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프랑스의 자크 랑(70) 하원의원은 사회당 소속 6선 의원으로 미테랑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을 10년간 역임했고, 시라크 대통령 시절에는 2년간 교육부 장관을 지내는 등 총 12년간 장관직을 지낸 프랑스 정계의 거물이다.
문화부 장관 시절 그는 이제는 유럽 다른 나라들에까지 확산된 음악축제를 제안했으며 국가 예산 중 문화예산 1퍼센트를 연극 부문에 지원하는 등 문화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해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다.
랑 의원은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1999년 당시 프랑스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관련해 스크린 쿼터 축소 여부가 문제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스크린 쿼터 지지 서한을 보낸 적이 있다. 그는 줄곧 ‘문화적 예외’를 주장해왔는데 이는 문학, 영화, 음악, 회화 등 문화상품은 일반 공산품과 다르므로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도 특별히 보호돼야 하며 통상협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랑 의원은 또 언론 인터뷰 때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다. 그가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그의 건의를 받아들인 미테랑 대통령이 외규장각 도서의 한국 반환을 결정했으나 이후 프랑스의 입장 변화로 백지화됐다. 그는 이번 방한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외규장각 도서는 19세기 말 프랑스군이 불법적으로 가져간 것이므로 한국인의 역사 회복과 한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위해서도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랑 의원은 한국 방문이 처음이지만 한국의 건축가, 영화인,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으며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자유, 지성, 과학기술 발전을 추구하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이 이룬 한강의 기적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신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기적입니다. 한국인의 조직력, 공동체의식,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더 소중한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랑 의원은 한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헌법 개정을 논의하는 것은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개헌이나 제헌은 전쟁이나 혁명 등 격변을 겪고 난 후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인데,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평상시에 개헌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지난해 헌법 개정이 있었다. 랑 의원은 당시 ‘제5공화국 제도의 현대화 및 재조정에 관한 검토 및 제안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헌법 개정안 의결 때 소신에 따라 야당인 사회당 소속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져 주목을 받았다.
랑 의원은 7월 16일 국회에서 ‘글로벌시대의 역동적 변화와 새로운 헌법질서’라는 주제로 열린 제헌 61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밝혔다.
“프랑스의 개헌 과정에서도 좌파와 우파의 대립 등 토론 열기가 뜨거웠고, 저도 힘겨운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사회당에서는 유일하게 개헌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변화에 동참하고 발전을 위해 노력할 때는 언제나 ‘네’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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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정된 프랑스 헌법은 의회와 야당, 시민의 권리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명확하게 설정해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권한을 조정했으며, 공동발의 국민투표제도와 권리보호관제도를 도입해 국민의 권리보장을 강화했다.
랑 의원은 하지만 프랑스 개정 헌법이 최선의 모델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대통령과 총리로 이원화된 행정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의원이 시장이나 장관을 겸직할 수 있는 프랑스의 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면 명확하고 단순한 제도라야 한다며, 본받을 만한 나라로 의원내각제 국가로는 독일을, 대통령제 국가로는 미국을 들었다.
“의원내각제로 간다면 총리가 모든 행정을 책임지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라는 점을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또 대통령제라면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는 대신 의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정부와 의회의 균형이 이뤄집니다. 대통령 임기는 대부분의 민주국가처럼 4년이 적당하며, 국정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랑 의원은 어떤 나라든 의회와 야당, 국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방향이며, 행정부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면서도 개헌 논의는 실용적이며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인들은 많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데 익숙한 듯합니다. 이런 전통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국회와 야당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법학교수로도 재직한 법학자답게 랑 의원의 말은 간결하면서도 정확했다. 원칙과 현실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5박6일 일정으로 방한한 랑 의원은 김형오 국회의장, 한승수 국무총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도 만나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국정 현안과 문화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창덕궁, 한국민속촌 등을 방문하고 전통 공연을 관람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웠다.
글·이혜련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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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