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서울 영등포구 신월5동의 주택가 2층. 계단을 올라가기도 전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 관철이의 인사 소리에 네 형제가 우당탕탕 달려 나왔다. 아빠 황운기(39) 씨와 엄마 김연정(32) 씨는 각각 세 살 윤지와 생후 9개월인 윤아를 안고 기자 일행을 반겼다.
“무남독녀로 외롭게 자라 그런지 결혼하면서 셋은 낳아야지 하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다섯째까지 줄줄이 아들이더군요. 남편이나 저나 딸 욕심에 여섯째를 임신했는데, 다행히 딸이었죠.”
남편 황 씨 일가는 딸이 귀한 집이라 여섯째 윤지의 탄생은 집안의 경사였다. 46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딸이라니 그럴 법도 하다. 부부는 이런 윤지가 외로울까봐 여동생을 만들어주자고 결심하고 막둥이를 임신했고, 바람대로 ‘공주님’을 맞이했다.
“애들 돌보는 게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둘 기르는 것보다는 네댓 명 키우는 게 나아요. 엄마가 안 놀아줘도 저희들끼리 알아서 챙기고 노니까요.”

김 씨는 무엇보다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이 고맙다고 한다. 영등포의 한식집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남편은 쉬는 날이면 아기 돌보미를 자처한다. 남편은 손목 아픈 아내를 대신해서 여섯 아이가 돌을 맞이할 때까지 아이들 옷을 손수 빨았다. 또 ‘군기반장’을 자처하는 큰아들은 동생들을 돌보면서도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 부모의 자랑거리다.
황 씨 가족은 셋째아이를 낳은 후부터 정부의 출산 지원을 받고 있다. 아이 한 명당 어린이집 보육료를 16만원씩 지원받지만, 재료비나 특강비 등 부대비용을 생각하면 넉넉한 금액은 아니라고 했다. 또 줄줄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교육비가 급증할 것이라며 걱정이다. 하지만 황 씨 부부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적인 부분만 따진다면 아이 못 낳죠.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 갖는 건 미루면서 애완동물을 꼭 기르더라고요. 그런데 개나 고양이 기르는 돈이면 애들 키우고도 남아요.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요.”
장난꾸러기 5형제 때문에 외출이 두렵다(?)는 황운기 김연정 부부. 그러면서도 까꿍 하며 갓난아기를 어르는 아이들을 보는 그들의 눈엔 사랑이 가득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막내가 마루를 기기 시작하자 셋째 예원이(7)가 덥석 안더니 까르르 웃는다. “우리 오돌이 너무 귀엽죠?” 오돌이는 5남매의 막내 하원이를 언니 오빠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5남매’라는 긍지와 사랑을 듬뿍 담은 이름인 셈이다.
돌이 갓 지난 오돌이의 엄마 아빠는 이은아(38) 박오승(44) 부부. 대학 시절 기독교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결혼한 지 이듬해인 1997년에 터키로 떠났다. 신앙인으로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 씨는 터키에 머물면서 큰아이 시원이(10)를 시작으로 열매처럼 예쁜 아이들을 연달아 낳았다. 아들 하나, 딸 셋. 사실, 골목마다 아이들로 가득한 터키에서 네 아이는 많은 축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만 9년을 터키에서 보내고 2007년에 귀국했다. 남편 박 씨의 신학대학원 진학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임신을 했고, 막내아들 하원이가 태어났다.
“5남매를 데리고 외출하면, 다들 깜짝 놀라요. ‘참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다가도 ‘아빠, 직업이 뭐냐, 돈은 많이 버시냐?’ 묻더라고요(웃음). 물론 돈으로 키우자면 끝도 없이 들어가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정에서 인성교육을 책임지고, 사회에서 필요한 교육이 뒷받침된다면 사교육비로 많은 돈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 집에는 TV가 없다. 첫애를 낳으면서 아예 TV를 치워버렸다고 했다. TV뿐 아니라 아빠 박 씨는 탄산음료도 끊었다. 아이에게 바른 먹을거리를 먹여주고 싶어서다. “아빠가 먹으면서 아이더러는 먹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이 박 씨의 주장. 몸에 해로운 인스턴트 음식도 사절이다. 부모부터 모범을 보이니 TV나 게임기 없이도 아이들은 잘만 논다.

거실 한쪽 벽에는 아이들 책이 가득하다. 동화책을 좋아해서 1년이면 3백 권씩 읽어치우는 아이들이다. TV와 온라인게임의 유혹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게임을 하며 놀거나 책을 읽는다. 다 읽고난 동화책과 장난감 등을 치우는 것도 아이들 몫이다. 이 씨 부부는 아이들이 집안일을 일부 돕게 한다. 분리수거가 아이들의 몫. 아이들이 꽤나 좋아해서란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게 힘은 들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자녀 키우는 일만큼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이은아)
“가끔 어른들이 ‘잘 낳았다, 자녀가 재산이지’ ‘지금 고생해도 늙어서 덕 볼 거다’ 이런 말씀 하시는데 그게 달갑지는 않아요. 우리가 노후를 기대려고 애를 낳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태어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는 소중한 존재거든요.”(박오승)
박 씨는 정부의 출산대책에 대한 바람도 밝혔다.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나온다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경차를 구입하면 지원을 해준다는데, 사실 아이가 많은 집은 경차가 필요치 않거든요. 이런 세세한 점까지 신경 쓴다면, 더욱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중매로 만난 아홉 살 연하의 아가씨가 마음에 쏙 들었던 마흔 살 노총각은 프러포즈를 하며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농촌에 살 것, 연로한 시어머니를 모실 것,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을 것. 아가씨는 이런 간 큰 남자의 청혼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가 내건 조건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결혼생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17년 만인 지난 3월 초, 열 번째 아이(7남 3녀)를 낳은 권학도(57) 목사와 이재순(48) 씨 이야기다.
충북 진천군에 있는 권 목사의 집에 들어서자 ‘열째야 환영한다’는 글귀가 쓰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 오빠들이 동생을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99제곱미터(30평) 남짓한 집에는 화장실이 2개, 컴퓨터가 3대 있고, 곳곳에 책들이 빼곡한 책장이 놓여 있다.
시어머니까지 열세 식구의 살림을 꾸리는 이 집의 안주인 이재순 씨는 아이들을 모두 자연분만하고, 모유 수유로 키웠다. 배가 꺼질 날이 없었고,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모유 수유를 하다 다음 아이가 태어나면 바통 터치를 해서 또 젖을 물렸다. 아이들 중 여섯이 연년생이다. 출산할 때 항상 아내 곁을 지켰던 권 목사는 “아이 하나하나 낳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여섯째 강찬이는 4.6킬로그램 우량아라 힘들었고, 여덟째 예찬이는 갓난아기 때 장중첩증으로 고생했죠. 일곱째 은혜도 다섯 살 때 열이 나면서 경기를 해 마음을 졸인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많으니까 하나쯤 아프더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에겐 하나하나 다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생명은 모두 감사하게 받기로 약속한 권 씨 부부는 임신 중 기형아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설령 잘못된 아이가 태어난다 하더라도 키울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푸념하고 쪼들린다고 계산기 두들기다 보면 아이들 못 키워요. 그리고 힘들 때보다 기쁠 때가 더 많고요. 아이들은 제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그동안 아이들을 풍족하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돈 들어갈 일 생기면 그때그때 해결할 방법도 생기더라고요.”(이재순)
“일곱째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산아제한정책을 펼 때였기 때문에 넷째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어요. 우리 가족을 향한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았고요. 그런데 여덟째를 낳을 때부터는 출산장려정책 덕에 한숨 놓았지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도 많아졌고요.”(권학도)
저출산 문제는 도시보다 농촌이 더 심각하다. 맏이 은진이(18)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3개나 되던 인근 초등학교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권 목사네 아이들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비슷한 두세 명씩 그룹을 이뤄 놀고 같이 공부도 하더라고요.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았지만, 모두 성적이 상위권이죠. 학급, 학교 임원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십도 강하고요.”
온 가족이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훈기가 좋다는 권학도 이재순 부부.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어떤 것에 투자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한단다.
글·정지연 기자, 김명희 여성동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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