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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日 안전불감증·뒷북 대응에 공포 도미노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량이 시간당 5백밀리시버트(mSv)로 원전 폭발 이후 최고치에 이르렀다.”

지난 3월 23일 도쿄전력은 긴급 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원전사태 초기인 3월 15일에 측정된 것이었다.

다음 날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NISA)은 원전이 정상 가동될 때보다 1만 배 많은 방사선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일본 국민은 늦장 발표에 화낼 겨를도 없이 방사선 공포에 휩싸였다. 실제 일본 정부는 원자로에서 노심용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줄곧 이야기 하다가 3월 28일에서야 원전 1호기에서 노심용해가 일어났음을 인정했다. 노심용해는 원전에 있는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아 안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현상이다.

노심용융물이 원자로를 녹이고 격납용기 바닥으로 흘러나온다면 최악의 경우 증기폭발과 함께 대규모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제무성 교수는 “증기폭발이 일어나면 방사성 물질이 태평양 너머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다”며 “원전사태 초기부터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3월 11일 원자력안전보안원은 대지진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여겨 응급조치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조치는 당초 보고한 시각보다 5시간여 늦게 이뤄졌다.

일본 정부는 3월 11일 이후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핵분열할 때 나오는 중성자가 2차례 검출됐다고 했다가 13차례로 말을 바꿨다.

정부는 관측 장비를 잘못 읽어 벌어진 실수라고 해명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정보공개를 투명하게 하고 즉각 대응했더라면 피해는 지금보다 덜했을 것”이라며 “이번 원전사태는 대지진과 지진해일 등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까지 겹쳐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안전불감증’에 걸린 일본의 원전 제도이다. 미국은 1974년 원자력위원회에서 안전 규제 기능을 분리해 대통령 직속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설립했다.

프랑스는 2006년 안전업무만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청(ASN)을 만들었고 캐나다는 2000년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CNSC)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현재 보건안전집행부(HSE)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올해 독립기관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본 원전의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다.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경제산업성과 보안원의 지시를 받는다. 이렇다 보니 원전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안전불감증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도쿄전력 연구진은 2007년 ‘앞으로 50년 안에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10퍼센트 정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어떠한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안일함은 정기점검 부실로도 이어졌다.

AP통신은 3월 21일 올해 2월 원자력안전보안원이 도쿄전력에서 받아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해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장비 33개에 대한 정기점검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도쿄전력은 1호기와 2호기 원자로의 펌프, 3호기의 비상 디젤 발전기, 4호기의 발전 장비 등을 정기점검하지 않았다. 원자로에 냉각수와 전기를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장비가 대지진이 있기 전부터 소홀히 관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원자력행정에 정통한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원전의 경쟁력은 안전”이라며 “일본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7월 출범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독립된 기구가 돼야 제대로 된 감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계기로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가 있기 전까지 대형 원전 사고를 가리키는 말처럼 여겨졌다.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스라마일섬의 원전 2호기의 냉각장치가 고장 났다. 원전의 내부 압력이 높아지자 압력을 낮추는 밸브가 열렸다. 압력을 일정 수준까지 낮춘 후 닫혀야 할 밸브는 계속 열린 채로 있었다. 운전원이 압력 계기판을 잘못 읽어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린 밸브를 통해 냉각수가 계속 유출됐다. 원자로의 노심이 열을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렸고, 여기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냉각수가 공급되면서 원자로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용융상태의 핵연료를 처리하는 등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데 무려 10억 달러(약 1조원)가 들었다. 사고가 난 2호기는 14년간 이런 작업을 거쳐 1993년에서야 영구 폐쇄됐다.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는 1986년 구(舊)소련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꼽힌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7단계로 5급인 스리마일 원전 사고보다 2등급 더 높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비상시 공급되는 전력의 안전성을 검증하던 운전원이 실수로 자동정지 기능을 차단한 게 원인이 됐다. 이로 인해 발전기의 출력이 갑자기 올라 원자로가 폭발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3백50배 강한 폭발이었다. 특히 체르노빌은 원자로에서 핵분열 속도를 낮추는 감속재로 불에 잘 타는 흑연을 사용했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당시 구(舊)소련 정부는 원전에서 누출되는 방사성 물질을 막을 방법이 없자 철강 7천톤과 시멘트 41만입방미터를 부어 원전을 묻었다. 사고 이후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마일(약 48킬로미터) 지역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명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유엔이 2005년 발표한 <체르노빌의 유산-사고 20년 후 피해규모의 진상>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56명이었다. 유엔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방사선을 쬔 4천여 명이 암과 같은 질병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누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해 약 20만명이 여러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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