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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25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삼산분교를 가다



전교생 29명. 대부분의 가정이 고기 잡고, 벼농사 짓고, 공사판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가계당 연 수입은 1천5백만원도 되지 않는다. 열 중 일곱은 부모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다. 경남 고성군 삼산면 미룡리 산골 학교인 고성중학교 삼산분교 이야기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 2007년 전국 청소년 글짓기대회(국민연금관리공단 주최) 대상 수상자가 나왔고, 최근 2년 연속 도내 로봇경진대회 입상자가 쏟아졌다면 입이 떡 벌어진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해엔 고성군의 고교 수석 입학생도 배출했다.
 

삼산분교의 기적을 만든 힘은 무엇일까. 대단하지 않았다. 학교를 바꿔보려는 교사와 주민, 독지가 등 평범한 이웃들의 간절함이 그 원동력이었다.
 

공부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들을 위해 이 학교 교사들은 손수 저녁밥을 해 먹이고 야간 공부방을 만들어 자신들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줬다. 박봉을 쪼개 ‘교사 장학금’도 만들었다. 학생들 저녁밥 비용을 대주겠다며 가장 먼저 50만원을 보낸 이는 서울 사는 장애아 어머니와 캐나다에 산다는 동포였다.
 

후원자들은 하나같이 교사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본 뒤 익명(匿名)을 조건으로 송금했다.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야간 공부방 바닥공사를 해준 현장 건설업자는 10만원의 장학금과 라면 5박스를 두고 갔다. 여기에 스스로 공부하며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학생들이 있었다.
 

2006년 4월 초 새로 부임한 이병우(51) 분교장과 김계현(54) 교사는 방과 후에 학교 앞 농협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집에 간 줄 알았던 학생들이 삼삼오오 농협 무실에 모여 있었다. 집에 돌아갈 버스가 오후 6시 30분이 돼야 오기 때문이다. 당시엔 오후 3시 20분 수업이 끝나면 1시간 동안 교육방송을 틀어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이 분교장과 김 교사는 “이래선 안 되겠다. 적어도 버스 올 시간까지는 방과후 교육활동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동료교사들의 동의를 받아 방과 후 3시간 추가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귀가 후였다. 대부분 결손가정이거나 부모가 있어도 밤에 고기잡이를 나가 아이들은 공부는커녕 저녁밥도 못 챙겨먹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야간 공부방. 담당 교사는 때마침 전근 온 수학과 김정기(51) 교사와 김계현 교사가 자원했다. 문제는 저녁식사 비용이었다. 점심과 달리 저녁은 정부 지원이 안 된다. 김계현 교사가 개인 블로그를 통해 후원자를 수소문했다.
 
 

서울 사는 ‘수퍼맘’이라는 분이 50만원을 보내왔다. 장애아를 키운다는 그는 “난 사교육비 안 들어가니 그 돈 보낸다”고 했다. 이 돈이면 30명이 한 달은 먹겠다 싶었다. 지난해 4월 16일, 그렇게 삼산분교의 야간 공부방은 시작됐다. 텃밭을 일궈 배추를 심고 채소를 길러 부식비를 아꼈다. 국이나 카레에 밥 한 그릇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꿀맛이었다. 얼마 후 캐나다 동포 헬렌이 20만원을 보내줬다. 어려운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꿈이 되어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밥 짓는 데 서투른 남자 교사들이 밥을 지으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번엔 학교 앞 교회의 부목사 부인이 나섰다. 1년간 묵묵히 밥을 지어줬다. 요즘은 학부모들이 조를 짜 1주일에 세 번은 밥을 지어주지만 당시는 그렇게 1년을 버텼다. 후원금이 부족하면 교사들의 방과 후 수업 비용이 야간 공부방 운영비가 됐다.
 

소문이 나자 고성교육청에서 5백만원을 지원금으로 보내왔다. 이 돈으로 야간 공부방의 바닥공사를 하기로 했다. 인근에서 공사하러 온 현장 건설업자에게 싼 값에 해달라고 매달렸다. 공사가 끝나던 날 “남는 게 없다”며 투덜대던 그는 굳이 1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고 떠났다.







 

2006년 3월 말, 삼산분교 교사 9명이 회의를 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동기부여를 할 방법이 없을까. 한 교사가 제의했다. “한 달에 1만원씩 내서 장학금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모두 동의했다. 전근 간 전임 교장은 지금도 1년에 50만원을 보내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1년에 네 번,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3명씩 뽑아 5만~10만원씩 장학금을 준다. 첫 시험만 성적순으로 장학금을 주고, 나머지 세 번은 가장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게 준다. 이병우 분교장은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선생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이 산골 학교에서 최근 2년간 경남도와 전국 단위 로봇대회에서 4개의 상을 휩쓸었다. 학생들이 직접 로봇을 조립하고, 명령어 등을 집어넣어 제한된 시간에 가장 빠르게 장애물 등을 통과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대회다. 올해 초 졸업한 김종훈(16) 학생과 3학년 김수한(15)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대도시에서처럼 과학교사가 스파르타식로 가르치기는커녕 담당 교사 없이 이뤄낸 성과다. 학교의 지원은 16만원짜리 로봇을 사준 것이 전부. 학생들은 어머니가 과학교사였던 종훈이가 로봇 공부를 시작한 뒤 후배들을 가르쳤다. 종훈이가 졸업하고 이젠 수한이가 2학년 태현(14)이, 1학년 강건(13)이를 가르친다. 이렇게 공부해도 입상이 가능할까. 김계현 교사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아이들의 잠재력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올 들어 고성군 3개 중학교의 꼴찌들이 모두 찾아왔다. 부진아도 가족처럼 제대로 길러낸다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수학과 김정기 교사가 매주 금요일 오전 8시부터 이들과 구구단을 외우며 씨름한다. 덕분에 6월 말 두 명이 기초학력평가 미달에서 탈출했다. 3학년 강권우 학생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학교”라고 말했다.
 

글·이인열(조선일보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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