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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13호

“제한속도 왜 지키냐고? 그게 법이니까”


우리 사회는 올해로 민주화 22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이미 성년이 된 나이다. 민주가 무엇인지, 법치가 무엇인지, 자유와 책임이 무엇인지, 민주 시민의 행동 양식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은 사회적, 정치적 논란의 대상에서 이미 벗어나 있어야 할 때다. 그런 문제는 초등학교와 중고교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어야 할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선진국보다도 높은 80퍼센트 이상의 대학 입학률을 자랑한다. 이런 마당에 어른들이 민주 시민의 기본 소양에 관해 논란을 벌인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지난해 태국 왕실이 한국의 법질서를 비웃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태국은 당시 비상사태 선포에도 불구하고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었다. 그런 나라 왕실이 우리나라의 ‘태국여행 자제’ 권고에 대해 촛불시위를 걸어 “데모를 해도 한국이 훨씬 크고 폭력적이지 않으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나 세종로 사거리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지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카메라 셔터도 열심히 눌러댄다. 이러다 촛불시위가 한국의 관광상품으로 등장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지난해와 올해 촛불시위는 법의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제기한 사건이다. 야간 정치집회, 도로 점거, 폭력 행사, 공공기물 파손 등이 분명한 위법인 데도 시위대는 국민 건강권을 내세워 정당행위라고 주장했다. 폭력시위를 1987년 6월항쟁과 동렬(同列)에 놓고 국민의 저항권 논리를 동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진압경찰에 대한 온갖 린치는 폭동 수준이었다. 시위대의 불법적 폭력과 경찰의 합법적 물리력 행사를 같은 ‘폭력’으로 혼동하는 것이 일부 세력의 법의식 수준이다.
 

동서고금의 어느 사회나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범죄를 처벌하는 규율이 존재했다. 4천3백여 년 전 고조선 대의 8조 금법(禁法), 3천7백여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도 그런 것이었다. 우리 헌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반부는 국민의 기본권, 후반부는 권력구조에 관한 조항들로 이뤄져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입법, 행정, 사법권이 존재한다는 논리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자유와 권리는 항상 남의 그것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법에 의한 일정한 제한은 불가피하다. 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근거 조항이다. 집회 시위의 자유도 남의 도로교통권, 영업권, 생활권을 방해하지 않고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돼야 할 것이다.

 


 

법질서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세 가지의 조건이 부합돼야 한다고 본다. 첫째, 법의 수준이 그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 및 의식수준에 맞아야 한다. 일반 국민이 보통의 주의만 기울이면 지킬 수 있는 정도가 적절한 수준이다.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도 지키기 어려운 법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경우엔 불법과 전과자를 양산할 뿐 실효성이 없다. 둘째, 국민은 법에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무조건 지키는 준법정신을 가져야 한다. 셋째, 불법에 대해서는 꾸준한 단속과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 가지 중에서 특히 둘째와 셋째에서 문제가 많다.
 

미국의 운전면허시험에 ‘제한속도를 왜 지켜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과속은 교통사고 위험이 높으니까’가 정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것이 법이니까’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이유를 따지기 이전에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법의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집행과 관련해 우리 경찰은 단속하겠다는 엄포만 놓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법 폭력시위는 말할 것도 없고,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단속하겠다고 해놓고는 거의 단속을 벌이지 않았다. 최근 심야학원과 잔반 재사용 식당에 대해 단속하겠다고 나섰지만 과연 지속적으로 단속을 벌여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단속이 흐지부지되면 법과 공권력의 권위만 떨어진다. 적지 않은 선량한 시민들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지키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죄의식을 갖게 만드는 부작용도 빚는다.
 

준법과 자유, 민주와 법치, 법치와 인권은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보완 또는 협조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인간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1백퍼센트 향유하기는 불가능하다. 너와 나의 자유와 권리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행사할 수 있도록 조정과 조화의 지혜를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기초를 마련해주는 것이 바로 법이다. 따라서 법을 잘 지키는 것만이 자유와 권리, 민주와 인권을 최대한 향유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글·육정수(동아일보 논설위원)/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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