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제헌절을 하루 앞둔 7월 16일, 며칠 동안 퍼붓던 장대비가 그치고 모처럼 밝은 여름 햇살이 국회의사당을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 기상도(氣象圖)는 여전히 폭풍전야다. 여야가 동시에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과 국민에 대한 죄스러움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토로엔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짙은 고뇌가 느껴졌다.
국민들이 국회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한두 개 법안 때문에 국회 자체가 공전하는 폐습이 반복되고 있어 국회의장으로서 안타까움이 클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국회는 한두 개의 쟁점법안 때문에 장기간 국회가 공전하는 아주 안 좋은 폐습이 생겼습니다. 지금 국회에는 3천5백 건 이상의 안건이 상임위원회 심사와 처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금융지주회사법안, 공무원연금법안 등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민생법안과 경제법안들이 많이 있어요. 이 법안들의 심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해결방법이 없을까요.
쟁점법안과 비쟁점법안을 분리 처리하는 운영방식의 도입을 고려해볼 만합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여당은 소수의견에 귀 기울여주는 포용의 리더십을, 야당은 다수 의견에 승복하는 열린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강경파가 여야를 주도하면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정신은 사라질 것입니다. 여야는 투쟁적 적대관계가 아니라 정책대결을 통해 국민의 뜻을 이어나가는 선의의 경쟁관계라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현 18대 국회가 특히 문제가 많은 건가요.
사실 18대 국회가 생각만큼 실적이 저조한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같은 기간의 17대 국회보다 훨씬 많은 6백56건의 법률안을 처리했고 2009년도 예산안도 해를 넘기지 않고 처리했습니다. 추경 또한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처리를 이끌어냈습니다. 몇몇 안건의 대립 때문에 18대 국회 전체가 저평가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여야 대치 국면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농성을 풀고 등원한 것은 다행이지만 쟁점법안에 관한 여야 협상이 그리 쉽게 타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야는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촌음을 아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합니다. 또다시 국민들께 실망을 안겨드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여당은 대화보다 ‘수(數)의 힘’으로 다수당의 위력을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야당 또한 수의 열세를 ‘강경투쟁’으로 만회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여야 모두 자기주장을 1백 퍼센트 그대로 관철시키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더 이상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가 좌지우지되고 표류하는 상황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협상을 하기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더 이상 상임위에서의 논의를 기피하거나 시간 끌기식으로 회의가 진행되면 안 됩니다.

여권에선 줄곧 핵심법안에 대해 직권상정 요구를 하고 있는 반면, 의장께서는 그동안 최대한 직권상정을 절제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유부단하다, 좌고우면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회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정책을 마련하는 곳입니다. 어느 당적도 갖고 있지 않은 국회의장은 불편부당하게 여야를 조율하고 원만하게 타협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기본 책무입니다. 그게 답답하고 우유부단해 보일지라도 국회 수장으로서 최악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직권상정은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직권상정은 분명 국회의장의 고유 권한이지만 가장 피하고 싶은 권한이기도 합니다. 함부로 행사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직권상정은 정당성을 갖춘 법안이 여야 간에 타협이 도저히 되지 않을 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다수결 원리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 직권상정을 하기도 했는데, 그 어떤 경우도 물리적 충돌이나 일방 강행처리 없이 여야 합의를 유도했습니다.
의장께서는 임기 후반 주요 과제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헌법은 국가 최고 규범입니다.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지요.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너무나 빠르게 사회가 변화했습니다. 헌법과 헌법환경 간의 괴리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대담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헌법은 그 운용의 묘와 상관없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성공한 국가, 위대한 지도자라면 결코 미래 투자에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헌과 관련해 그동안의 준비 과정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지난해 9월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헌법개정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각 정당에서 위원을 추천받았습니다. 김종인 전 의원께서 위원장을 맡아 주셨고, 이홍구 전 총리도 고문으로 참여하셨습니다. 헌법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지니신 여러 교수님들이 참여하셨고 언론계, 법조계에서도 참여하셨습니다. 이번 임시국회가 마무리되는 대로 적당한 날을 잡아 ‘자문위원회 안’이 공식 발표될 겁니다.
이와 별도로 1백86인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계신 국회의원이 1백86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개헌안 발의 정족수인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를 넘는 것은 물론 3분의 2 개헌선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저는 제헌절을 맞아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과 모든 국민들께 헌법 개정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2009년 정기국회에서 국회 내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개헌이 마무리되길 기대합니다.
글·최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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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