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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글 | 한용섭 기자·사진 | 조남수 기자


지난해 12월 7일 오전 7시반께 충남 태안군 만리포에서 북서쪽으로 8km가량 떨어진 바다에서 정박 중이던 홍콩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프리트(14만6848t급, 기름 적재 30만2641㎘)와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부선(1만 1800t급)이 예인선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충돌, 원유 1만2547㎘이 유출됐다.

허베이 유조선의 3개 오일탱크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폭 2km, 길이 7.4km 규모의 기름띠로 확산됐고 다음날 8일 오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천리포, 화감포, 구름포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덮치고 말았다. 태안반도의 위쪽 만대, 가로림만 입구에서 모항 아래 근소만 입구까지 40㎞의 해안가는 이내 검은 바다로 돌변했다. 


원유 1만2천톤 유출 검은 바다 돌변
사고 당시 3~4m의 높은 파고와 초속 13-14m의 바람 등 기상 악천후는 초기 방제를 어렵게 했다. 설치된 오일펜스는 끊어졌고 충돌로 인해 파손된 유조선 선체를 복구하기 위한 인력 투입도 여의치 않았다. 사고발생 직후 유조선 인근 해역에 선박 41척, 헬기 6대, 유회수기 34대 등을 동원해 방제에 나섰으나 파도가 거세 유회수기와 유흡착재 등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8일부터 태안 외해에 분포된 길이 40㎞, 폭 20㎞의 검은 기름을 해상에서 1차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북쪽으로는 만대를 지나 가로림만으로, 남쪽으로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안면도를 지나 천수만, 나아가 보령 앞바다까지 예상되는 확산을 막아야 했다. 일명 '천수만과 가로림만 사수'작전이 펼쳐졌다. 가로림만은 충남지역 최대의 양식 밀집지대, 천수만은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7일 저녘부터 가로림만 4.2㎞, 근소만 2㎞, 학암포 1.5㎞ 등의 오일펜스를 설치했다. 8일부터 함정 103척(해경 46척, 해군 13척, 방제조합 24척, 민간어선 16척 등)과 항공기 5대가 투입됐다. 이후 연륙교 천수만 앞에 5중으로 오일펜스를 설치해 천수만을 안전하게 했다.

그 사이 전국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의 행렬이 태안으로 이어졌다. 멀리 제주도에서 온 자원 봉사자가 있는가 하면 기말 시험을 태안으로 오는 버스에서 치르고 단체로 봉사 활동에 나선 대학생들, 연말 송년회를 취소하는 대신 행사 경비를 성금으로 기탁하고 자원봉사에 나선 기업체 직원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 기름 오염 현장을 찾은 아이들 등 온정의 손길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믿음직한 군인들은 사람의 손길과 장비 접근이 어려운 곳에 투입됐다. 특수부대, 공수부대 등은 이름 없는 절벽, 경사가 심해 자원봉사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암벽이나 갯바위, 이름 없는 절벽 해안가 등에서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제 활동에 나섰다. 장병들은 밧줄을 이용해 바위를 타면서 바위에 묻은 검은 기름을 닦아냈다.

사고 발생 당시 모항 앞에서 만대까지 40㎞의 해안가에 밀려왔던 검은 찌꺼기는 사고 10일째 상당 부분 제거됐고 만리포해수욕장 등 모래해안 16km의 경우 거의 기름띠 제거가 완료됐다.








1주여일 만에 1~2개월 걸릴 방제작업 끝내
1997년 일본 후쿠이현 미쿠니정 앞바다에서 발생한 나홋카호 사고(중유 6240여㎘ 유출) 때는 일본 전역에서 자원봉사자가 30여 만명 몰려들었지만 태안은 보름여 만에 벌써 30만 명을 넘어섰다.

태안 사고 현장을 찾은 외국 전문가들은 일제히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며 놀랐다. 미국 연안경비대(USCG) 방제전문가와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해양생태계 연구원으로 구성된 미국의 방제실무팀은 “짧은 시간에 해안 부착유를 제거한 것은 매우 놀랍다”고 했다. 일본 해상보안청 및 해상재해방지센터 소속 전문가들로 구성된 방제기술지원단을 이끌고 왔던 요덴 유키오 외무성 북동아시아 조정관은 “1~2개월 정도 걸려서 할 수 있는 일을 불과 1주일여 만에 해낸 것 같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사고 피해지역을 살펴본 유엔환경기구(UNEP), 유럽공동체(EU),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 공동조사단도 “한국정부가 초동 조치를 신속히 하고 관계기관, 지방정부, 군당국, 시민단체, 자원봉사자 등이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사하로프 단장은 “국제적 기준에 따라 유처리제를 정상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해상에 떠 있는 타르의 경우 원유보다 유해성이 훨씬 적다. 대응책이 타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방제대책본부는 환경과 양식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처리제를 엄격한 기준(수심 20m 이상, 10㎞ 이상 먼바다에서 살포)에 따랐다.


생태계 완전복원까지 20년 걸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우리나라의 방제 능력은 고작 1300㎘로 열악한 상태였다. 유출량 5035㎘의 1/4 수준이었다. 이후 해상 오염 사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방제시스템과 방제요원을 늘려왔다. 방제정, 유회수기 등 장비도 확충해 현재 방제능력은 3일간 해상에서 1만 6500t의 기름을 회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번 태안 사고는 기상 악화로 초기 방제에 애를 먹었다. 기상 악화에 따른 사고에 대비한 방제 능력의 보완 필요성도 있다. 헬기밖에 없어 싱가포르 방제전문기구(EARL)에서 방제 항공기를 1대 빌려왔다. 대형 사고에 대비해 각종 방제 장비를 많이 보유한다면 좋겠지만 국가적인 낭비 측면도 있어 효율적인 방제방안 마련이 향후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유조선의 이중선체 의무화는 2010년부터 실시된다. 사고 방지를 위한 정책적인 부분도 보완이 필요하다.

방제대책본부의 실무 책임자인 윤혁수 해경 경비구난국장은 "응급 방제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지만 향후 지속적인 방제 작업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환경운동단체에서는 생태계가 완전 복원되기까지는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혁수 해양경찰청 경비구난국장

숨가빴던 15일 “파도가 미웠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지난 12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충남 태안해양경찰서 내 방제대책본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마친 윤혁수 해양경찰청 경비구난국장(56·치안감)은 “내일부터는 브리핑을 하루 2회에서 1회로 줄이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취재진에게 물었다. 사고 발생 15일째를 맞아 응급 방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임을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윤 국장은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2회씩 브리핑을 해왔다.

방제대책본부의 실무 책임자인 윤 국장은 사고 발생 이후 매일 아침 해경 헬기를 직접 타고 충남 태안 앞바다를 돌며 기름 유출 상태를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7시 2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태안 인근 해안가에서 전북 군산 인근 해상까지 수면 위 50m를 저공 비행하면서 육안으로 오염 정도를 파악한다. 동승한 오염과 직원이 작성한 오염도를 토대로 당일 실시될 방제 작업 인력을 배치한다. 오전에 이어 오후 2시 30분 무렵 또다시 2시간 동안 헬기를 타고 점검에 나선다.


거친 풍랑 헤치고 보름 만에 응급상황 종료
매일 저녁 8시에 해경, 태안군, 육군, 해군, 소방방재청, 산림청, 해양수산부, 환경부, 방제업체, 보험업체 등이 참석하는 정례회의까지 그의 하루 일정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응급을 다투는 방제는 거의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원유 상태의 기름은 거의 제거했고 타르 덩어리가 해상 일부에 남아 있다.” 사고 후 불과 보름여가 지났지만 민ㆍ관ㆍ군이 합심한 노력 덕분이다.

윤 국장은 위성 지도를 꺼내 들고 숨가빴던 방제 순간을 떠올렸다. 사고 직후 원유 오염도를 보면 태안 외해에 가로세로 40㎞ X 20㎞로 시꺼먼 원유가 뒤덮여 있었다. 조류를 따라 안면도 아래의 삽시도, 원산도로 이동해 자칫하면 천수만이 오염될 위기였다. 해경의 경비정, 방제업체의 방제정, 해군의 함정 등 매일 70여척을 총동원, 해상방제에 매달려 '천수만 사수'에 성공했다.

윤 국장은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사고 초기 작업에 애를 먹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부에서는 초기 진압 미숙을 지적했지만 12월 7일 사고 당시 3~4m의 파고와 풍랑주의보가 내려졌고 풍속(13~14m/초) 또한 거세 효율적인 방제가 불가능했다.

태안 현장을 찾은 외국 전문가들이 방제 과정과 작업에 대해 놀라운 반응을 보여 뿌듯한 마음도 있다. 일본 방제 전문가들은 10여 년 전 나홋카호 유출 사고에 비해 태안 유출 사고는 유출량이 1.5배 많다고 했다. 당시 한 달이 걸렸던 작업을 한국은 일주일 만에 성과를 이뤄내 기적과 같다며 놀라워했다. 미국 관계자들은 해경, 관계당국, 자원봉사자의 조화로운 노력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고 유엔, EU 등의 전문가들도 한국의 방제는 논리적이고 전문적이라 평가했다.

 





글 | 이방현 기자


절망의 한숨 소리를 희망의 노랫소리로 바꿔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듯한 손을 내밀어 신바람 나게 만드는 사람들,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 2003년 9월 태풍 매미, 2005년 강원 양양군 산불, 2006년 태풍 에위니아 등 대형 사고나 재난으로 인해 국가차원의 사고 수습이 필요한 지역엔 어김없이 자원봉사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어떤 보수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사고현장으로 달려가 작은 도움이라도 보탰다. 그리고 그 작은 도움들이 하나둘 모여 피해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온 국민에게 큰 힘이 됐다.

이번 충남 태안 지역 기름 유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자원봉사자의 활약은 여실히 나타났다. 이들의 활약은 태안 주민에게 희망을 갖게 한 원동력이 됐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9일, 드디어 구원의 손길이 뻗치기 시작했다. 하얀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속속 태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첫날에만 7300여명, 작지만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기름 유출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알게 된 국민들은 다른 일을 제쳐두고 태안으로, 태안으로 달려왔다. 사고 발생 2주일이 지날 무렵에는 순수 민간 자원봉사자만 약 30만명, 주민과 공무원 등을 합치면 4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순수 민간 자원봉사자만 매일 평균 2만 2000여명이 사고 현장을 찾은 셈이었다.


첫날에만 7300여 명 아름다운 시작
아빠와 함께 태안을 찾았다는 10살 초등학생부터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 노동자까지 기름제거 활동에 한몫했다. 나이·직업·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뭉쳤다. 서해를 뒤덮을 듯 거센 속도로 퍼지던 검은 기름띠도 흰색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가 만들어 놓은 인간 띠에 무릎을 꿇었다.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고 나자마자 다시 밀려드는 파도에 바위가 기름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닦고 또 닦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손길이 끝내 기름을 없앨 것이라 믿습니다.” 휴가를 얻어 자원봉사에 나섰다는 회사원 김형수 씨(33·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말이다.

사고가 발생한 초기에 자원봉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혹시 역부족이 아닐까 김씨처럼 걱정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단합된 힘은 서해 앞바다를 희망으로 바꿔놓고 있다.

부산에서 동네 주민과 함께 자원봉사활동에 나섰다는 유정숙 씨(45·여)는“아무리 기름을 제거해도 또다시 밀려드는 기름에 손을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면서 “하지만 국민적인 합심으로 이번 사태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에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썰물 시간을 이용한 하루 6시간의 봉사활동이 작아 보이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덧붙였다.
함께한 자원봉사자들 간의 서로 배려하는 마음씨도 이들에겐 큰 힘이 됐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의 활동은 휴일이면 더욱 활발해진다. 주말엔 하루 평균 3만~4만명이 삽을 들고, 뜰채를 들고, 흡착포를 집어 들었다. 부족한 흡착포를 대신해 헌 옷이나 헝겊, 걸레 등을 직접 가져와 기름을 닦아내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12월 19일에도 자원봉사자가 2만 5000명을 넘어섰다. 소중한 한 표에 버금갈 정도로 귀중한 발걸음이었다. 또한 25일 크리스마스 때도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이어졌다. 한국을 찾은 세계의 방제 전문가들도 “놀라운 자원봉사정신”이라고 격찬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마음만큼이나 태안 앞바다도 점차 깨끗해지고 본래의 아름다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충남 태안 앞바다의 기름을 제거하는 현장엔 연예인들도 앞장섰다. 직접 기름 유출 현장으로 달려가 방제작업을 돕기도 하고, 성금을 보태기도 했다.
박진희는 소속사에 알리지도 않고 친구와 함께 태안으로 달려가 기름에 오염된 모래를 자루에 담거나 나르고, 천조각 등으로 바위를 닦는 등 기름 제거 작업에 나섰다. 김제동도 하루 스케줄을 다 비우고 매니저와 조용히 태안에 가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박진희의 경우는 일을 하던 다른 자원봉사자가 마스크를 쓴 박진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선행이 알려지게 됐다. 박진희는 2003년에도 수해복구 현장에서 봉사했던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김제동·유준상 등 연예인들도 동참
유준상·김강우·김혜성 등 나무엑터스 소속의 연기자들은 함께 태안에서 방제작업을 도왔다.
바다는 해양수산부 홍보대사 자격으로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아 바위와 모래사장에 남은 원유 등을 제거했다.

SBS TV ‘라인업’의 이경규·김용만·김구라·붐 등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방제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한효주는 KBS1 TV ‘사랑의 리퀘스트’팀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쳤다.
방제작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성금을 통해 도움을 준 연예인들도 있다.

배용준은 성금으로 3억원을 쾌척했고, 서태지닷컴 등에선 자원봉사 신청과 함께 모금 운동도 펼쳤다. 녹색연합 홍보대사인 김미화는 심형래·임하룡·박준형·김경식·강호동·김학래·배칠수·지상렬·박준규 등과 함께 사고지역 생태계 복구를 위한 성금을 전달했다.

 





글 | 손혁기 (국정브리핑 기자)


지난 12월 15일 12시30분, 대천항에서 오도와 보령 앞바다로 기름 찌꺼기 방제 작업을 나서는 해경 P-89정(정장 서정률)을 탔다. 50t급 경비정 P-89정은 원유 유출 사고가 터진 다음날(첫날은 풍랑주의보로 200t급 이상 배만 출항이 가능했다)부터 15일 아침까지 사고지점 남쪽 신진항, 천수만 입구인 오도와 호도 인근에서 방제에 참여했다.

배에 오르자 주갑판에는 방제복과 고무장갑, 흡착포 등 방제 도구들이 가득 차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배 곳곳에서 기름이 묻어났다. 대천항에서 멀어지자 높은 파도와 바람에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 때문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해양경찰청 소속 강진영 수경은 새해 2월 2일이면 전역하는 말년이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때지만 그가 입은 빨간 구명조끼는 기름에 온통 검게 절어 있었다. 조끼 주머니는 밤에 바다에 떨어질 경우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한 손전등으로 불룩했다. 다행히 이번 방제작업 중에 바다에 빠진 사람은 없었다.


전역 말년차도 기름에 절어
이번 사고가 나고 휴가는 모두 정지됐다. 2박3일을 바다에서 보내고 나머지 3박4일을 항구에 보내는 교대 근무조차도 빡빡한 형편이다. P-89정은 지난 12월 8일 출동해서 보급품을 받기 위해 잠시 대천항에 들른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고해역에서 기름을 걷어냈다. 보급품도 그나마 오가는 다른 배에서 전해 받기 일쑤다. 강 수경은 “1월에 말년 휴가는 갈 수 있을까요”하고 웃으면서 혼잣말처럼 되물었다. 

출항한 지 30분쯤 지나 롤링에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추위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바다에서는 바람만 막으면 된다고 해서 방제복도 껴입었지만 손이 시리고 꼼짝하기 싫어졌다. 전지훈 순경은 방제복을 두 개 입으면 바람이 안 들어온다며 웃었다. 

한 시간 가까이 물살을 헤쳐 사고 해역에서 120km 떨어진 연도 인근에 도착했다. 파도는 2m 높이로 쳤고, 바다에는 거센 바람으로 곳곳에서 하얀 파도가 일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뿐만 아니라 배가 부-웅 떴다가 떨어지는 피칭도 이어졌다. 놀이동산에서 타는 바이킹은 저리 가라 였다.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녹도, 호도 등 먼바다에서 방제작업을 벌였다.

TV화면으로 보면 배가 망망대해에 잔잔히 떠 있는 것 같지만, 현장은 전혀 다르다. 하얀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바람과 추위와 싸워가며 기름을 걷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날 일기예보는 ‘바다의 물결은 서해 전 해상과 동해 먼바다에서 2~4m로 높게 일 것’이라고 했다. 선실에 들르니 바다낚시를 자주 다닌다는 TV카메라맨도 배 멀미로 머리를 창에 기대고 있었다.


원시적이지만 뜰채 방제가 최고
결혼한 지 1년 된 민병웅 순경에게 물으니“사건 나면 으레 못 들어오는 줄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부가 남편의 업무 특성을 어느새 훤히 꿰고 있다는 말이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출동으로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따듯한 구들장에 몸을 지지고 싶다”고 했다. 8일부터 이들은 아침 5시면 출동해서 7시부터 10시간을 갑판에서 기름띠와 사투를 벌여왔다.  

배의 엔진소리가 잦아들자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기름 찌꺼기들이 모인 곳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각자 뜰채와 양동이 흡착포를 챙겼다. 민병웅·전지훈 순경이 뜰채를, 강진영·박준수 수경이 흡착포와 양동이를 챙겼다.

“뜰채로 건져낸다.” 이번 원유 유출 사고 이후 가장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다. 바다에 떠다니는 기름 찌꺼기들은 경비정과 어선이 찾아다니며 뜰채로 건져낸다. 원시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5미터 장대 끝에 30cm도 채 안 되는 뜰채 망태기로 종이조각처럼 떠다니는 기름 찌꺼기를 건져내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작업공간은 그야말로 사방에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다. 추위와 바람도 거세다. 기름 찌꺼기는 파도가 치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것을 출렁이는 배 위에서 뜰채로 떠내는 것이었다.

선두에서 민병웅 순경이 기름 찌꺼기를 뜨기 위해 뜰채를 내렸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배가 출렁거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로 그때 민 순경은 빠른 손놀림으로 기름 덩어리를 걷어냈다.

뜰채를 양동이 위에 올리자 강진영 수경과 박준수 수경이 기름 찌꺼기를 흡착포로 닦아냈다. 끈적끈적한 기름 찌꺼기들은 탁탁 털어도 떨어지지 않아 일일이 씻어내야 했다. ‘뜰채로 건져냈다’라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이들의 힘든 작업과 안타까운 심정을 다 나타내지 못해 미안했다.


악전고투 작업에 태극기도 얼룩져
그렇게 1시간여 기름 찌꺼기와 싸웠을까. 거센 풍랑 속에 뜰채 하나 쥐고 파도 따라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기름 찌꺼기와 ‘악전고투’하는 사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데도 방제복 안과 장화 속, 고무장갑과 목장갑을 이중으로 낀 손바닥에 땀이 서렸다.

갑판원 막내인 전상민 일경이 함께 탄 방송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파도랑 바람 때문에 힘들지만 열심히 해야죠.” 열흘이 넘는 출동으로 야윈 얼굴에 군기 든 모범답안이지만, 다들 피해 어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 추위와 고생은 참을 만하다고 했다.

심한 파도로 TV카메라맨이 넘어질까 봐 보조원이 허리까지 잡아줘야 했지만 P-89정 대원들은 내 집 마당처럼 쉽게 다녔다. 하긴 그들에게 P-89정은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경비를 서고, 방제 작업까지 모든 것을 하는 삶터 그 자체였다.

배 뒤에서 파란 바다와 흰색으로 대조를 이루며 펄럭여야 할 태극기 끝이 기름에 얼룩져 있었다. “기름 찌꺼기가 이리저리 움직여 배의 앞, 옆, 뒤에서 작업하다 보면 태극기에도 묻게 된다”는 전지훈 순경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태극기인데…’라는 스쳐가는 생각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태극기도 흡착포처럼 기름을 묻혀가며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12시 30분 대천항을 출발한 배는 오도와 보령 앞바다까지 돌아 4시 15분에 돌아왔다. 배에는 기름 찌꺼기와 타르 덩어리를 담은 양동이 수십 개와 검갈색 기름띠가 묻은 흡착포 더미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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