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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704호

공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산다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목소리다. 가정형편에 따라 사교육비 규모는 다르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대부분 가정에서 사교육비는 커다란 부담이다. 더욱이 최근 경기침체로 가계소득은 줄었지만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고 있어 가정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과 통계청이 조사한 우리나라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지난해 사교육비는 20조9천95억원으로 2007년의 20조4백억원보다 8천6백95억원(4.3퍼센트) 늘었다.


지난해 사교육비 증가율은 2007년 이전의 사교육비 증가율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2001년 10조6천6백34억원이던 사교육비는 2003년 13조6천4백85억원, 2005년 17조6천7백74억원으로 늘어나 2001~2006년 사이 연평균 12.1퍼센트씩 증가했다.


소득과 비교해보면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정의 부담이 더 크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발행한 <비즈니스 인사이드>에 실린 ‘경기하강에 취약한 우리의 소비 구조’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율은 고소득층(소득수준 상위 20퍼센트)이 4.3퍼센트로 가장 낮았고 다음이 저소득층(소득수준 하위 20퍼센트) 4.6퍼센트, 중산층(소득수준 40~60퍼센트) 5.6퍼센트였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는 ‘통계 수치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경기 과천시 중앙동 전은주(37) 씨 가정은 아들(4)의 어린이집 비용으로 42만원,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영어, 수영, 생태교실 수업료 등으로 매달 66만원의 사교육비를 쓴다.


“두 아이 사교육비를 합하면 1백만원이 넘어요. 우리 가정 수입의 4분의 1가량이죠. 요즘은 우리 어릴 때처럼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노는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에요.”


투자 대비 효과가 정비례하다면 사교육도 해볼 만하다. 문제는 상당수 사교육이 문제풀이식, 주입식 위주 교육으로 진행돼 아이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약화하고 정형화해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서울대가 발표한 2007년 정시모집 합격자 논술점수 분석 결과 사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군(郡) 출신 합격자의 평균 점수가 23.58점(25점 만점)으로 서울(23.42점)과 광역시(23.41점) 출신보다 높았다. 서울대가 합격자 논술 점수를 처음 발표한 2006년에도 군 출신 평균 점수(23.52점)가 서울(23.49점)보다 높아 ‘강남식 사교육’이 독서와 토론을 통한 사고력 기르기에 밀린다는 것을 보여줬다.


학업성취도에서도 대도시 출신보다 ‘시골에서 올라온’ 지역균형 선발 학생들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2월 서울대를 졸업한 2천9백6명(지역균형 84명 포함)을 대상으로 한 입학 전형별 평균학점 분석 결과에서도 지역균형 선발 학생들의 평균학점이 3.55점으로 졸업생 전체 평균 3.34점보다 높았다.


더 큰 문제는 소득계층 간 사교육비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9월 공개된 통계청의 ‘2003~2008년도 상반기 소득별 가구소비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소득수준 상위 10퍼센트의 교육비 지출액은 월평균 58만1백92원으로 하위 10퍼센트 계층의 월평균 지출액 7만4천1백93원보다 무려 7.8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최근 5년간 상위 10퍼센트 계층의 교육비 증가율은 46.3퍼센트에 달한 반면 하위 10퍼센트의 교육비 증가율은 16.9퍼센트에 그쳤다. 이 밖에도 대졸 가구주의 근로소득은 고졸의 1.56배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통계는 소득계층 간 사교육비 지출의 양극화가 가중된다는 사실과 학력별 소득격차가 심화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당시 통계청 자료를 공개한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은 “저소득층은 의료비, 난방비, 상수도비 등 생활비 지출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점차 줄고 있다”며 “저소득층의 교육 투자비가 줄어들면 결국 학력의 세습에 따라 고소득자와의 소득 편차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들의 교육수준, 나아가 미래의 소득수준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사교육비는 ‘가난의 대물림’을 고착화해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축인 중산층의 사교육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은 이유도 바로 ‘대물림’ 때문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권수현(46) 씨.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중학교 3학년인 아들 남매를 키우는 그는 2년 전 분당으로 이사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두 아이의 한 달 사교육비가 1백50만원이 넘어요. 우리 집 생활비의 3분의 2를 차지하죠. 말 그대로 허리가 휘어요.”


그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사교육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있는 부자도 아니고, 자녀가 중산층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부모도 아이도 교육에 ‘올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 상대적으로 부유층이 많던 서울 도곡동에 살 때보다 중산층 주거지인 분당에 사는 지금이 사교육비가 더 많이 든다”는 권 씨는 중산층 밀집지역일수록 내신 경쟁이 심하고 사교육 열풍이 드세다고 전했다.


“분당에서도 내신 경쟁이 가장 치열한 내정중학교나 수내중학교에서는 지난해 12월 실시된 전국연합학업성취도평가에서 과목별로 ‘두세 문제만 틀려도 전교 꼴찌’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만큼 공교육은 수준이 낮고 아이들 간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죠.”





공교육의 경쟁력 약화는 많은 전문가들에게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학교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가운데 학교 시험은 변별력을 갖기 위해 어렵게 치르다 보니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선 내신 대비 학원에 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특목고와 대학의 입학전형도 다양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을 뽑겠다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최상위 학생만을 뽑기 위한 전형으로 변질되면서 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을 부추긴다. 특히 내신, 수능, 면접, 논술 등 복잡한 대학 입학전형은 과거 학교에서 해주던 입시상담까지 사교육과 사설 상담실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내신은 내신대로, 수능은 수능대로 대비해야 하는 이원화된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사교육비도 더 크게 부풀린다.


입시전형과 사교육의 상관관계를 보자. 특목고의 일반전형 확대로 내신에서 영어와 수학이 중요해진 지난해 영어 사교육비는 매월 7만6천원(11.8퍼센트), 수학은 매월 6만2천원(8.8퍼센트) 증가했다. 특목고와 대학 입학전형에서 반영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토익, 토플, 텝스 등의 초중고생 응시자 수는 2007년 한 해에만 58.5퍼센트 급증하기도 했다.


사교육 문제는 하루 이틀 된 사안은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그간 가장 극적인 사교육 대책이 1980년 발표된 과외 전면 금지였다. 하지만 일부 상류층의 고액과외만 부추기며 사실상 실패했다. 그때 생긴 용어가 ‘몰래바이트’다.




김영삼 정부는 1997년 교육방송(EBS)의 위성방송 강의로 과외 수요를 충족시키려 했으나 한쪽에선 수천만원대 고액과외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실시된 평준화 정책은 오히려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교육 영역만 키우는 부작용을 불렀다.


사교육 시달림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기러기 아빠’가 일반화됐다. 허리 졸라매고 사교육비를 부담하며 아이를 입시경쟁에 시달리게 할 바에야 ‘더 나은 교육환경’이 있는 외국으로 아내와 함께 아이를 유학 보내는 가장이 늘었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들 가운데에는 자녀가 학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가족이 재회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홀로 지내다 돌연사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 간에 생긴 간극을 뛰어넘지 못해 비극적인 가족해체의 길을 걷기도 한다.


사교육비는 출산율 저하의 주범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높은 사교육비 등 아이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젊은 부부들이 아이 낳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이인규 대표는 “그동안 학원, 교원단체, 대학 등 교육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가 맞물리며 모두의 이해를 충족하려다 보니 내신 강화 주장에 내신 관련 학원이 늘고, 수능 강화 논리에 수능 관련 학원이 증가하는 등 사교육 팽창만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선 학생과 학부모를 중심으로 이들이 원하는 교육목표 실현을 위한 공교육 중심의 ‘교육혁명’이 이뤄지고 ‘가짜 교육’은 정리돼야 한다”며 “정권을 넘어설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의 교육정책을 세우고 이를 맡아 운영할 책임 있는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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