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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815호

정치의 관점에서 본 중도실용



이명박 대통령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는 ‘중도강화론’을 제시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내걸었던 ‘중도실용’의 화두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은 무슨 거창한 이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갈등하며 분열하지 말고 국가에 도움이 되고 특히 서민과 중산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으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도강화론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등장한 것 같다.
 

첫째, 이념이 매개된 정치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국민의 이념 지형은 중도가 강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이념 갈등이 증폭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KBS와 동서리서치가 지난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의견이 84.7퍼센트로 높게 나왔다. 특히 ‘진보 보수 간의 이념적 갈등’(78.1점)을 지적했다.
 

과거에는 진보(40퍼센트)와 보수(40퍼센트)가 균등하게 대세를 이루고 중도(20퍼센트)는 약한 이른바 ‘쌍봉형의 이념 지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진보 30퍼센트, 중도 40퍼센트, 보수 30퍼센트로 중도층이 두터워지는 이른바 ‘단봉형 이념 지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중도층이 강화되고 있는데 대통령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보수 편향으로 인식되어 국민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념 성향에 대한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대선 당시(2007년 11월) 이명박 후보는 국민 전체 평균(5.2점)과 가장 근접한 5.4점으로 중도적인 후보로 인식됐다. 하지만 2008년 11월에는 6.4점, 2009년 6월에는 7.0점으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됐다.

 


 

결과적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층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지난해 10월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지만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한 중도층 비율이 26.7퍼센트로 나타났다. 이런 맥락에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정책을 추구하려는 중도노선은 이탈한 지지 기반 복원을 위한 매우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둘째,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 핵심에 ‘친서민적 행보’가 자리 잡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주된 이유로 현 정부가 “서민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유층 등 가진 자 위주의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상징되는 초기 개각 실패로 이 대통령은 부자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도강화론은 바로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셋째, 국민통합의 길을 열어가기 위한 고육책이다.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특정 이슈와 정책에 대해 대안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조건 배격하고 혐오하는 ‘배타적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사항은 중도층에서 진보에 대해 ‘좋다’는 비율이 28.5퍼센트인 반면, 보수가 좋다는 비율은 19.3퍼센트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러한 보수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보수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좌파 정책이라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게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서민을 배려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서민을 대변하고 보수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다시 말해 서민은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이런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 보수도 서민을 위할 수 있다는 ‘서민적 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중도강화론의 핵심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우며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주도해왔던 교육과 빈곤, 보건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 여당이 중도강화 정책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허한 상징적 이미지가 아니라 서민들이 깊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과 연결돼야 한다. 또한 인사에서도 지역, 이념과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통합을 위한 적임자라면 대담하게 등용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대 세력을 대담하게 껴안을 수 있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큰 틀에서 보면 역사는 항상 발전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진보정권 10년 동안 잘한 점도 있고 못한 점도 있게 마련이다. 진보정권 10년을 전면 부정하면서 중도강화론이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따라서 지난 정부가 잘한 것이 있으면 현 정부가 인정하고 수용하는 포용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KSDC·동아일보 조사에서 이념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에 대한 복수응답 결과 ‘상대편 가치 지향에 대한 존중’이 52.3퍼센트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제 국정운영 기조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우리 사회는 너무 다름만 이야기하고 같음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젠 진보와 보수 간에 다름보다는 같음을 더 많이 얘기하는 대담한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물론 극단적인 좌우 이념대립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 속에서 이러한 변화는 말만큼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념갈등의 극복과 국민 대통합은 이제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도강화론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변화와 통합을 위한 토대가 돼야 할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고 있다.
 

글·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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