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다툼이 없는 세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어 왔고,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갖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진 자의 것을 힘으로 빼앗는 일이었다. 때문에 먼 옛날 약탈자들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한 이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무기를 드는 이들이 존재해 왔으니,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국군이 이 역할을 맡고 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
운동권에서 개사하여 부른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던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의 한 소절이다. 어린 시절, 늦은 밤 우연히 TV에서 들었던 노랫말은 오래도록 잊어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고,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선택의 갈림길에선 나의 이정표가 되어 결국 직업군인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고단하고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더라도 먼 훗날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물음에 당당히 답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더라도 스스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살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항상 반복되는 훈련과 업무들에 익숙해지면서부터 조금씩 느껴지는 갑갑함과 개인생활을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하는 피해의식들이 점점 숨을 조여 왔고, 처음 군인의 길을 걸으리라 결심하며 했던 다짐들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져 갔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날이 왔다.
3월 26일. 잠시 거칠어졌던 바다가 잔잔해져 다시 경비임무를 위해 닻을 올렸다.
임무숙달과 팀워크 유지를 위한 교육 및 전투배치 훈련 등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지나고 끝내지 못한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워드작업을 하던 그 순간, “콰광” 하는 굉음과 함께 주위가 온통 어둠에 덮였다.![]()
좁은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바닥이 꺼져 몇 층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몸이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을 받은 뒤 순간 정신을 잃었다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부장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비상조명등 불빛에 의존해 방을 벗어났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게다가 함정이 우현으로 90도 가까이 기울어져서 출입문이 머리 위에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대원들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행동했다.
지시에 따라 주변을 경계하고, 피복과 구급약품을 꺼내 오고, 자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동료가 있는지 함 내부를 탐색하고….
구조대가 도착해서 생존한 전원이 함을 이탈하는 순간까지 어느 한 사람도 군인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움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진상이 드러났지만 의혹제기는 끊이질 않았고,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온갖 추측과 비방이 난무했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의 가족들이 내뱉는 원망 섞인 말과 슬픔에 겨운 표정에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당시 상황을 직접 겪은 나조차도 그런 의혹과 음모론을 들으면서 혹할 정도니 주변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물음에는 더 이상 마음 상하지 않지만 되돌아보면 4월부터 6월까지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인양된 선체에서 유품들을 회수하고, 함정의 자산을 정리하고, 외부에 노출된 선체의 부식 등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다 보니 어느새 2010년이 지나갔고 복잡하던 머릿속도 다소 정리가 되었다.
다음 근무지에 대한 의향을 물어 왔을 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다시 함정근무를 하는 것, 그것도 되도록 동형 함정을 다시 타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당시의 기억들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한 선택이자 다짐이었다.
왜 그리 군인에 집착하느냐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선택이라 답한다면 우스운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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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위험을 각오하고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조하고,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늦은 밤에도 거리를 순찰한다.
그리고 군인은, 군인은 국민을 지킨다.
영하의 날씨에 손발이 부르터도, 언제 비상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부대에서 30분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도, 가족·친구·연인이 원할 때 함께 있어 주지 못해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 유지에 이바지함을 사명으로 한다.”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나 외우는 ‘국군의 사명’처럼 군인의 존재 이유는 국민(내 가족에서 친척, 이웃으로 확대된 공동체)을 지키는 숭고한 것이고 이제 내게는 먼저 간 전우들의 몫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안동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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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