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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아파하는 아이들 국가가 손 잡아야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4월 29일 새벽 1시.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서울 신촌의 한 PC방. 밤늦은 시각인데도 10대와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소년 10여 명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대부분 혼자서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채 조용히 모니터를 주시하며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한창 공부를 하거나 다음날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라면 이토록 늦은 시각까지 PC방에서 모니터와 씨름하고 있진 않을 터. 옆자리에 앉아 있는 청소년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보았다.

“PC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가출청소년이 많다면서요?”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있기야 있겠죠. 그런데 누가 ‘나 가출했다’고 써놓고 PC방에 다녀요?”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각이지만 신촌 일대는 여전히 불야성이다. 노래방에 도우미를 실어 나르는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취객이 비틀거리며 택시를 기다린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호객 행위를 하는 이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두서너 명씩 어울려 심야 밤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도 드물지 않다. 정열이 넘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체념한 듯 떠도는 그들의 모습에서 애처로움마저 느껴졌다.

서울 K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영호(가명) 교사는 “청소년들이 가출하는 이유는 대부분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교사는 “부모가 폭행을 일삼거나 불화가 심하면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심이 커져 말다툼 끝에 집을 뛰쳐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한 반에 4, 5명 정도 (가출한 학생이) 있다”고 전했다.

가출한 청소년들은 대개 술집 같은 유흥업소나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PC방을 전전하며 지낸다고 한다. 그러다 단칸방에서 남녀가 섞여 자취를 시작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성관계까지 갖기도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탈선에 그치지 않고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올해 들어 두 건의 청소년 범죄가 알려지면서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3월 중순, 동거하던 10대 남녀 4명이 정신지체 장애인 유모 양을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유 양이 다른 남자와 입맞춤을 했다는 이유로 유 양의 남자친구 이모 군 등 일행이 흉기까지 사용해 유 양을 20일간 고문한 끝에 숨지게 한 사건이다.

3월 초에는 유명 인터넷 사이트에 ‘알몸 여중생 폭행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동영상 속 여중생들은 벌거벗겨진 채 서로 때리기를 강요당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이 뒤따랐다. 범인은 또래인 10대 청소년들로 가출한 여중생들을 인터넷으로 유인해 성매매에 이용했고, 여중생들이 도망치자 협박용으로 찍어놓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사건은 가출청소년들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부모와 학교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박OO(만 15세·여) :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김OO(23세·남)과 성매매. 가출청소년으로 지낼 곳이 없다는 사정을 알고 김OO이 자신의 주거지에서 9개월간 동거하면서 성매매를 알선하고 그 대가를 생활비 명목으로 가로챔.

#서OO(만 16세·남) :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새로 이사 온 곳에 적응하지 못해 가출한 후 성인여성 3명과 만나 성매매. 이 중 보험설계사 한OO(21세·여)로부터 숙식을 제공받기로 하고 그 대가로 성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



 

보건복지가족부 청소년보호중앙점검단이 2008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단속한 내용 중 일부다. 성매매 청소년은 2008년 상반기 단속에서 36명이던 것이 하반기 들어 69명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가출청소년들이 과거에는 주로 주유소나 PC방 아르바이트 등으로 용돈을 조달했지만, 경제 한파로 이마저 줄게 되자 용돈벌이로 성매매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가출청소년들은 주로 PC방이나 컴퓨터가 설치된 모텔 등에서 성매수자를 찾기 위해 대화방을 개설해 유인한다.

청소년 성매매뿐 아니라 청소년 범죄도 해마다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경기 고양 덕양을)이 4월 13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청소년 범죄는 해마다 크게 늘었다. 2008년 방화 범죄의 경우 2006년에 비해 무려 65.5퍼센트 늘었고, 강도 범죄도 같은 기간에 35.5퍼센트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범죄의 증가 원인을 ‘가정문제’에서 찾는다. 가정불화가 청소년의 가출을 부추기고, 가출을 하게 되면 급기야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히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불화에 따른 이혼의 부작용은 곧바로 자녀에게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방치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혼한 부부의 20세 미만 미성년 자녀는 무려 10만2천7백명이었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이혼 가정의 자녀가 모두 가출하거나 비행청소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혼에 따른 불안정한 가족관계는 청소년 가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고한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부모 이혼으로 자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부모를 여읠 때 받는 느낌과 유사한 수준”이라며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은 역할 모델과 상호 협력의 부족 등으로 사회성에 영향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족의 보호가 없거나 불화를 겪는 가정의 자녀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가출하게 되고 비행청소년이 되기 쉽다. 부부 사이에 인륜이 있다면, 부모 자식 간에는 천륜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인륜을 다하지 못하면 천륜까지 위태로워지는 셈이다.최근에는 황혼이혼까지 느는 추세여서 또 다른 가정 위기의 요인이 되고 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2008년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의 이혼은 2만6천9백 건으로 총 이혼 건수 가운데 23.1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러한 수치는 전년보다 1천9백 건 늘어난 것으로 3퍼센트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이혼 부부의 주된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가 47.8퍼센트로 가장 많았지만, 경제문제가 이혼의 이유가 된 비율도 14.2퍼센트에 달했다.

김미영 소장은 “건강한 부부는 위기가 닥치면 더욱 결속력을 다진다. 그렇지 못한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 같은 외부적 요인이 가세하면 더 큰 위기로 치달아 파국을 맞기 쉽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반드시 경제위기 때문에 부부가 이혼에 이르렀다기보다는 가부장적인 문화나 고부갈등, 잘못된 경제관념 등 평소 복합적인 갈등이 안으로 쌓여 있다가 경제위기가 눈앞에 닥쳤을 때 이것이 폭발해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분석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듯, 건강한 가정 역시 평소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닥쳤을 때 이겨낼 힘을 낼 수 있다. 국가와 사회는 따지고 보면 수백만 가정의 집합체와도 같다. 그래서 가정을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위기로 치닫는 가정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의 현실은 한국사회 곳곳이 멍들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가족 해체에 따른 청소년 범죄의 증가는 미래 한국사회를 암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구자홍 기자

 

 청소년 범죄의 원인과 예방을 위한 전문가 진단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의 사랑과 사회적 관심”


전문가들은 가출청소년과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정 내에서 인성교육이 먼저 이뤄지고, 학교와 사회로 점차 퍼져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하대 법학과 원혜욱 교수는 “청소년 범죄는 가정, 학교, 사회 환경적 원인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학교교육의 문제점이 청소년 가출과 비행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 교수는 “학교가 입시 위주 교육으로 흐르다 보면, 열등한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뜻이 맞는 아이들끼리 가출하게 된다”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들을 받아줄 여건이 안 돼 있기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원 교수는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경우 길거리 농구를 할 수 있는 농구장 등 아이들끼리 모여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우리나라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는 것. 원 교수는 “청소년들이 몸을 부딪치며 스트레스를 풀게 되면 가출이나 범죄 성향이 확연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자녀에 대한 부모의 대처능력이 부족해서 오는 청소년 문제도 적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김태성 선임상담원은 “올바른 자녀지도를 위해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연습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김 상담원은 “가출청소년이나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 내에서 인성교육이 이뤄지고 점차 학교와 사회로 퍼져나가야 하는데, 부모가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 표현을 게을리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친밀감이 형성돼야 서로 대화가 된다”고 조언했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청소년 범죄가 모두 가정문제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가정에서 잉태되는 경우가 많다”며 “무엇보다 가정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강 소장은 “청소년 범죄를 저지른 아이가 있을 때 ‘그 아이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부모와 가정의 체계 문제로 봐야 한다”며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면 내 새끼, 말 안 듣고 사고 치면 남의 새끼’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만약 어느 아이가 사고를 쳤다면 ‘사랑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경고음이 울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5월 1일 국무총리실과 관계부처, 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평가전담 태스크포스팀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가족부, 법무부의 위기청소년 관련 주요 사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책을 내놓았다.

위기청소년 관련 정책을 총괄적으로 담당했던 국가청소년위원회는 2008년 2월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로 통합됐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의 총괄 기능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흡해 교육과학기술부와 법무부, 경찰청 등의 위기청소년 대책을 종합해서 추진하기 곤란한 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보건복지가족부 주관으로 교육과학기술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과 관련 부처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례 협의를 통해 종합적인 정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은 학교 상담 내실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해 시행키로 했다. 학급별로 담임교사의 가정방문과 현장지도 등 위기청소년 상담활동에 대한 예산지원을 강화하고 수업부담을 완화해줄 방침이다.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위기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교육기관도 확대하고 지원을 강화한다. 평생교육시설과 사회복지관 등을 대안교육 위탁기관으로 지정하고 그 수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위기청소년 수용 비율이 높은 대안교육기관에는 정부지원을 늘려주고, 대안교육 운영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일부 대안교육기관의 편법운영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관리 감독하기로 했다.

또 위기청소년 상담과 지도활동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를 적극 지원키로 했으며, 상담전문 자격증을 가진 퇴직교원 등 전문인력을 활용한 상담지도 활동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위기청소년과 학부모에게 보호시설 관련 정보는 물론 상담과 아르바이트 알선, 법률과 의료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을 구축하고, 위기청소년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기존의 개별적인 시스템을 연계해 공유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는 기관별로 ‘소년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해 대상 청소년의 특성에 맞는 상담과 봉사활동의 내실화를 추진한다. 또한 재소자 컨설팅과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확대해 비행청소년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힘쓰기로 했다.     

정리·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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