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해 2월 ‘수학·과학 중점형 교과교실제 운영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새롭게 개교하는 신도림고의 첫 회 입학생 2백50명이 학교를 찾았다. 배정통지서 내용에 따라 신입생으로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학교는 입학 안내서와 유인물 등을 나눠주고 간단한 훈시를 한 뒤 학생을 귀가시킨다. 그러나 오세창(60) 교장과 19명의 교사들은 신입생들에게 뭔가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고 싶었다. 궁리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스펜서 존슨의 에세이 <선물>을 선물하는 것. 선생님들은 편지봉투 모양의 스티커에 일일이 편지를 써서 책 안쪽의 속지에 붙였다.
‘축 제1회 입학-꿈을 꾸는 시간은 행복입니다. 꿈을 이룬 시간은 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 행복과 축복이 가득한 신도림고교 3년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2009년 3월 신도림고등학교 교직원 일동.’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녀에게서 뜻밖의 ‘선물’ 얘기를 전해들은 학부모들의 전화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대부분이 “학교의 정성에 감동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첫 회 신입생을 받기도 전에 이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를 ‘열혈 팬’으로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오 교장과 교사들이 신도림고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해 1월. 첫 출근 날, 개교를 두 달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던 건물엔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었다. 번듯한 교무실도 없어 임시로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까지 동원됐다.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 없는 공간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가뜩이나 짧은 겨울 해는 금세 자취를 감췄다. 그러니 퇴근시간은 늘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학교 꼴을 갖추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는 신입생 이탈 조짐을 막는 일이었다. 신도림고는 행정구역상 구로구와 양천구의 경계에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Y고, S고 등 ‘교육특구’ 목동에 위치한 명문고가 즐비하다. 실제로 일부 학부모는 자녀가 ‘듣도 보도 못한’ 이 신생 고교에 배정되자 조심스레 목동 쪽 고교로의 위장전입을 준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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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고가 위치한 구로구, 그중에서도 신도림동은 교육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허허벌판으로 방치됐던 데다 대표적 공장지대였던 탓에 교육환경이 좋을 리 만무했다. 단적인 예로 신도림고와 지척에 있는 신도림중은 남부교육청 관내에서 유일하게 교사의 평균 근무연수가 3년밖에 안 된다(대부분의 공립학교 교사는 한 학교에서 평균 4년을 근무한다). 임기를 채우기 전에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전근을 요올해 신도림고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2월 24일 학교를 찾아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 신도림고 선생님들이 교수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오른쪽은 신도림고가 자랑하는 서울 시내 최고 수준의 개방형 도서관. 청하는 교사가 많기 때문이다.
학교를 정착시키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은 개교 후에도 이어졌다. 오 교장은 교내 모든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처리했다. 교복 디자인을 정할 때도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두루 경청해 다수의 선택을 따랐다. 학생들에겐 ‘신도림고 출신’이란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오 교장은 1회 신입생 입학식에서 “최고의 시설에서 공부하게 해줄 테니 학교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달라”고 호소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지로 유명해진 경기 가평의 한 휴양시설에서 열린 학생간부 수련회 때는 “신도림고 간부학생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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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과 기념품 만드는 데 쓰이던 돈을 줄여 자율학습실에 안락한 기능성 의자를 들여놓고 서울시내 고교 중 최고 수준의 개방형 도서관을 세웠다.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하고 석면 소재를 쓰지 않는 등 학교 건물 전체를 친환경 소재로 시공해 국내 최초의 ‘친환경 인증제 실시 학교’로 만들었다.
지난해 9월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수학·과학 중점형 교과교실제 운영학교’로 선정됐다. 신도림고는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생활지도 우수학교,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우수학교, 자율장학 우수학교로 선정돼 서울시교육감 표창을 받는 등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1년에 불과한 준비기간으로 고교선택제에 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인근 지역에만 줄잡아 10개나 되는 고교가 있었다. 그중 일부는 명문대 진학 실적을 검증 받은 곳들. 그러나 기우였다. 지난해 고교선택제 원서 접수를 앞두고 여의도중에서 열린 구로구 일반계 고교 합동 진학설명회에서 신도림고 부스는 늘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설명회가 끝난 뒤 개별적으로 연락하고 학교를 찾아오는 중3 학생도 급증했다. 그 결과는 수개월 후 ‘고교선택제 1위’로 나타났다.
글·최혜원(주간조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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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