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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아침마다 ‘이별’하는 직장인엄마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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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 뜨는 게 두려워요.”

20개월 된 딸 희영이를 키우는 직장인엄마 오수진(가명·31) 씨는 아침마다 ‘눈물전쟁’을 치른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남편을 위해 아침상을 차리는 그에게 어느새 희영이가 다가와선 조그마한 입술을 달싹이며 ‘곰 세 마리’를 부른다. 출근 준비로 바쁜 오 씨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희영이는 그의 곁을 맴돌며 칭얼댔다. 이럴 때면 말도 제대로 못하는 희영이가 왠지 ‘딱 한 번만 놀아주면 안 돼요?’하며 애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오 씨가 출근 준비를 마친 오전 8시. 초인종이 울리며 아이 돌보는 할머니가 도착했다. 아이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울어대기 시작했다. 집을 나서려는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눈물, 콧물을 있는 대로 다 쏟아냈다. 오 씨는 3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친 첫 출근날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그래도 현관문 뒤로 딸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맺힌다.

눈물로 시작된 직장인엄마 오 씨의 하루는 길고 길다. 아침부터 몸은 녹초가 됐지만 회사에 오면 다른 직원과 비교되는 게 싫어 기를 쓰고 일한다. 똑같이 회식에 참석하고 야근도 군말 없이 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오 씨는 바로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하루 종일 그를 기다린 희영이가 놀아달라고 보채기 때문. 결국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죄책감이 밀려왔고, 일과 양육 문제로 고통 받던 그는 마침내 정신과 상담을 고민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해졌다. 오 씨는 “아이에게 ‘빵점짜리 엄마’란 생각이 들어 한없이 우울해진다”며 “그렇다고 ‘일하는 엄마’를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2000년대 들어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50퍼센트를 넘으면서 우리나라도 본격 직장인엄마 시대를 맞이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일하는 여성 배우자, 즉 직장인엄마의 가구소득 기여도는 1982년 3.4퍼센트에서 2008년 12.7퍼센트로 약 30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었다. 이렇듯 직장인엄마는 사회와 가정을 오가며 두 가지 몫을 톡톡히 해내는 ‘슈퍼우먼’이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사회의 시선에 답답하다 못해 울분이 터질 때가 많다.

직장인엄마를 괴롭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다. 특히 아이 양육에 비친화적인 기업문화가 엄존해 직장인엄마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아이가 아파 쉬려고 해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육아휴가는커녕 출산휴가를 쓰려고 해도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회사가 부지기수다.

오수진 씨는 “며칠씩 ‘나인 투 파이브’를 꼬박 넘기며 일하는 나를 보고 ‘그렇게 죽도록 일만 하면 애한테 미안하지 않냐’며 비난하는 상사도 있었다”며 “일하고 있을 때는 엄마 노릇을 강조하면서 막상 어쩌다 아이가 아파 일찍 퇴근하려 하면 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인 홍영지(38) 씨는 육아와 회사생활을 병행할 수 없는 걸 깨닫고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둔 케이스. 그는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일은 계속하고 싶었지만 돌봐줄 사람도 없고 불규칙적인 회사생활을 해낼 자신이 없어 사표를 썼다”고 말했다.

세 살과 초등학교 2학년인 두 아이를 키우는 11년차 회사원 김민경(36·왼쪽 사진) 씨는 한 번도 육아휴직을 써본 적이 없다. 쓰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출산휴가로 3개월이나 푹 쉬었으면 됐지…’라고 애써 자위한다. 그는 “최근 직장 동료 한 명이 큰맘 먹고 육아휴직을 했지만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 싶어 나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고 맡아줄 사람이 없는 등의 열악한 보육 여건도 직장인엄마들 앞에 놓인 걸림돌이다. 프랑스, 스웨덴 등 선진국에선 직장인엄마가 늘면 그만큼 출산율도 늘어나는 추세. 그런데 지난해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전 세계 평균 2.5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2명에 그쳤다. 이는 직장인엄마가 아이를 낳아도 한 명 이상 낳지 않거나 아예 낳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오수진 씨를 예로 들면 그는 한 달 봉급을 거의 고스란히 양육비로 쏟아붓는다. 아이 돌보는 할머니 월급 1백40만원, 기저귀 등 아이 생필품과 식비 20만원, 예방접종비 15만원, 놀이방 30만원 등 2백만원 선을 웃돈다. 오 씨는 자신의 상황이 모든 직장인엄마의 현실은 아닐지라도 “맞벌이 부부 수입의 많은 부분이 아이 양육비로 쓰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만 여기는 분위기도 직장인엄마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젊은 남편들 사이에서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긴 해도 ‘일과 육아는 엄마 책임’이란 해묵은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언어치료사로 일하며 중학생 남매를 키우는 최진희(42) 씨는 “애초에 남편의 가사 분배 역할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에게 아이들 돌보기나 설거지를 부탁했지만, ‘한 번만’ 해줘도 집안일을 다 하는 것처럼 생색내는 남편의 태도에 기가 찼다. 최 씨는 “사회 전반에 걸친 가부장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대다수 직장인엄마들은 남편 도움 없이 외롭게 버텨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국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32)은 이런 여건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안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라”고 충고한다. ‘직장인엄마는 희생의 상징, 괴로운 사람’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아이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하는 행복한 엄마’라는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

최근 직장 내 유치원이 생겨 육아 부담을 한결 덜었다는 김민경 씨는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며 “일이나 육아에서 ‘최고’를 추구하기보다는 ‘최선’을 추구하는 현명한 직장인엄마가 되고 싶다. 이런 보육시설이 많이 생겨 직장인엄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최진희 씨는 “요즘 부쩍 자란 아이들이 ‘엄마처럼 일도 열심히 하고 집안 살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조금만 더 직장인엄마에 관심을 가져주고 직장인엄마 자녀를 위한 여러 교육 프로그램들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글·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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