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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낡은 규제와 진입장벽에 갇힌 한국의 방송현황


지금까지 우리나라 미디어정책은 방송산업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올해 시작된 IPTV 서비스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인프라를 일찍부터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IPTV가 방송이냐, 통신이냐를 놓고 5년 동안 갑론을박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이에 유럽, 미국 등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2000년대 초에도 디지털TV로의 전환을 놓고 전송방식 표준을 미국식으로 할 것이냐, 유럽식으로 할 것이냐로 4년 동안 논란만 벌였다. 위성DMB 사업 역시 2004년 세계 최초로 상용서비스를 할 수 있었지만, 관련 제도 정비가 늦어지는 바람에 일본에 세계 최초 자리를 내줬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계 미디어산업은 융합과 글로벌화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방송관련법들의 낡은 규제조항들에 발목이 잡혀 있다. 과거의 잣대들이 미래의 방송산업을 억압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방송관계법은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에 신문사, 대기업, 외국자본의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지상파 3사 중심으로 운영되던 1990년대 초를 기준으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는 주요 미디어가 신문과 지상파뿐이어서 특정 언론사와 재벌의 여론 독과점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다매체 다채널 시대인 지금은 이러한 칸막이가 불필요하다는 게 방송학자들의 이야기다.

신문사, 대기업, 외국자본의 참여가 불가능하다 보니 다매체 다채널 시대임에도 시청자들은 질 좋은 콘텐츠를 만나기 어렵다. 지상파를 제외한 다른 방송들은 자본과 노하우가 없는 중소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육성이나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다매체 시대 발빠른 진입에 걸림돌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황근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다채널TV들이 생기면서 방송도 시장경쟁시대가 됐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여기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해 방송시장의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현 방송관계법은 지상파방송 영역에 다른 사업자가 진입하는 것은 막으면서 지상파방송이 다른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규제하지 않는다. 그 결과 지상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정윤경 교수는 “다매체 시대임에도 지상파방송 계열사가 뉴미디어 채널사업자(PP) 순이익의 7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독과점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는 뉴미디어 시장을 황폐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국내 방송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인 독과점 구조를 깨는 정책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방송관련법에서는 지상파방송의 정체성도 불명확하다. 공영도 민영도 아닌 어설픈 지상파방송의 이중적 성격 때문이다. 대표적 공영방송인 영국 BBC는 수신료 비중이 99%, 일본 NHK도 97% 수준이다. 그러나 KBS는 2007년 기준으로 광고 비중이 47.3%로 수신료(38.3%)보다도 높다. EBS는 재원(2007년 현재 1800억 원)의 75%가 광고, 학습교재·영상물 판매 수익이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MBC는 100% 가까이 광고에 의존한다. 공영이란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민영처럼 운영되고 있는 기형적 구조다.

이 문제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도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MBC 위상 정립’이란 항목에서 MBC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유 구조는 공영이나 재원은 민영적 성격이기 때문에 채널 성격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꼽았다. 

황근 교수는 “공영방송, 공공서비스 영역과 민영방송, 상업서비스 영역을 구분해 다른 규제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매체 간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새로운 다매체, 다채널 방송산업 시대에 맞는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낡은 규제의 틀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글·최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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