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나라 가족계획은 1961년 4월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창립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정책결정기관인 국가재건위원회는 가족계획을 ‘국가 시책’으로 채택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1999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2006년 다시 인구보건복지협회로 명칭이 바뀌면서 가족계획사업을 계속 주관해왔다.
그동안 가족계획을 주관한 협회에서 내놓은 시대별 표어나 유행어를 보면 당시 세태를 읽을 수 있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다소 과격한 표어로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했다. 1966년에는 ‘3·3·35운동’을 펼쳤다. 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까지만 낳자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도 산아제한이라는 기조는 유지되지만 구체적인 목표는 3명에서 2명으로 바뀐다. 1973년 내건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봐도 명확하다.
[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로 시작된 1980년대, 출산율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하나만 낳자는 정부 시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성비(性比) 불균형이 심각해진 것.
1990년대 등장한 표어는 ‘아들 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딸로 판단하지 말자’로 골라 낳기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로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되자 가족계획은 출산장려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는 2004년 대상을 받은 가족계획 표어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와 ‘엄마 아빠 들을수록 행복해지는 말입니다’(2006년) ‘아이가 미래입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이상 2007년)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최근에는 1960년대 ‘3·3·35 운동’에 견줄 만한 운동으로 ‘1·2·35출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결혼 후 1년 안에 임신해서 2명의 자녀를 35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는 것이다. 만혼이 저출산의 요인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2006년 상영된 코미디 영화 <잘 살아보세>는 1970년대 가족계획 당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지금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지만 당시에는 산아제한이 국가적 과제였음을 엿볼 수 있다.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 홍보영화 등 갖가지 산아제한 방법을 동원해도 효과가 없자 정부가 전국 각지로 가족계획 요원을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처녀인 주인공 박현주(김은정 분)는 국가 공식 지정 가족계획 요원으로 전국 출산율 ‘부동의 1위’인 농촌마을 용두리에 간다. 이곳 주민들은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최고’라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특수임무를 띠고 파견된 박현주는 ‘사람은 태어날 때 입만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배도 가지고 나온다”며 피임에 무지한 마을 주민에게 콘돔, 정관수술 등 각종 피임방법을 알려준다. 콘돔을 난생처음 접한 마을 주민들은 고무풍선으로 착각, 실소를 금치 못할 사건들이 일어난다.
1991년 대한가족계획협회 명의로 펴낸 <가협 30년사>에도 여성요원들이 가족계획 홍보를 하다 곤란을 당하는 사건이 적혀 있다. 가족계획 여성요원 1백여 명이 세미나 겸 속리산 관광을 갔다가 근처 마을로 가족계획 홍보를 나갔다고 한다. 여성들이 콘돔을 내놓으며 피임 운운하는 것을 본 동네 청년들이 심한 욕설과 함께 ‘무지막지한 습격’으로 내쫓는 사건이 발생해 영화 속에 나타난 에피소드가 허구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족계획에는 피임이 필수다. 가족계획이 1961년 정부 사업으로 바뀌면서 피임약 수입금지령이 폐지돼 1966년 먹는 피임약 ‘아나보라’가 수입된다. 당시 이를 빨리 공급하기 위해 6개월 만에 속성 임상실험을 끝내는 등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이어 수입된 ‘오이기논’을 두고 시골사람들은 “귀찮고 잊기도 쉬운데 왜 매일 먹어야 하느냐”며 사흘치나 한 달치를 한꺼번에 먹다 출혈과 함께 유산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자 피임이 아니라 임신 후 아이를 지우기 위해 ‘유산약’으로 먹는 일까지 생겼다.
피임약 보급뿐 아니라 무료 정관수술과 자궁 내 장치시술도 전국적으로 전개됐으며 형법으로 금지하고 있던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합법화도 추진됐다. 모성보호와 가족계획사업을 위해 1972년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합법화가 포함된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것이다.
자궁 내 장치와 먹는 피임약은 경제적이기는 했지만 탈락률과 중단율이 높아 결과적으로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좀 더 확실한 피임을 위해 1974년부터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복강경수술과 영구피임법으로 알려진, 난관을 묶는 ‘미니랩’도 피임수단으로 보급됐다.
최근 인구보건복지협회 정책은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선회했다. 즉 ‘묶은 자가 풀자’는 의미로, 과거처럼 정관이나 난관을 묶거나 약물로 막았던 피임시술이 아니라 불임 부부를 대상으로 한 인공수정 등의 출산장려 시술을 시행 중이다.
글·강선임 객원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