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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기부하고 세금 내고? 나눔 가로 막는 벽


직장인 김경호(32) 씨는 ‘기부’ 이야기만 나오면 할 말이 많다.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 씨 어머니는 환갑을 맞아 잔치나 해외여행으로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자식들이 준 돈과 그동안 모은 쌈짓돈을 탈탈 털어 2천만원을 한 해외구호단체에 기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씨는 자기가 기부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연말정산을 하면서 괜히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한적십자사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기관에 기부했으면 어머니가 김 씨의 부양가족으로 돼 있어 김 씨는 기부금 2천만원 전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 씨 어머니가 기부한 곳은 지정기부금 단체로 분류돼 있어 소득의 15퍼센트까지밖에 소득공제가 되지 않아 연봉 4천만원인 김 씨는 6백만원밖에 소득공제가 되지 않았다. 기부에도 차별이 있는 셈이다. 숫자는 많지 않겠지만 김 씨처럼 고액기부를 한 사람들로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소득세제과 최영전 사무관은 “선의의 피해자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투명성이 검증되지 않은 단체에 대한 기부까지 똑같이 1백퍼센트 소득공제를 해주면 탈세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더 크다”며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는 “2006년 신고기준으로 볼 때 근로자의 99.7퍼센트가 기부금 총액이 소득의 15퍼센트를 넘지 않았다”며 “내년부터는 공제 한도가 20퍼센트로 상향된다”고 말했다.

2002년 2백억원 상당의 주식과 현금 15억원을 아주대에 기부해 장학재단을 설립한 황필상 수원교차로 회장은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국세청이 그의 기부를 ‘무상증여’로 간주해 1백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서 기부 주식 수가 해당 기업 지분의 5퍼센트를 넘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 최고 60퍼센트까지 증여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관계기관으로서는 주식의 공익법인 기부를 무한정 허용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기업가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해 기업에 대한 실질 지배력은 유지한 채 편법 상속 및 증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규가 이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항인 것은 분명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게 황 씨의 주장이다.

또한 부동산을 기부할 경우 공익단체가 기부받은 부동산을 팔려면 감독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따라서 공익단체는 기부자에게 아예 부동산을 팔아서 현금으로 기부하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동산을 팔아 양도세를 내면 남는 게 별로 없어 기부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부금을 한푼이라도 더 나눔사업에 써야 하는 기부단체들로서는 연말 소득공제 서류 발송은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대한적십자사만 해도 지난해 말 15만명의 기부자들에게 소득공제서류 우편발송비로 3천7백만원을 썼다. 이는 2천5백원짜리 도시락을 결식아동 1만5천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액수다.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증빙서류를 발급하는 시스템을 만들기엔 비용과 절차가 부담스럽다. 손쉬운 방법은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 기부금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부단체들의 기금관리도 투명해질 수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종교단체 기부금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을 개정해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민간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모은 기부금의 배분을 정부에서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기부단체들도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연정(33) 씨는 3년 넘게 해오던 기부를 최근 중단했다. 기부하던 단체에서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한 번도 예산지출 명세서 등을 통해 회계처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기부금이 어떤 곳에 어떻게 쓰이는지 명확히 알리지 않으니까 불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회계정보 제공 사이트인 한국가이드스타 박두준 사무국장은 “한국가이드스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 7백55개 중에서 회계정보를 공시한 단체는 75개에 불과하다”며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라도 회계정보를 자세히 공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부단체와 정부는 국민들의 자발적 기부만 기대하지 말고 기부문화에 대한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 아름다운재단이 발표한 ‘2007년 한국인의 기부지수 조사’에 따르면 정기적인 기부를 해온 기부자 수는 전체 기부자 중 16.6퍼센트에 그쳤다. 반면 비정기적으로 기부한다는 응답자는 80.4퍼센트였다. 기부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정기적인 기부의 방법과 필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자녀 등 가족의 이해를 돕기 위한 나눔교육을 해달라’(35퍼센트) ‘의미 있는 기부를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28.5퍼센트)는 등의 답변이 많았다.

기부에 대한 기업들의 협조도 필요하다. 많은 신용카드사나 인터넷쇼핑몰에서 마일리지와 포인트를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들은 현재까지 자사 회원들이 축적한 마일리지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기부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국내 항공사들은 “카드사와의 관계, 다른 제휴항공사와의 관계 등 풀어야 할 부분들이 많아 아직 실행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최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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