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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입법전쟁의 서막이었다. 여야 국회의원 보좌진의 싸움은 없었다. 국회의 주역인 국회의원들이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산회를 선포했음에도 여야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나가지 않았다. 점거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사상 초유의 여야 의원 본회의장 동시점거 농성에 ‘코미디 국회’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여야는 빗발치는 비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농성 작전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회의장 ‘밤샘조’가 꾸려졌고, 여야 의원들은 날카로운 대치에 돌입했다. 대화와 타협은 온 데 간 데 없다. 불신이 만든 국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국회가 뜨겁다. 한여름 볕보다 더욱 뜨거운 기운을 내뿜고 있다. 국회의 ‘나쁜’ 열기에 국민들은 잔뜩 열을 받는다. ‘언제까지 저런 꼴을 봐야 하는지…’ 한숨을 쉬는 국민들이 많다. 국회 해산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벌어진 입법전쟁. 전기톱과 해머의 등장. 민의의 전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기’들은 해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대한민국 국회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셈이다. 올 7월, 입법전쟁이 한 번 더 벌어지면서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끝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18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여야의 드잡이가 계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그는 “정치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여야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는 분위기다. 정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야는 원래 잘 싸운다.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17대 국회에서도 격렬한 대치가 벌어졌다. 다만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야 의원들은 악수하고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18대 국회처럼 사사건건 안 된다는 분위기는 없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예전과 달리 여야 보좌진끼리도 만나지 않는다.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더욱 답답한 모습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국회 출입기자들이 포진한 ‘정론관’에도 포연이 자욱하다. 여야의 비방전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막말로 정치의 품위를 스스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살벌한’ 국회를 놓고 국회의장에게 칼을 겨누기도 한다. 특히 여당 의원들의 불만이 높다. 한 여당 의원은 “1차적으로 여야 의원들의 잘못이지만 국회의장의 책임도 크다. 국회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국회의장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은 ‘일’을 한다. 또 국회의원들이 올바르게 일을 하도록 보좌진이 뒷받침한다. 정권 실세로 통하는 영남권의 한 의원은 매일 아침 5시면 눈을 뜬다. 조간신문을 살펴보고 7시 30분쯤 국회에 출근한다. 세미나와 포럼에 참석하고, 상임위원회 활동을 준비한다. 시간이 잠시 비어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민원인들이 불시에 찾아와 하소연하기 일쑤다.
 

그는 “국회에 들고 오는 민원은 풀어주기 힘든 일이 많다. 민원인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는 것이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의원들의 역할이다”고 밝혔다.
 

의원들의 보좌진도 덩달아 바쁘다. “국회의원들이 물 위에 우아하게 떠다니는 오리라면 보좌진은 오리의 발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느냐에 따라 의원들의 품위가 결정됩니다.” 한 보좌관의 설명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국회의원 한 명당 8명(인턴 포함)의 직원을 둘 수 있다. 보좌진은 시간 싸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업무일지 수첩에 ‘분 단위’로 해야 할 일을 적어놓는 보좌관도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수시로 보고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 직원들도 파행 국회에 힘들어한다. 사무처의 한 담당관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국민들이 국회를 좋은 시각으로 안 보고 있다. 난장판 국회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무처 직원들은 1천7백명이 넘는다. 국회 자체 방송국도 보유하고 있다. 모두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형성된 인력과 조직이다.
 

“영화로 비유하면 국회의원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 배우이고, 사무처 직원들은 스태프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회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저희들의 업무입니다.”

사무처 한 고위간부의 설명이다.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으로 날마다 신경전이 벌어지는 요즘 가장 바쁜 부서는 의회경호과와 미디어담당실이다. 최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로텐더홀 농성 때 의회경호과 직원들은 3교대로 밤을 새우면서 대기했다. 본회의장 여야 동시점거 농성도 의회경호과 직원들을 바짝 긴장케 한다.
 

미디어담당실은 최근 들어 기자들의 방문이 부쩍 잦아지면서 쉴 틈이 없다. 미디어담당실의 한 직원은 “국회가 워낙 시끄럽다 보니 일시 취재를 신청하는 기자들이 많아졌다. 하루 평균 70∼80명의 기자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국회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삭막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드넓은 잔디밭을 보유해 싱그러움을 전해준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도 없다. 국회 방문객들은 방문증만 받으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관광객들도 많다.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폼을 잡고 활짝 웃는다. 아름다운 풍경에다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국회의사당이 지금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국회를 ‘평화의 땅’으로 만드는 묘책은 없는 것인가.
 

글·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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