, 박상민(가수), 박준형, 이혁재, 임창정, 임성훈, 주영훈, 신봉선, 현영, 쿨, 크라운제이, 태진아 등 30여명의 연예인 자원봉사자로 구성됐다. 탤런트를 비롯해 가수와 개그맨 등 현재 국내 연예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주요 연예인이 대거 포함된 셈이다. 이들은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국에서 현지 교민 및 관람객과 함께 한국 선수단에 대한 응원을 주도할 예정이다.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하고 국민의 응원열기를 고조시켜 태극전사가 펼칠 감동 드라마를 돕게 된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2004 아테네올림픽’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의 해결사로 나섰던 ‘벽안의 도우미’ 팻 하셋(Pat Hassett·47) 씨가 변함없이 베이징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하셋 씨는 일찌감치 베이징에 도착해 대한체육회 직원들과 선수단 지원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의 첫 관문인 서우두 공항에서 선수촌, 메인프레스센터(MPC)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한 그는 한 차례 장애인올림픽까지 합쳐 10차례나 올림픽 무대를 밟은 베테랑이다. 한국선수단과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인연을 맺어 이번까지 3회 연속 선수단의 대외적인 업무를 앞장서 해결하고 있다.

하셋 씨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8군 헬기 조종사로 한국에서 복무했다. 육개장, 소주, 추어탕과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에 흠뻑 매료된 그가 올림픽에서 한국만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나서게 된 계기가 이때부터다. 제대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에어버스 항공기 조종사로 활약 중인 그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안전요원으로 자원봉사 인생을 시작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언어 지원 요원, 1992년 바르셀로나 때는 미디어 담당으로 활동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배차 담당,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고객 담당,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는 VIP 운전을 맡는 등 다양한 직무를 거쳤다.

한국선수단과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 2004년 이후로는 각종 선수단 애로 사항을 발 벗고 나서 해결해 주는 ‘수퍼맨’ 노릇을 하고 있다. 하셋 씨는 “10차례 올림픽에서 여러 일을 맡았고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선수단이 금메달 10개를 꼭 따내기를 기원한다.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4년 만의 한풀이에 나선 남자 체조스타 양태영(28·포스코건설) 선수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친 양태영 선수의 모습을 기억한다” 며 “이번 올림픽에서 양태영이 꼭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랬다. 

하셋 씨와 함께 한국선수단 뒷바라지를 하는 자원봉사 요원은 모두 10명. 소주를 무척 좋아해 올림픽 기간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동료와 소주로 건배하는 낙으로 베이징의 무더위를 이겨내겠다는 그는 “마음 같아서는 선수단이 매일 금메달을 따 그때마다 소주 파티를 하고 싶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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