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차 남북정상회담과 2차 남북정상회담(이하 ‘정상회담’)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직 시작되기 전이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첫 정상회담’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이 됐다는 것과 남측 정상이 김대중 대통령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1차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이번 2차 정상회담은 보다 투명한 절차를 밟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선 정상회담의 추진과정부터 시비를 걸고 있지만 사실 지난 2000년의 정상회담 추진과정에 비해 법률에 정한 대로 투명한 절차를 밟아 진행되었다”며 “이미 시행 중인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김만복 국정원장은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한과 협상을 진행했고 합의 직후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즉시 공개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말한 투명한 절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북정상회담 재개는 1차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정부가 집권초기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일이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두 정상이 만나 흉금을 터놓음으로써 상호신뢰 속에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1차 회담에서의 ‘서울 답방’ 합의에도 불구하고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았다. 양측 모두 적당한 시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이 2006년 7월 5일 북측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서도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러다 12월 18일 5차 2단계 6자회담이 재개됐다. 2007년 1월 16일 북·미 간 베를린 회동이 있은 후 2월 13일 북핵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는 핵폐기 초기 이행조치라는 ‘2·13 합의’를 도출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비공개 방북요청
정상회담 재개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가운데 결정적으로 물꼬를 튼 것은 6월 14일 방코델타아시아(BDA)문제 해결이다. BDA 계좌에 묶여 있던 북한자금의 송금이 재개되면서 3개월 넘게 공전하던 2·13 북핵합의 이행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6월 21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전격 방문했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희소식이 온 것은 지난 7월 29일이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8월 2일 남측의 국정원장이 비공개로 방북해 달라는 공식요청이 정부에 전달됐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김만복 국정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것을 결심했으나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했으며, 최근 남북한 주변정세가 호전되고 있어 순회상봉이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전언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국정원장이 다시 방북해 남측의 동의 여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문재인 추진위원장 “담담하고 차분하게 준비”
다음날인 8월 3일 서울로 돌아온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 내용을 보고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기다렸던 북측 제의에 대해 망설임 없이 수용할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8월 5일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오는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이 담긴 남북합의서에 김만복 원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서명했다.
1차 회담 때와 달리 발표 또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합의문 작성 3일 후인 지난 8일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공식 발표했다. 북한 또한 같은 시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했다.
정부는 즉시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지휘·조정·집행할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위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준비기획단’(단장 통일부장관) ‘사무처’(처장 통일부차관)를 발족했다. 추진위원회 위원은 외교안보정책실장, 통일부장관, 외교통상부장관,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국무조정실장 등이고, 정상회담 관련 실무 기획과 집행기능을 수행할 준비기획단에는 재경부, 통일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문화관광부, 국정원, 국무조정실, 안보정책실, 홍보수석실, 경호실, 국정상황실 등에서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구성해 국민여론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계획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과거에 1차 정상회담의 경험을 가졌던 인사들의 경험을 듣거나 또는 이와 관련된 전문가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의견을 듣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동북아 평화에 큰 도움”
공식적인 준비작업으로는 8월 10일 오전 10시에 청와대 내 ‘남북정상회담 준비 T/F 회의’가 열렸다. 윤병세 외교안보정책수석 주재로 열리는 이 회의는 매일 오전 한 차례 열려 의제발굴과 현안대책 및 연설문 검토, 홍보전략 수립, 행사 컨셉트 정리, 일정계획, 자문단 구성을 논의한다. 일요일인 12일에는 추진위원장인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준비 T/F 회의에서 준비한 정상회담의 목표와 핵심 의제, 대표단 규모, 왕래 절차, 회담 형식 및 횟수, 기타 체류 일정, 의전·경호·통신·보도문제, 선발대 파견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13일로 예정돼 있던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 준비접촉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북측과의 논의를 거쳐 제반사항을 확정하고 8월 28~30일 평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이와 동시에 이번 남북합의서는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비준·공포로 발효하며 국회에 보고된다. 특히 재정 부담이 수반될 때는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난 10일에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출석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과정과 계획에 대해 보고하기도 했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8월 11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예방을 받고 8·28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해 “한반도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성공적 개최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정상회담의 맥을 이어가게 된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며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임기 중 한 번이 아니라 매년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동섭 객원기자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이번 정상회담이 합의되기까지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역할이 컸다. 남북한 정보기관 수장들이 협상 전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측은 이번 회담을 추진하면서 협상라인을 국정원과 통일전선부의 수장으로 특정해 북한에 제의했다.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는 우리로 치면 국가정보원과 통일부의 역할을 함께 하는 부서다. 이처럼 정보기관을 협상전면에 내세운 것은 정부 공식 라인이면서도 비밀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과거와 달리 비공식 라인은 가동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만복-김양건 두 정보기관 수장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김 원장이 이같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정원 사상 처음 직원으로 출발해 원장까지 오른 그는 국내외, 북한 문제를 불문하고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남들이 기피하던 이라크 파병안 수립을 위한 제2차 정부합동조사단장을 맡은 게 그에겐 행운이었다. 2003년 11월 대통령에게 올린 관련 보고서가 객관적이고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2004년 2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이같은 평가가 크게 작용했다.
김 원장은 또 지난 1998∼99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해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한 3∼6차 4자회담의 우리 측 대표였다. 2000년 6월엔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 원장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비슷한 역할을 한 셈이다.
김 원장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2·13 합의’진전을 가로막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되자 7월 초 김양건 북한 노동부 통일전선부장과의 접촉을 제안함으로써 정상회담의 물꼬를 텄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 실세다. 전문 외교관료 출신인 김 부장은 재작년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후속 정상회담 개최 원칙에 합의한 6·17 면담 때 배석했다. 2005년 북·중 정상회담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특사의 평양 방문 당시 회담장에서 김 위원장 옆에 배석하는 등 북핵 외교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김 부장은 1938년 평남 안주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뒤 당 국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통이다. 외교관으로서 날카로운 판단력, 깔끔한 외모, 신사적인 매너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용순 전 부장 등과는 달리 외향적이라기보다는 조용하면서도 업무를 꼼꼼히 챙기는 학자 스타일로 알려졌다.
올해 초 그가 통일전선부장으로 임명되자 전문가들은 남북 관계의 급진전을 점쳤다. 김 위원장이 그를 각별히 신임하고 있는 데다 허담, 김용순 등 당 국제부 출신이 통일전선부장으로 기용됐을 때 남북관계가 좋았던 전례 때문이다. 실제 김 부장이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이후 남북 연결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졌다.
권영일 기자

1. 정상회담 추진과정이 불투명하다?
법률에 정한 대로 투명한 절차를 밟아 진행되었다. 이미 시행 중인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김만복 국정원장은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한과 협상을 진행했고, 합의 직후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즉시 공개했다. 또한 법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비준을 거쳐 국회에 보고했다. 법절차에 따른 비공개 공식 특사의 투명한 협상과정과 결과보고인 셈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밀실거래나 비공식 협상, 비선 라인 활용은 이제 꿈도 못 꿀 일이다.
2. 정부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에 구걸했다?
회담 성사를 위해 구걸하려 했다면 지난 5월 21차 장관급 회담에서 주기로 한 쌀을 연기하면서까지 북을 자극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최근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NLL 논의불가를 고집하면서 북과 설전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우리의 입장은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정상회담의 문이 열려 있다는 일관된 것이었고, 이를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안달하지 않겠다는 원칙이었다. 여기에 북이 중대제안 형식으로 호응한 것이었다.
3. 임기 말 대선 정국을 앞두고 서둘러 성사시킨 정치적 의도가 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정치적 활용 가능성은 야당이 나서 철저히 감시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내세워 회담 불가를 주장할 게 아니라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야당이 책임 있는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적 의도는 실제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최대한 불식해야 할 일다. 그것을 이유로 정상회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에 불과하다. 국가의 중요한 외교안보 이슈를 해결하는 데서 임기 말이라는 시간적 변수가 회피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 임기 한 달 전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본연의 책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다음 정부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일부 주장은 지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다음 정부의 정책 성향까지 눈치 봐야 한다는 어불성설의 억지이다.
4. 북한이 과연 한국을 상대로 의미 있는 양보를 할까?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이후 결과가 한반도 정세에 미친 긍정적 효과를 망각한 것과 다름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남북관계가 개막되었다. 그 여파로 그해 말엔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교차 방문 등 북·미관계의 급진전까지 도출해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북한의 특성상 최고지도자가 정상회담을 결심해서 상대방 국가원수가 평양을 방문할 경우 회담이 결렬되거나 얼굴을 붉히고 싸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정상회담을 결심한 북한은 그 자체로 이번 회담에 일정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5.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에 엄청난 경제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퍼주기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정상회담을 흠집 내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1차 정상회담 당시 대북 송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리는 특검이라는 우여곡절마저 겪었다. 물론 당시 보내진 돈의 대부분이 북이 독점권을 보장한 현대의 대북 사업 계약금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금 과정의 문제로 인해 정상회담의 성과가 적잖이 상처받아야 했다. 대북송금 문제는 역으로 다시는 정상회담을 통해 북에 대가가 지불될 수 없다는 구조적 원칙을 세운 셈이 되었다.
따라서 이번 2차 정상회담 대가로 정부가 북에 자금을 줄 수 없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를 트집잡지 못하자 이제는 돈 대신 각종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제공할 것이라며 퍼주기 논란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대북 경협 확대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라 정상회담의 ‘결과’이다.
6. 경협 확대는 우리 측의 일방적 손해다?
정상회담이 당연히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고 이는 곧 상호 윈-윈 경협 확대로 이어진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경협 신동력 사업이나 포괄적인 경협 계획 등도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경협 확대 구상이다.
이는 북에 정상회담 대가로 돈을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발전에 따른 정상회담의 정상적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경협의 확대는 이제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을 이끌고 장기적으로 통일한국의 인프라를 준비하는 선투자를 의미하므로 그 자체가 우리에게 손해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 사업과 경협의 확대는 이제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을 이끌고 장기적으로 통일한국의 인프라를 준비하는 선투자를 의미하므로 그 자체가 우리에게 손해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7. 정상회담에서는 북핵문제만 논의해야 한다?
‘성과=북핵 폐기 합의’라는 일차방정식은 한반도 평화 증진과 공동번영 정도의 주문까지도 나가지 못하고 핵문제에 집착해있는 논리다. 북핵문제의 해결이 중요하다는 것은 노 대통령이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청와대 안보실에서 낸 브리핑 자료를 보더라도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데 노력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더 분명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이 북핵문제에 관한 회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핵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별도의 틀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어렵사리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핵 회담’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상회담의 성격과 방향을 근본부터 흔드는 파괴적인 일이다.


2000년 6월 13일 오전 8시 15분, 김대중 대통령은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인근 효자동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청와대를 나섰다.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한 사회단체와 경제단체 및 기업인 24명뿐만 아니라 7500만 남북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TV 앞에서 생중계를 지켜봤다.
특별기는 오전 9시 45분 북위 38도선을 넘어 북측 영공으로 들어갔다. 비행시간은 약 67분, 10시 25분 특별기가 순안공항 활주로에 착륙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김 대통령을 맞았다. ‘너무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야’ 평양에 도착한 김 대통령은 평양주민들의 가슴 뭉클한 동포사랑을 느끼며 김 국방위원장과 동승해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도착 후 접견실에서 27분 동안 상봉을 겸한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 김 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만큼 2박 3일 동안 대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남북정상 간 핫라인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던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공항까지 나온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화답했다.
‘동포 사랑’ 의기 투합… 시종 화기애애
첫날 김 국방위원장의 공항영접과 동승은 계획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회담 성공에 대해 더욱 큰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저녁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만찬은 인민문화궁전에서 2시간 40분 동안 진행됐다.
이튿날인 14일 오후 3시 김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2차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본격적인 2차 단독회담에 앞서 김 국방위원장이 “구라파 사람들이 나더러 왜 은둔생활을 하냐라고 묻는데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생활에서 해방됐다”고 말하자 일제히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단독회담은 오후 5시 20분 휴식에 들어갔다가 6시 5분 회담을 속개해 6시 50분에 끝났다. 당시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회담시간 3시간 50분 중 3시간 40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김 대통령은 회담 후 ‘내가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진실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회담 결과 양측 정상은 남북 간 화해와 통일,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이산가족 상봉, 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 등 4가지 사안에 합의했고 특히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약속받기도 했다.
두 정상이 목란관에서 만찬을 하는 도중 공동성명 초안이 마련됐고 막후 조율작업을 거친 후 밤 11시 30분 서명했다. 김 위원장은 샴페인 잔을 ‘원샷’으로 비워 회담성사에 대한 기쁨과 결과에 대한 만족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난 김 대통령은 기분을 묻는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에게 “전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협상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인데다 김 위원장의 초청만찬에서 포도주 서너 잔을 마셔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기분이 아주 좋다”고 밝혔다. 오찬 후 김 대통령은 평양 도착 때와 마찬가지로 순안공항까지 직접 나온 김 국방위원장과 세 차례나 포옹을 했다. 이윽고 김 대통령 내외가 트랩에 올라 전용기 입구에 섰을 때 김 위원장은 거수경례로 작별을 고했다.
신동섭 객원기자

7년 여 만의 개최 소식이라, 우선 반갑고 충격적이기까지 하였지만, 몇 개 지면들의 여론 등을 대강 훑어보면서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미리 밝히거니와, 그동안 나는 신문이라는 것을 멀리 해 왔다. 나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신문이라는 것은 옛날 8면 시절이 가장 알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세상 움직임은 TV 뉴스 보도로만 대강 만족했고, 다만 이번 같은 경우에는 가판으로 신문 세 개를 오랜만에 사서 찬찬히 공을 들여 읽어 보았다.
그렇게 이번 발표와 관련해서 기사며 논조며 대담이며 여론조사 결과며 전문가들의 의견개진이며 세 가지 신문을 읽어 가면서, 아, 이런가, 언론을 중심으로 한 요즘 세상이 대강 이런 수준인가. 과연 놀랍구나, 싶어지며 조금 묘한 느낌까지 덤으로 받았다. 나의 이 느낌 속에는, 현 노 대통령이라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랄까, 참으로 하루하루 힘들고 어렵겠구나, 함부로 입을 놀려서 화를 자초한 면도 더러 있는 것으로 풍문으로 들어서 나대로 알고는 있었지만 요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저렇구나, 과연 우리 세상이 활력에 차 있고 만판 민주주의 세상임에는 틀림없구나, 작금에 와서 대통령이란 자리가 저 정도로 별볼일이 없어졌음에도 다음 번 새 대통령이 되고 싶어 저렇게들 여럿이 나서서 야단법석이구나 하고 혼자서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앉아 있었다.
물론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발표 이후에도 그 세 가지 신문 하나 하나의 논조들이며 전문가 의견들이며, 대담 내용이며 죄다 틀린 말들은 아니었다. 심지어 정부 발표문의 용어까지 들추어내서 ‘우리 민족끼리’라거나 ‘조국통일’이라는 북의 선전구호 용어를 그대로 수용한 것을 들어, 대북 협상 참모들의 자질과 수준까지 문제 삼는 데는 나 자신도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지경인가 싶게 놀랍기만 하였다. 하다 못해 ‘김정일엔 꽃놀이패, 노 정부엔 마지막 도박판’이란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일언이 폐지하여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는 일단 두 손 들어 환영을 하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기며, 장소며 그 밖에도 험담 들을 소지는 많지만, 현 북한 권력층이 처해 있는 입장을 여러 국면으로 감안하더라도, 7년 여 만의 이번 2차 정상회담 성사에 그 정도의 양보는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인다.
다만, 나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성과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겠다. 1차 때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 그간, 7년 간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의 대북 인식 수준도 엄청나게 달라졌고 성숙해졌다는 점들을 우선 정확히 보아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 회담에서는 흔한 이벤트 성을 철저히 차단, ‘연방제’니, ‘연합제’니 하는 ‘통일’ 운운 하는 부황한 소리 같은 것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말며, 그리고 무슨 ‘조국’ ‘선언’ ‘평화선언’ 그따위 하나 마나 한 소리는 애당초에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하나 구체적인 실무 차원으로만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북한전문가들 조언에서는, 무조건적인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 통일방안 섣부른 합의, 국제공조 깨는 합의, 이 세 가지는 절대로 피해 달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나도 그 점은 대강 공감 한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핵심은 북한 핵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자칫 최악의 경우, 북한의 입장에서 저들 핵 문제를 우물쩍주물쩍 넘기면서, ‘민족 공조’니 ‘끼리끼리’니 운운하며 ‘북핵 폐기 압력’의 회피 수단으로 이번 2차 남북정상회담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점만은 시종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실제로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 하나는 “만약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을 2·13 합의 지연의 방패막이로 삼는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워싱턴과의 관계에 집중할 때는 남한을 무시했고, 남한과의 관계에 집중할 때는 미국을 무시했다”라고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고, 미국의 또 한 논자도 “남북관계 진전이 6자회담 과정과 잘 조화를 이뤄야 하며 반드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라고 하고 있었고, 또 한 논자도 “아직 북한 당국에 보상을 해줄 만한 비핵화 진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시기상조다. 이번 정상회담이 비핵화 진전에 대한 환상만을 제공한다면 북한의 핵 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그간의 다각적인 노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라고 하고 있었는데, 이번 2차 정상회담을 치르는 주역들은 이들 시선을 시종 잊지 말고 의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으로 아주 아주 파천황(破天荒) 적인 의외의 성과도 은근히 기대한다. 노 대통령 특유의 허심탄회하고 시원시원한 그리고 그 순발력 있는 대화 솜씨와 통 크기로 소문이 나 있는 김정일 위원장 간에 신명 나는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어느 순간 참으로 본인들마저도 깜짝 놀랄 만한 어떤 수준의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 일거에 ‘북핵 폐기’라는 목표 지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온 세계가 깜짝 놀라고, 김정일 위원장은 한 순간에 세계적인 영웅으로, 그리고 노 대통령은 영웅 탄생자 어머니로 부상 할 수도….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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