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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WBC 한국대표팀 김인식 감독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전적은 934승42무948패. 1991년 쌍방울 감독을 시작으로 두산을 거쳐 한화에 이르기까지 15시즌 동안 쌓아올린 성과다. 그간 한국시리즈 우승도 두 차례 했지만 이긴 적보다 진 적이 많다. 큰 싸움을 이기기 위해 작은 싸움을 질 줄 아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야구계의 타짜’라고 칭송한다.

아울러 김 감독은 야구판에서 드물게 적(敵)이 없다. 매사 순리와 의리를 우선시해 어느 팀을 맡아도 노장을 보듬고 신인을 키워내며 코치진 인선에서도 자기 사람을 챙기지 않는다.

김 감독의 인생사 자체가 이 엄혹한 시대를 견디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보내는 응원가다. 그는 한화 감독 부임 직후인 2004년 말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초인적인 노력으로 일어나 2005~2007년 3년 연속 한화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또 2006년 제1회 WBC 감독으로 일본을 연파하고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을 격파, 세계 4강을 일궈냈다.     

그리고 3년 후, 한국 야구는 아픈 몸의 김 감독에게 제2회 WBC 감독을 떠맡겼다. 마치 13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처럼 김 감독은 절망적 상황을 딛고 역대 최강 멤버로 평가받는 일본 대표팀 ‘사무라이 JAPAN’을 아시아라운드 1, 2위 결정전에서 격침시켰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1회 WBC 대회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훨씬 약체로 평가받은 전력으로 도쿄에 입성했다. WBC 대표팀 출항도 순탄치 않았다. 백차승, 이승엽, 박찬호, 김동주, 김병현, 박진만 등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참했다. 유일한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소속팀 클리블랜드의 간섭 탓에 출장에 제약을 받았다. 대회 개막 때까지도 주전 라인업이 확정되지 않을 정도로 ‘적전분열’의 형편이었다.

반면 “세계를 제패하겠다”던 ‘사무라이 JAPAN’은 한국을 베기 위한 칼을 갈고 있었다. 이치로, 마쓰자카, 조지마, 이와무라, 후쿠도메 등 메이저리거를 5명이나 불러와 베이징올림픽의 설욕을 별렀다. 5만여 도쿄돔 홈팬의 응원에다 대회 스케줄까지 절대적으로 일본에 유리했다. WBC는 투구수 제한이라는 특이한 규정을 도입하고 있는데 일본은 3월 5일 약체 중국을 상대한 뒤 7일은 한국-대만전(6일) 승자, 9일은 한국-중국전(8일) 승자와 상대하는 일정이었다. 반면 한국은 6일부터 나흘 연속 경기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6일 대만을 잡고 7일 한일전에서 콜드게임 패를 당했으나 8일 중국에 콜드게임 승을 거둔 다음 9일 아시아라운드 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통쾌한 1 대 0 영봉승을 거뒀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이번 WBC의 가장 큰 변수는 ‘패자부활전’이었다. 김 감독은 일단 ‘패자부활’이란 우회루트가 아닌 정공법을 택했다. 6일 대만전, 7일 일본전을 다 이겨서 미국에서 열리는 8강 리그 티켓을 조기 확보하겠다는 ‘플랜A’를 운용했다.

실제 첫 경기인 대만전에 에이스 류현진을 투입, 9 대 0으로 낙승했다. 이어 7일엔 일본킬러 김광현을 선발 예고했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당했던 일본은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해부, 한국은 결국 2 대 14, 7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1998년 프로선수가 대표팀에 참가한 이래 사상 첫 일본전 콜드게임 패였다.

그러나 이 치욕의 순간, 김 감독은 ‘플랜B’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굳이 콜드게임 패를 피하려고 투수를 소모하지 않았다. 대신 초점을 중국에 맞춰 14 대 0, 7회 콜드게임으로 잡고 미국행 티켓을 확보했다. 전력을 비축한 한국은 기고만장한 일본과 다시 맞붙어 치열한 투수전 끝에 사무라이의 칼을 부러뜨렸다. 프로선수가 참가한 일본을 영봉시킨 것 역시 사상 처음이었다.  

불과 이틀 새 벌어진 드라마의 이면엔 두 가지 원동력이 더 숨어 있었다. 봉중근-정현욱-류현진-임창용으로 이어진 한국 투수진은 직구 위주 힘의 승부로 일본의 기술을 압도했다. 또 일본에 주눅 들지 않는 ‘베이징 키드’들은 “이치로가 별거냐”라는 여유로 기(氣)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WBC 개막 전까지는 안 좋은 뉴스가 줄을 이었다. 김병현은 여권 분실로 하와이 전지훈련에 불참했고, 추신수는 “당장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클리블랜드의 성화에 시달렸다. 누더기가 될 정도로 엔트리 변동이 극심한 와중에서도 김 감독은 ‘팀워크’를 중시해 박기혁, 이범호, 최정, 임창용, 추신수 등을 끝까지 품었다.




9일 한일전의 선발인 ‘난세 영웅’ 봉중근은 안중근 의사를 본떠 ‘봉중근 의사’라는 국민별명을 얻었다. 소속팀 LG는 ‘봉중근 의사의 이치로 히로부미(이토 히로부미를 패러디) 저격’ 티셔츠까지 제작했는데, 하루 만에 품절됐다. 일본전 승리 직후 김 감독은 눈물을 흘려 주위를 숙연케 하면서도 “감독이 우는데 코치들은 왜 안 울어?”라는 특유의 유머를 빠뜨리지 않았다. 반면 1회 WBC 때 “향후 30년 동안 일본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주겠다”고 도발했던 이치로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고 통탄, 한일 양국의 희비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글·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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