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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놀랍습니다. 한국은 위기를 겪었던 역내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현재 거시지표도 좋고 재정균형 상태도 양호합니다.” 

메랄 카라술루 국제통화기금(IMF) 주한대표는 “회생의 공은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한 한국인들과 힘들었던 개혁을 추진한 정치지도력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9월 한국에 부임한 메랄 카라술루 대표는 1999년 IMF의 한국 외환위기 극복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을 금융과 기업 분야에서 찾았다. 거시경제 지표가 좋았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에 잠재돼 있던 단서를 찾지 못했었다는 것. 아시아 위기는 IMF에도 좋은 교훈을 주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기업과 금융부문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이젠 위기대처능력 충분하다”
최근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식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 엔화 투기)’ 청산 움직임이 국제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근본요인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금융유동성 위기가 다시 발생할 위험성은 없을까.

그는 “(10년 전과 비교해) 환경이 매우 달라졌다”면서 “IMF에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해 분석하며, 위기의 발단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고정환율제도를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은 원-달러 환율이 아주 소폭으로 움직이도록 엄격히 관리되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상대적인 환율안정은 빌리는 자와 빌려주는 자 모두를 외국 통화에 노출될 위험을 저평가하도록 만드는 약점이 있다. 해외차입비용을 낮추는 역할을 한 것이다. 국내와 해외의 이자율 차이로 막대한 외국자본이 유입됐다. 이러한 환경에서 ‘재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 은행들은 대기업에 쉽게 큰 돈을 대출해줬다. 이런 환경이 위험성을 저평가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메랄 카라술루 대표는 “한국은 이제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환율체계를 갖고 있고, 따라서 기업과 개인들이 금융활동 위험을 더 잘 인지한다”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엔화 펀드가 국내 금융자산에 투자될 경우 주식, 환율에서의 급격한 움직임은 자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은행의 위험 평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비은행권의 금융감독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10년 전 IMF는 외환위기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한국경제에 대해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요구사항이 너무 과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메랄 카라술루 대표는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IMF 지원 프로그램에서 구조조정대책들은 외환위기를 일으켰던 한국경제구조의 취약점과 경제 탄력성을 개선하고 회복을 돕는 데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책들은 외환위기의 중심에 있던 금융과 기업 분야에 집중되었다고 그는 밝혔다.

이 결과 현재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낮은 불량 채권율, 건전한 수익성과 높은 자본화 비율을 확보하는 등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기업분야 또한 경쟁력 강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자본 구조와 수익성에서 괄목상대할 만한 향상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이는 IMF가 취했던 구조조정들이 한국경제가 다시 건강해지도록 하는 중요한 열쇠였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그는 확신했다.
 

“고령화 대비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높여야”
메랄 카라술루 대표는 IMF에서 10년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IMF에선 손꼽히는 한국전문가다.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제거해야 할 걸림돌은 무엇일까. 

그는 한국경제가 장기적으로 직면하게 될 가장 중요한 과제로 고령화를 꼽았다. “고령화의 영향이 즉시 느껴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코앞에 닥칠 때까지 기다린다면 더 많은 세금인상과 지출삭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좀 더 점진적이고 완만한 재정 조정을 할 수 있고, 따라서 미래 세대들에게 더 많은 소득을 안겨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단기적 걸림돌은? 그는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했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의 낮은 생산성에 대처해야 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

IMF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대략 4.5%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2030년에는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따라 “현재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잠재성장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관련해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투자를 촉진하는 데 필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심화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에 수반한 사회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권영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10년 전 1997년 여름. 태국에서 발생한 환란(換亂) 쓰나미는 인도네시아를 거쳐 서서히 북상해왔다. A급 쓰나미였지만 당시의 ‘한국호’는 이 거대한 해일의 진로가 우리쪽이 아니니 안심하라는 예보만 내보내고 있었다. 홍콩이 한바탕 쓰나미에 휩쓸리고 주변의 파고가 거세졌는데도 정부는 ‘선체가 튼튼하니 걱정할 게 없다’고 큰소리쳤다.
기업과 금융사들은 ‘설마 우리 배가 침몰하겠냐’며 자위하고 있었다. 그사이 외국인들은 삼삼오오 구명정에 몸을 싣고 한국호에서 떠나갔다.

그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 동아줄에 매달려 간신히 침몰을 면한 한국호는 만신창이였다. 살아남은 기업들은 IMF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했고 상당수가 이를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아이의 돌 금반지를 내놓고, 팔을 걷어붙인 채 난파선인 한국호를 수리해 나갔다.
그러기를 3년 8개월. 2001년 8월 23일 한국은 IMF에 졌던 빚을 모두 갚고 경제주권을 되찾았다.  2004년 5월까지 갚기로 했던 돈을 3년이나 앞당겨 갚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곪은 경제가 외환위기 불러 = 우리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외환유동성 부족이었다. 97년 말 우리나라의 가용 외환보유액은 89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가부도 위기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실질적인 주범은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 부실 대기업의 연쇄부도,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등이다.

97년 새해가 되자마자 한보그룹 부도는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했고 7월 기아사태는 결정적인 ‘뇌관’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기초체력(펀더멘탈)은 튼튼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금융기관도 연쇄부도 차단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어설픈 시장논리만을 내세우며 손을 놓고 있었다. IMF에 ‘경제주권’을 넘겨주는 순간까지도 우리 경제의 환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경제체질 강화에 쏟아 부은 10년 = 고난을 겪으면 성숙해진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경제도 환란의 아픔을 겪으며 성숙해졌다.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기업 구조조정은 퇴출·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됐다. 1998년 6월에는 55개 기업이 퇴출판정을 받아 청산·매각·합병 등으로 정리됐고 5대 그룹 간에는 빅딜이 이뤄졌다.

금융구조조정도 강도 높게 추진됐다. 97년 말 33개에 이르던 은행은 2003년 16개로 줄었고 30곳에 이르던 종합금융사는 2곳만 남게 됐다.

이 같은 경제체질 강화로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건전해졌다. 또 한보·기아·대우그룹의 몰락에서 보듯 ‘대마불사’신화는 무너지는 한편, 시장기능은 강화됐다.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10년 전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던 한국경제는 이처럼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을 통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짧은 기간에 정상을 되찾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바통을 이어받은 참여정부는 경제구조조정과 시스템 선진화, 양극화 문제 등 경제 불균형 해소,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 위험에 대비한 성장동력 확충 등 세 가지 방향으로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방안으로 △위기관리시스템(EWS) 구축 △신용불량자 종합대책과 금융채무불이행자 대책 등을 통한 가계부채 조정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대책(2004.3),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2004.12), 금융지원체계 개편방안(2005.6) 등을 통한 구조조정 및 경쟁력 강화 등을 추진했다. 아울러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2003.12)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개선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사회안전망 구축 등의 정책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한 때 89억 달러로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액은 2500억 달러를 넘어 세계 5위가 됐고,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은 97년 1362억 달러에서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지난해 3000억 달러를 돌파(3254억 달러)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2만14달러(2007년 예상치)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가신용등급도 S&P가 A, 무디스가 A2로 각각 8단계, 5단계 상승했다.

이 같은 경제지표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아픔을 딛고 땀 흘려 이루어낸 성과다. 외환위기의 상흔이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한국호’는 당면 과제들을 하나하나 개선하며 세계시장을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권태욱 기자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강타한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올바른 거시경제정책은 한국경제를 성공적으로 변형시켰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평가다. 실제 한국경제는 2003년 1·4분기 이후 전기 대비 17분기 연속 성장했다. 반면 실업률은 2002년 12월 이래 최저치로 하락하고 소비자기대지수가 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수출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내수도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유가급등에도 불구하고 위험요소들은 대부분 줄어들었다. 인플레이션의 경우 최근 유가급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목표로 한 2.5~3.5% 범위 안에 머물고 있다. 정부당국이 전향적이고도 신중한 정책으로 세계 경제 상황에 대처한 덕분이다.

IMF는 이에 따라 2007년과 2008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치보다 높였다. 지난해 5%의 경제성장을 기록한 한국은 올해 4.8%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내년에도 4% 후반대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앞으로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IMF는 예측했다. 결국 몇몇 위험 요소는 있지만 한마디로 한국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1998년 이후 연평균 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경제에 잘 편입하고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도 1998년 7523 달러에 불과했으나 올해 2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경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각 산업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과 금융 분야가 상당히 건전해져 외환보유고가 크게 늘어난 덕택에 한국의 취약성은 낮은 수준이 됐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IMF보고서는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2006년 한국의 실질 GDP성장은 5%에 이르렀다. 이는 수출에 힘입은 것으로 4년 이래 최고치다. 수출은 가파른 원화 절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5% 가까이 성장했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의 자동차·선박·전자제품 판매와 국내 소비지출 증가는 미국의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됐다.

2006년 말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2007년 하반기 다시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이 계속해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수주가 밀려들고 있으며, IT도 올 하반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IMF는 “지난 수년간 원화가 대부분 주요 통화들 대비 대폭 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외경쟁력은 여전히 강해 원화가치는 적절하게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권영일 기자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위환위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부터 들어볼까요
조흥식  한국 경제는 빠른 압축성장과 함께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경제시스템의 취약성이 들어나면서 시장은 요동쳤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위기 때마다 잘 극복해 왔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우리 경제체질이 위기에 약했던 것이죠. 외환위기가 준 교훈은 이같은 압축성장이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경제가 속으로 곪은 것이 터진 것이지요.

양두용  외환위기는 한국경제에 쓴 ‘약’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투명성을 확보했고 위기에 대한 조기경보 체제도 구축됐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을 값비싼 대가와 희생을 통해 얻은 셈이죠. 정부는 특히 기업의 보호막을 걷어내고 기업들이 자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장동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왔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전면적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외환 및 자본자유화를 추진해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를 외환위기 이전에 추진했더라면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내실을 다져왔고, 이제는 해외로 뻗어나갈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SET_IMAGE]7,original,right[/SET_IMAGE]양두용
  외환위기를 3년 만에 극복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IMF가 유일하게 자랑하는 나라가 한국이었죠. 이처럼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로부터 신속히 회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대규모 공적자금이 부실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신속히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실질환율의 하락과 금리정책의 신속한 조정이 경기회복에 기여했다고 봐야 하겠죠. 특히 금모으기 운동 등 국민 모두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결집한 것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10년 전과 지금의 경제상황을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고영선
  우선 경제 성장률이 달라졌습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성숙해 갈수록 성장률이나 소비·투자 증가율 역시 둔화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실제 우리 경제의 성장 추이를 보면 1970~80년대 7~8%, 1990년대 6% 내외의 성장에 이어 2001~06년 중에는 연평균 4.6%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 시기보다 문민정부, 6공화국 시기에 경제성장률이 더 높은 것은 경제성숙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성장이 낮은 이유는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는 가계, 기업, 금융부문에서 위험관리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었지만 개별 경제주체의 위험 기피성향을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의 투자가 감소하고 가계의 안전자산 선호성향이 커지면서 국민경제의 장기 성장잠재력이 떨어진 거죠. 투자지출의 감소도 외환위기와 회복을 겪은 아시아 경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는 특징으로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양두용  IMF라는 구조적 충격을 견딜 수 있게 됐습니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죠. 얼마 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예전처럼 민감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외환위기 학습효과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아마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을 쳤을 겁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학습효과를 한 지금은 부실 우려에 따른 금융시장 위기를 해결해 갈 수 있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자생력도 생겼습니다.





지금 외환위기 10년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어떻게 봐야 할까요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조흥식
  외환위기 10년에 대한 평가 논란은 아무래도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된 데서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양극화 원인을 따져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세계화된 시장경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가속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경쟁력 확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의 아웃소싱 확산, 혁신과 자동화로 인한 고용수요 감축은 이미 예상된 것입니다. 양극화나 고용 없는 성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후유증으로 봐야 합니다. 또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늘어난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도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외환위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것도 얻었습니다. 외환위기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운용의 시스템을 정착하고 건강하고 투명한 경제의 바탕을 다졌습니다. 또 직장인의 경우 임금수준을 보면 과거 10년 전보다 크게 향상됐습니다. 
아직도 속살을 뜯어내면 외환위기 후유증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자리 창출과 투자활성화, 성장잠재력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와 국제경쟁력도 비교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양두용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신속한 구조조정을 주도함으로써 금융시장이 조기에 안정되고 대외 신인도도 상향 조정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개혁과 고쳐나갈 문제는 많다고 봅니다. 특히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경제정책이 제조업 중심의 수출기업에 맞추다 보니 고용 없는 성장만 해 온 거죠. 오늘날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인데 이는 노령화·저출산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기업투자의 저조 때문입니다. 성장잠재력의 약화 요인으로는 기업의 보수적인 투자와 국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취약에 따른 해외 소비지출의 큰 폭 증가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저성장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수출촉진과 병행해 부진한 소비 회복 방안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가장 시급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용이 점차 감소하는 제조업 분야보다는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외환위기 후 새로 생긴 일자리들이 돈을 적게 주거나 임시일용직이어서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영세 서비스업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형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등 서비스산업의 혁신역량을 강화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늘려야 합니다.


참여정부의 동반 성장론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면
[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고영선
  분배는 세계적으로 볼 때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시점에서 분배를 확대하는 정책은 올바른 것이라고 봅니다. 동반성장 패러다임은 복지가 성장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에 기여하는 일종의 투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에 따른 것입니다.
분배(복지)는 과거에 생각하던 것처럼 성장을 저해하는 방해물이 더 이상 아닙니다.
오늘날 지식기반경제로 이행해 가는 경제 환경에서 양질의 인적자본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확보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 자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사안이 됐죠. 그래서 분배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성장동력 확보의 필수부분이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장과 분배는 함께 가야 하는 것이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조흥식
  외환위기와 상관없는 위험요인들이 생겼습니다. 노동시장이 급변해 취업기회를 잃는 계층이 늘어 사회적 배제와 신빈곤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거죠. 신빈곤이란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소득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빈곤현상을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고령, 단기적 실업, 장애, 빈곤 등 전통적 의미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복지체제가 중요시돼 왔으나 이 같은 신빈곤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는 새로운 사회위험으로 등장하고 있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고영선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그만큼 경제소득도 좋아짐에 따라 삶도 외환위기보다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조흥식
  외환위기 이전의 우리나라 사회복지서비스 체계는 공공구조 중심이었습니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였죠. 노동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장해주는 생활보호제도가 그것이었죠.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존 생활보호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해 실업문제까지 대처하자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종전의 생활보호제도의 대상 가운데 근로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생계비를, 취업을 한 경우라도 기초생활비가 부족한 가구에 그 부족분만을 국가가 지원해 주겠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가족의 소득보장을 위해 생활보호제도를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면 확대 개편함은 물론이고 고용서비스를 내실화하기 위해서라도 장·단기 실업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양두용
  세계 경제는 급변하는데 한국인들의 글로벌 경쟁 마인드가 아직도 빈약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개방된 사고방식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내에서 일자리 찾기가 힘들다면 해외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일랜드도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고용창출이 어렵게 되자 해외로 나가 일자리를 갖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국내 상황에만 머무르지 말고 글로벌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거죠. 정부는 이를 위해 인적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조흥식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나타난 계층 간·이익집단 간의 갈등을 봉합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국가가 책임감을 갖고 적극 나서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소득아동에 대한 사회적 보육·교육기회 제공,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기 위한 공교육 강화, 중·고령층의 직업훈련 활성화 등 개개인들의 인적자본을 증진시키는 복지서비스정책도 강화돼야 합니다.

 

 


[SET_IMAGE]9,original,left[/SET_IMAGE]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환율이다. 외환위기가 다가오기 전인 1997년 상반기, 1달러당 환율은 800원대였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가파르게 상승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 합의된 뒤에는 1695원(1997년 12월 31일)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 2007년 10월 말 현재 910원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수출은 1997년 당시 1361억 달러에서 매년 두 자릿 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지난해 3000억 달러를 돌파(3254억 달러)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2만14달러(2007년 예상치)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외환위기로 인해 국민의 큰 관심을 끌었던 외환보유액은 97년 10월 말에 305억 달러였다. 이 중 실제 쓸 수 있는 가용외환보유액은 225억 달러였고 IMF 구제금융합의 시점인 97년 12월 말에는 89억 달러였다.

지금은 외환보유액이 과다하지 않으냐는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9월 말 현재 2572억 달러로 늘었다. 국가신용등급도 S&P가 A, 무디스가 A2로 각각 8단계, 5단계 상승했다.

이 같은 외국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상승은 국내 증시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7월 25일 미국 증시 급락의 여파로 약세로 출발한 국내증시는 이날 오후 무디스가 국가 신용등급을 A2로 상향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꿈의 2000포인트를 넘어섰고 10월29일에는 사상최고치인 2062포인트까지 상승했다.



















[SET_IMAGE]10,original,right[/SET_IMAGE]위환위기는 한국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 모습도 크게 바꿔 놓았다. 사회복지 지출 규모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49.1%가 늘어났다.
국민기초생활보장과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사회안전망의 기본 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또 의료수요의 증가,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의료 인력의 공급도 꾸준히 늘어 의사 1인당 인구수는 97년 12월 210명에서 144명으로 줄어들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이 적정한 체육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체육시설의 규모도 10년 전 보다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1인당 체육시설면적은 97년 0.95㎡에서 2005년 1.92㎡로 두 배 증가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졸 이상 성인 중 재교육을 받는 평생교육참여율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10년 전 국내 경제여건 악화로 교육에 대한 소비와 지출이 크게 위축됐다. 이후 주5일 근무제 도입 등으로 평생교육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평생학습관 등 인프라가 개선이 되면서 평생교육 참여하는 국민의 비율이 10년 전 17%에서 2004년 22%까지 크게 증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줄어들었던 외래 관광객도 많이 늘었다. 한국 방문 외래 관광객은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600만 명 고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10년 전 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외래 관광객은 615만 명으로 집계됐다.

권태욱 기자

 
















[SET_IMAGE]11,original,left[/SET_IMAGE]외환위기(IMF)는 우리 국민들의 삶의 패턴까지 뒤바꿔놓았다. 기업체는 물론 자영업자와 일반국민들까지 상실감을 안겨줬던 일대 사건이었다. 부실기업들이 부도로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위기상황을 전환점으로 삼아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있다.

장택현(54·경북 구미시) 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  IMF 파고에 휩쓸려 직장을 잃고 귀농, 보란 듯이 성공한 농사꾼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가구점, 새시 전문점, 다방 , 개인 용달사업 등을 벌였지만 모두 시원치 않았다. 결국 자영업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선택한 것이 자동차운전학원 강사였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 막 재미가 붙을 무렵인 1998년 IMF로 인한 감원바람으로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살던 집이 화재로 전소됐다. 결국 빈털터리가 된 채 어머니와 아내, 슬하의 2남1녀를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에 남겨진 자산이라고는 고향에 남아있는 밭 3306㎡(1000평), 논 1653㎡(500평)가 전부였다.

“귀향할 땐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어요. 조금이나마 땅이 있어서 막연하게 농사나 짓자고 생각했던 거지요.”

마침 98년도부터 농촌진흥청에서 귀농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놓고 있던 터여서 이곳에 등록을 서둘렀다. 정부로부터 1400만 원의 정착 자금도 받아 처음 시작한 것은 흑염소와 토종닭 사육. 앞서 그는 당시 농업기술교육센터에서 함께 교육을 받던 30여 명과 귀농연구회 모임도 만들어 난생 처음 회장이란 감투도 썼다. 다행히 성공을 거둬 축사를 넓히고 흑염소, 오리, 토종닭, 개까지 사육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자, 이번에는 식당을 차렸다. 직접 사육한 가축에 무공해 양념, 채소 등을 사용해 만들어 내는 요리는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장씨는 “바쁘게 일한 만큼 수입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자식 셋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먹고 사는 데 남부럽지 않을 만큼은 됐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지역에서 신임을 얻어 이장만 7년을 맡았다. 올해에는 젊은 사람에게 이장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농촌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농사짓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촌에서 땅만 열심히 파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귀농하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귀농을 결정하기 전에 성공자들의 조언을 많이 들어야 실수를 줄일 수 있어요.”
 장택현 씨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후배 귀농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SET_IMAGE]12,original,right[/SET_IMAGE]강신기(48) ㈜슬로비 대표이사 또한 IMF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슬로비는 ‘에스보드’로 유명한 세계적인 레포츠용품 기업이다.

“만약 IMF가 없었다면 돈을 좀 벌고 있다는 것에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IMF로 바닥생활까지 해봤기 때문에 이젠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헤쳐 나갈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집안사정이 어려웠던 그는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연탄배달, 벌목, 막노동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었다. 그러다 정부산하기관에도 입사했지만 틀에 박힌 업무가 싫어 직장을 그만두고 침대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번창해 전국에 13개 대리점을 둘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IMF라는 큰 재앙이 닥쳤다. 주먹구구식으로 벌이던 사업이라 타격은 더욱 컸다. 가족을 시골로 보내고 자신은 사우나와 고시원을 전전하다 그마저도 사치라는 생각에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며 낮에는 인력시장에 나가 돈벌이를 해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탰다.

노숙생활 중 우연한 기회에 ‘에스보드’ 에 대한 관심을 갖게 돼 우여곡절 끝에 발명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신용불량자인 그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백방으로 투자 자금을 구하러 다니던 중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부터 개발자금을 지원받아서 큰 도움이 됐죠. 저처럼 돈 없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정부의 다양한 지원제도를 알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제품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는 15억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대출 받아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사업이 번창하며 인정을 받게 돼 대한민국 특허기술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으로부터 벤처디자인 금상을 수상했다.

그의 도전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고 2004년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국제발명전에 에스보드를 출품했다. 그 대회에서 5관왕의 쾌거를 이루며 미국과 유럽 시장에 알려져 지난해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요즘 다시 한 번 IMF의 어려웠던 시절을 되새기며 힘을 축적하고 있다. 중국의 짝퉁 에스보드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판을 치고 있어 사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비해 매출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지만 새로운 제품개발로 만회할 생각입니다. 아이디어를 훔쳐서 잇속을 챙기는 짝퉁을 없애기 위한 싸움도 계속할 거고요.”
강신기 대표는 IMF를 이겨낸 힘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글 이선민 기지 사진 한준규 기자

 

 



지난 10월 16일은 김우석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 사장에게는 뜻 깊은 날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과도한 부채로 98년 워크아웃 대상이 되고 2001년 법정관리와 파산선고 등 시련을 겪었던 동아건설이 9년여 만에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 존폐 위기까지 처했다가 회생에 성공해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거듭난 동아건설을 바라보는 김 사장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다.

외환위기 다음해인 98년 말까지 30대 국내 재벌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도산위기에 몰리고 중소기업의 연쇄부도가 이어지면서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IMF의 도움으로 국가파산은 간신히 면했지만 그 순간부터 100조 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금융시장이 거덜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동아건설의 회생을 통해 활용가치가 높은 전략적 기업의 경우 도산보다는 회생을 추진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 사장이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파산위기 기업을 회생시키려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인수한 후 다양한 선진 매각금융기법을 도입해 금융기관의 유동성과 자산건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 국제금융시장에서 대외신인도를 높이겠다는 복안이었다.

자산관리공사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부실채권정리기금’ 업무를 맡아 부실채권 111조 원 어치를 신속하게 매입한 뒤 이를 효과적으로 정리하면서 부실채권정리 전문기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특히 투입 공적자금(40조 원)의 105%를 회수하는 성과를 거두며 외환위기 극복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보철강, 대우종합기계, 대우건설 등 굵직굵직한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켜 기업회생을 통한 기업구조조정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국제금융 업무에 정통한 김 사장은 맡은 업무마다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행정고시 14회에 수석 합격해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40억 달러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실무적으로 처리한 주역이다. 이 덕분에 국제금융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유로머니지로부터 98년도 우수발행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지난 98년 4월 IMF와의 정책협의 때에는 한국경제를 옥죄던 고금리 정책을 저금리로 전환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25여 년간 몸담았던 재경부를 떠난 김 사장은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올 1월 자산관리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김 사장은 “위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쉴새없이 뛴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면서 “외환위기가 남긴 교훈을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 사장의 올해 화두는 ‘글로벌 투자’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 업무를 맡았던 캠코의 역할이 상당 부분 마무리되면서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그 첫 무대는 중국으로 정했다.

깔끔한 성품으로 여직원들 사이에선 ‘멋쟁이 사장님’으로 불리는 김 사장은 “민간기업과 공기업, 정부와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정상화됐지만 방심은 금물”이라며 “최근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큰 데 10년 전의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모두가 다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권태욱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그땐 그랬었지

눈물의 비디오에서 금모으기 까지

[SET_IMAGE]13,original,right[/SET_IMAGE]IMF한파가 한창이던 1998년 2월.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가 ‘눈물의 비디오’로 알려지며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은행권 최초로 대규모 명예퇴직이 실시되고 있던 제일은행 직원들의 회한과 고통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비디오가 전 국민을 울린 것이다.

눈물의 비디오는 1997년 12월 폐쇄를 앞두고 있던 제일은행 테헤란로 지점의 하루를 약 8분 분량으로 담아낸 영상물이었다. 그해 초 명예퇴직한 2300여 명의 동료ㆍ선배들도 중간 중간 나와 “남은 사람들이 잘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본 직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해서 ‘눈물의 비디오’로 불렸다. 외환위기 당시 암울했던 경제상황을 반영한 이 비디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던 기업들은 물론 CNN 등 외신들도 큰 반응을 보였다. 그 후 비디오의 주인공이던 이상억 차장이 췌장암으로 고인이 되고, 퇴직한 은행원들도 대부분 힘겨웠다는 후문이 사람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단결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IMF 시기 때 국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TV에서는 연일 금모으기 운동 특별방송을 편성해 방영했고 국민들은 돌 반지며, 장롱 속 금비녀, 결혼예물 등을 기부하거나 팔고자 은행에 장사진을 쳤다.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고도 불리는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국민들의 위기 극복 의지를 발견할 수 있어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선민 기자

 



1997년 11월 21일 한국이 IMF에 긴급지원을 요청한 데 이어 다음달 3일 구조조정 협약을 맺으며 ‘경제 국치일’을 맞았다. 세계 각국은 연일 ‘한국 경제의 침몰’을 커다란 뉴스로 다루며 우려를 나타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사설을 온통 한국 경제 위기에 할애했다. 신문은 한국이 무너질 경우 세계적인 무역분쟁의 확대와 보호주의의 대두가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이 부실은행 정리 등 구조조정에 착수하기만 했어도 이 같은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 경제전문 방송 CNBC는 한국 정부가 종목당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확대한 뒤 외국인 투자자금이 몰려들고 이로써 통화위기가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지나치게 안주하는 바람에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비틀거리는 거인들’이란 제목으로 “한국의 위기가 아시아 경제의 질환을 대표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과연 싸워낼 수 있을까’란 제목으로 한국의 위기를 자세히 다뤘다. 특히 매출 등에서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한 재벌의 무분별한 자본차입이 큰 문제를 일으켰다며 “한국의 선택은 스스로 신속하게 금융개혁을 이루느냐에 달렸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다. 이어 한국이 성장을 이어가려면 금융기관, 재벌, 정부당국, 노조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의 상황을 계기로 ‘세계가 슬럼프에 빠지고 말 것인가’를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대 문제는 금융의 취약성이지만 제 노릇을 못해 주저앉는 은행문제 해결이 과제”라고 풀이했다. “한국 정부가 그러지 못할 때 그 부정적 파장은 전세계에 퍼지고 만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버핏, 한국경제를 높게 보다, 전반적인 그림이 매우 좋다.”
세계 언론들은 지난 10월 26일 방한한 세계적인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말을 빌려 한국 경제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분석했다. 경제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인 ‘증시’에 대해 버핏은 “여전히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며 ‘거품’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렇게 볼 이유가 없으며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 등 전반적인 상황이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종합적인 분석도 잇따랐다. 세계적인 신용평가 그룹 무디스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3에서 A2로 상향 조정했다. 견고한 경제, 안정된 재정정책, 북핵 위기 완화, FTA 추진 등 한국 정부의 성장 모멘텀 확충 노력을 이유로 꼽았다.

경제분석 기관 액션이코노믹스는 “최근 쏟아진 경제 통계와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으며 블룸버그 통신도 “한국 경제가 강력하게 컴백했다”고 논평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경제를 ‘도약’으로 표현했다. 한국은행이 잠정집계한 2분기 실질성장률 1.7%를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 7% 성장 대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은 또 이러한 경제상황을 실제보다 훨씬 나쁘게 인식하는 한국인들도 있으며, 국내 뉴스들도 90년대의 높은 한 자릿수 성장에서 5%대로 떨어진 점을 근심스럽게 보도하고 있으나 실제 상황을 감안할 때 지나친 걱정이라고 꼬집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한국 주가 2000 시대 개막을 보도하며 경제에 대해 ‘순항’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풍부해진 유동성과 함께 전반적인 경제·비경제적 상황의 호전이 증시 2000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서울신문 국제부 송한수 기자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이사로 재직하면서 온갖 수모를 다 겪었는데, 이제 국제금융연구소(IIF) 이사국으로 우리 경험을 전수한다는 입장이 되고 보니 감회가 특별합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0월 22일 저녁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특파원들과 만나 IMF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권 부총리는 “IMF와 세계은행이 합동으로 여는 이번 연차총회에 참석한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및 비회원국들의 초대가 잇따랐다”며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새삼 느꼈다”고 밝혔다. 권 부총리의 얘기는 IMF 전후의 금석지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IMF 외환위기 10년은 무슨 교훈을 남겼는가. 그 교훈을 얻기까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가. 양극화·고용불안 등 IMF 외환위기가 낳은 후유증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한국경제는 지난 10년간 경기지표가 빠르게 회복됐고 대외거래나 신인도 면에서도 안정을 되찾는 등 무난히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렇지만 샴페인 뚜껑을 따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안순권 박사는 “앞으로 일본과 같이 장기불황을 겪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기업이 계속해 국제적으로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은 최근 회고록에서 10년 전 세계 11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의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세계은행에서 1등급 국가목록에 한국을 공식적으로 포함시킨 데다 지표상 한국경제는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견고해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250억 달러였다. 이 정도면 ‘아시아 경제 침체의 전염병’은 충분히 비껴갈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





정부·기업 신뢰성 높여야 재발 방지
그린스펀은 그러나 곧 당시 한국정부가 외환보유고를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당시 한국정부는 갖고 있던 외환 대부분을 시중은행에 매각 또는 융자했던 것이다. 정책 혹은 재정의 투명성(transparency)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방증해주는 좋은 예다.

참여정부는 ‘시스템 정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출범 이후 줄곧 국정운영 혁신을 위한 시스템 구축과 그에 따른 효율성을 강조해왔다. 그 결과 국가 신뢰도는 크게 높아졌다.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속에서 정부와 기업의 신뢰성 추락은 국내 정치적 측면만이 아니라  해외투자  자본의 국내유치 등 국가경쟁력의 추락으로 연결된다. 튼튼한 경제구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들도 나타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는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영향을 미치거나, 궁극적으로는 대외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다. IMF는 최근 경제전망에서 노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재정압박과 노동력의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노동력 감소는 한국의 저숙련 제조업의 기반과 정체된 서비스분야와 함께 연결돼 장기 성장의 한계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재정개혁들은 쉽지 않다. 메랄 카라술루 IMF 주한대표는 “저출산·고령화는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며 “한국은 고유의 국민합의를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분배 선순환 구조 정착 필요
단기적으로는 서비스 산업의 낮은 생산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이 걸림돌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의 낮은 생산성에 대처해야 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성 증가는 1990년 대 초 이래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 실제 한국의 서비스 부문 노동 생산성은 제조업의 약 56%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회원국의 93%보다 상당히 낮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관련, 해고에 대한 엄격한 법규 등 고용보호정책들은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하고, 정규직 노동자를 덜 고용하도록 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을 위한 사회적 상생 노력도 요구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선진한국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고, 나아가 또 다시 경제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매우 심각하며, 계층별 양극화 역시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극복’을 국정운영의 핵심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양극화는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확대·재생산하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인 탓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득·기업격차·비정규직 우선 해결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또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복지예산을 확대하는 한편, 중소기업과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연금개혁과 부동산 시장안정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계속해서 먹을거리를 찾아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 지역균형발전도 간과할 수 없다. 전국이 고루 잘사는 균형발전은 신성장동력과 지역발전을 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개방에서 경제구조를 개선하려고 있다.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서다. 한·미 FTA와 한·EU FTA, 그리고 한·ASEAN FTA 등 글로벌 FTA는 제3세계 국가들을 차별하지 않으면서 무역자유를 촉진해 많은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게다가 시장개방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거대시장을 파고들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국민적 합의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권영일 기자

 





우리 경제에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내년도 경기 전망에 대한 낙관론이 쏟아지고 있다. 수출이 견인하던 경기회복세가 내년엔 내수가 힘을 발휘하면서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경제전문가들은 ‘짧은 상승, 긴 조정’을 반복하던 경기패턴이 앞으로 상당기간 상승무드를 지속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물론 국제금융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동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고 기름값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이 잠재해 있어 마냥 장밋빛으로만 흐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체질이 어지간한 외부변수에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졌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KDI를 비롯해 한은·재경부는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두 자릿수의 수출 증가율 지속에다 내수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소폭 늘면서 우리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견조하다는 판단에서다.

내년에도 5%의 성장률이 예상된다는 게 이들 기관의 공통된 전망이다. 내년에 5% 성장률을 달성하면 지난 2006년 5%, 올해 4.9%(KDI 전망치) 등에 이어 3년 연속 5%의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경제성장률 상향조정
KDI는 올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4%에서 4.9%로 크게 올렸다. 수출증가세가 예상치를 상회하고 내수 회복세도 빨라 경상수지가 5억 달러 적자에서 39억 달러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내년에는 내수가 더 힘을 낼 것으로 보고 5% 전망치를 내세웠다. 경제전망에 조심스러운 한은도 올 성장률 전망치를 4.5%에서 4% 후반대로 높였다. 설비투자가 다소 부진하나 수출 호조가 이어지고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경기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한은의 경기진단이다.

재경부 역시 “우리 경제는 내수와 수출의 균형 속에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기저효과 등 불규칙한 요인으로 일부 내수 지표가 최근 전월 대비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경기 상승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는 올 경제성장률을 당초 4.6%에서 4% 후반대로 예상했다.
 

경기 호조 사이클 지속
전문가들은 이번 경기회복세가 금방 꺼지던 예년의 패턴을 탈피해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년 연속 5%대 성장이 예상되고 최근 시장 상황도 국제금융시장 불안과 달리 큰 영향 없이 수출이나 소비가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체력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내년에 소비와 투자가 국내 경기를 책임지면 5% 성장은 무난할 것”이라며 “특히 투자 부문은 사이클상 교체시기가 도래해 소비와 함께 크게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강한 내수가 뒷받침돼 내년 하반기까지 호조 사이클이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다.

경기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불안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본격적인 회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유가, 미국 주택경기 침체 및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의 리스크 요인에 대해 파급 영향을 계속 주시할 필요도 있다. 국내 경기는 괜찮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기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주목해야
KDI는 미국의 주택시장 침체가 국내경기 확장세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 이후 선진국의 주택가격이 5~20% 이상 급등했으나 지난해부터 상승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 만약 미국 성장률이 1% 이하로 급락하거나 주택시장 관련 불안이 여타 선진국으로 확대되면 우리 성장률은 5%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가와 과잉 유동성도 잠재적인 불안요소다. 한은은 소비자물가가 경기상승에 따른 수요압력 증대로 오름세가 확대될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하반기에는 2% 후반대에 이르고 내년 초엔 3%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넘쳐나는 유동성도 문제다. 7·8월 연속 콜금리를 올렸으나 유동성 과잉 상태는 여전하다. 아울러 달러화 약세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진행되는 것도 우리에겐 큰 부담이다.     

 서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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