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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민주화 큰 흐름 복지와 개방으로


 다시 6월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6월이 올해 더욱 새로운 것은 한국사회 대변혁의 분수령인 6월 민주항쟁이 스무 돌, 성년을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1987년 6월,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났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의 함성은 군사독재로부터 ‘6.29선언’이라는 항복문서를 받아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유신체제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 열사, 군사정권의 고문 끝에 사망한 박종철 열사, 최루탄에 의해 희생된 이한열 열사, 녹화사업이란 미명하에 의문사 당한 수많은 젊음들….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이었다.

 그리고 전국 곳곳의 거리를 가득 메웠던 이름모를 그들. 시위대에게 김밥과 물병을 나눠주던 시장 아주머니, 거리마다 경적을 울려대던 버스기사 아저씨, 거리를 가득 메운 넥타이 부대, 책을 놓고 돌을 든 대학생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6월의 사람들은 단순히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보겠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함몰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염원은 더 높고 깊은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세상’이었다. 그런 소망이 하나로 모여 6월의 하늘을 덮었다.

 우리는 어디까지 왔을까.
 절차적 민주주의는 제법 자리를 잡았지만 눈부신 경제성장에 가려졌던 양극화의 어두운 그늘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권위주의 체제가 물러나면서 노사문제, 지역주의, 남북문제 등 우리사회의 갈등은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전문가들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결국 복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평등사회를 만들겠다는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대안은 복지국가임이 자명해졌다.

 대외개방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성장이 함께 하지 않으면 복지는 실현불가능하며, 성장을 위해서는 대외개방이 필수적이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탄생한 궁극적 배경이기도 하다. 사회갈등을 풀어낼 해법을 찾는 것도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이해당사자간 조정을 통해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사회통합을 강조한다.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화세력은 무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복지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으며 양극화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복지의 재원인 경제성장도 착실하다. 남북평화도 전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6월’은 현재진행형이다.
 그해 6월 이후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또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살펴본다.

                                                                   김병훈·권태욱 기자






노사관계 재정립 등 실질적 평등 추구 

6월 항쟁과 사회·경제 민주화  6·29선언 이후 잠잠하던 우리 사회는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태풍에 휩싸이게 된다. 전국을 뒤흔든 이 태풍은 노동조합의 조직화를 통해 가부장적 노사관계를 민주화하는 시발점이 됐다.

시민운동에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 19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이 발족하고 토지공개념의 법제화, 기초생활보장법, 상가임대차 보호법 등 제도적 성과를 일구어냈다. 6월 항쟁이 이룬 정치적 민주화의 바람이 사회·경제의 민주화로 이어진 것이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복지국가는 민주화의 산물”이라고 잘라 말한다. “1인 1표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서 복지국가가 등장한다”는 설명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 기업, 학교, 단체 등 사적 영역에서 사회적 민주화가 진행된다. 더불어 형식적 차원의 권리를 넘어 실질적으로 이익과 혜택을 부여하는 복지민주주의로 진전이 일어난다. 결국 한국 정치의 민주화를 이끈 6월 항쟁이 복지국가의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말이다.

1972년 10월유신과 함께 대통령 간선제가 도입돼 박정희 대통령이 99.99%의 득표율로 선출된 후 15년 동안 유지된 ‘체육관 선거’가 사라지고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자 ‘1인 1표’의 힘이 살아났다. 억압적 정치체제에서 숨죽였던 서민, 노동자 등이 조직화를 통해 힘을 모으고 본격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복지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인식도 폭넓게 자리잡았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국민의 ‘권리’는 정치적 권리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실천적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와 함께 복지의 개념도 단순히 의식주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누구나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으로 올라섰다. 복지국가로의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4대보험 도입 등 사회보장 골격 갖추기

1987~2002년 복지정책의 변화 1987년 탄생한 6공화국에서 복지국가의 초보적 기틀이 마련됐다. 민주화운동에 따른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지배권력이 노동계급 등 여러 계층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 국민연금법, 의료보험법 확대개정, 장애인고용촉진법 등의 제도개선이 이루어져 복지수혜자의 범위가 넓어졌다.

문민정부는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복지구상’을 발표, 사회복지정책이 국가정책의 중요한 분야로 인정되는 계기가 됐지만 선언적 의미가 강했다. 고용보험, 농어촌연금이 도입됐으나 세계화와 경제성장우선정책에 밀려 6공화국보다 보건복지 예산이 적었다.

외환경제위기 속에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주요 사회복지제도를 정비, 확대했다. 급격히 증가한 빈곤층과 가정의 해체, 소득의 불평등과 사회적 균열에 따라 각계각층에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왔고 정부가 적극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가 사회복지정책 발전을 촉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 정부는 우선 사회보험을 확대해 고용 및 산재보험 대상을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의 근로자로 넓혔고 전국민연금시대를 열었다.
또 최저생계비 이하 가구에 대해 생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의료보험을 통합했으며 장애인복지법 개정, 산전후 휴가기간 확대, 근로기준법의 모성보호 및 남녀평등 적용범위 확대 등이 시행됐다.


복지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성장전략

참여정부와 ‘비전 2030’  참여정부는 2006년 8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래전략인 ‘비전 2030’을 내놓았다.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행하겠다는 방안이다.
특히 ‘비전 2030’은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변화가 두드러진다. 복지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으로 복지정책을 성장전략의 하나로 접근했다.

‘선성장 후복지’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잠재성장률 하락 등 한계를 드러내고 분배개선도 곤란하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 현재의 복지지출 수준을 유지하면 빈곤이 대물림되고, 노후가 불안해지며 출산기피와 일자리 감소 등으로 저성장과 분배악화가 심화되어 경제적 역동성과 사회의 안정기반이 훼손될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비전 2030’은 성장과 복지간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국가, 경쟁에서 탈락한 자에게도 재도전의 기회가 제공되는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국가, 성별·장애·학력 등으로 인한 차별이 없고 다양한 기회와 계층간 원활한 이동이 보장되는 국가를 지향한다.

5대 전략의 하나로 ‘사회복지 선진화’를 설정하고 복지투자를 확대해 2030년 우리 복지수준이 현재의 선진국 평균에 도달한다는 목표로 부문별 정책과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 노인
노인에게는 소득보장을 통해 자식들의 부양 없이도 안정된 노후생활을 보내는 방안이 필요하다. 2030년이 되면 65세 이상의 노인 2/3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게 돼 생활보장이 가능할 전망이다.  
또 2008년 노인수발보험을 도입하면서 치매·중풍 등을 앓고 있는 노인들이 공적 서비스 수발을 받게 된다. 2005년 수발 필요 노인 중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가 12%에 그쳤으나 점차 확대해 2030년에는 모든 수발 필요 노인이 서비스를 받게 된다. 고령화 추세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수발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   장애인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소득보장과 함께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고용 및 사회·문화적 활동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된다. 장애수당을 인상해 소득을 보장하고 의료, 특수교육, 이동권 등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다.
장애인 실고용률이 현재의 법정의무비율(2%)을 넘어 3%로 높아지고 취업장애인의 월평균소득도 일반근로자 대비 90%에 이르게 된다.
국공립 장애인 재활병원을 32개로 늘려 신속하고 편리하게 치료 및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 또 저상버스나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100% 확충하고 인터넷 이용률도 100%로 끌어올려 마음대로 이동하고 정보화 사회의 혜택을 누리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한다.










저소득층
최소한의 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는 게 목표다.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현재 시행하고 있으나 차상위층 등 넓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생계·주거 등 7개 급여를 수급자에게만 모두 지급하는 통합급여 방식을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으로 분리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게 된다.
주거 지원을 통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가 없도록 하고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1인당 담당인구수가 1000명으로 줄도록 인력을 확충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
영세자영업자가 자생력을 키우도록 교육 및 컨설팅을 지원하고 인프라를 조성한다. 퇴출된 자영업자에게는 훈련을 통해 재취업을 지원하거나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한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 여성·맞벌이부부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이미 2008년부터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필수 검진서비스를 무상 제공하는 ‘임신·출산 Total Care’를 시행키로 했다.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한 모든 아동에게 보육료 지원을 확대, 보육부담을 완화하고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한다. 육아서비스 수혜율이 74%로 높아지고 육아비용 부모부담률은 37%로 낮출 계획이다.
2012년에는 영아 현물급여제도를 도입하고 2017년에 만4세 유아에게 완전 무상 보육·교육을 제공한다.

















농어업인
노령화·시장개방에 따라 더욱 커지는 도·농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소득보장 정책을 시행하고 의료, 교육, 기초생활여건을 개선한다. 
전업 및 준전업 농어가는 규모화, 컨설팅, 고품질생산 기반확충 등 경쟁력 향상을 유도하고 중소·고령 농어가는 농외소득원을 확충하는 등 소득안전망을 구축한다. 쌀 전업농의 생산비중을 79%로 높이는 등 전문화를 달성하고  농어촌 상수도 보급률을 80%까지 끌어올린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 근로자
능력과 의사가 있으면 평생 배우며 일할 수 있는 고용지원체제를 구축한다. 고용률이 72%로 높아지고 평생학습 참여율도 50%로 올라간다. 실직하더라도 전문 직업교육을 받고 다시 취업할 수 있도록 실업자훈련 참여자 재취업률을 65%까지 높여 재기의 기회를 확대한다.
또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여가시간은 늘어나 근로자 삶의 질이 향상된다. 연간 실근로시간이 2033시간, 즉 주당 39시간 수준으로 단축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도 사라져 정규직 대비 임금수준이 85%로 올라 격차가 줄어든다.
특히 ‘고용 없는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서비스에 종사하는 사회적 일자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 고용 창출과 함께 늘어나는 복지서비스 수요를 충족 할 계획이다. 
2009년 도입하는 근로장려세제는 근로빈곤층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빈곤탈출을 지원하게 된다.










[SET_IMAGE]6,original,left[/SET_IMAGE] 학생·청소년
선진국 수준으로 교육환경을 개선하며 방과후 학교 활성화로 교육양극화 및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한다.
32명 수준인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수를 23명으로 낮추도록 시설과 교사 등 인력을 확충한다.
방과후 학교는 만연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다. 저소득층 아동 중심으로 대상을 적극 확대한다.
2030년 전체 아동·청소년의 3/4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요자 중심으로 바우처제도를 도입해 사교육비 부담 없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한다.

 





 




사회 갈등은 어느 때나 있었다. 달라지는 것은 갈수록 양상이 복잡하고, 장기화되고, 사회적 마찰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갈등해결은 경제성장이 유일한 목표이던 때에는 통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통제되고 억압받았다. 삶의 질, 문화 및 환경 등에 관한 사회적 욕구는 산업화 이후에나 해결할 과제라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된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억눌렸던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면서 정부 일방주의나 법 만능주의로는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환경변화가 일어났다.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더욱이 세계화·개방화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대내외 환경변화는 한두 집단의 양보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만들고 있다.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내외의 환경과 이해관계는 복잡다단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를 조정, 해결하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데 있다. 갈등해결에 필요한 자원과 역량이 정부, 민간, 사회공동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 그룹으로 분산돼 있고, 이들 간의 협력체제는 미흡하다. 그 결과 노사관계를 비롯해 주거환경, 난개발 등 다양한 부문에서 공공정책 추진과 이해당사자들의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변화하는 사회·경제 환경에 맞춰 갈등을 조정하는 다양한 협력체계와 대화시스템을 구상하고 만들어 왔다. 2004년 한국노총, 경총과 더불어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반부패투명사회 협약’을 체결했고, 2006년에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를 출범시켜 사회협약을 이끌어 냈다.

한국개발연구원 차문중 선임연구위원은 “갈등과제의 해결능력은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와 직결돼 있다”며 “자기 주장만 펴면서 상대방의 얘기를 듣지 않는 언쟁이 대립과 반목을 낳는 것처럼,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린 사회 갈등과제에 대해 양보와 타협이 없다면 해답이 구해질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11일 노·사·정 대표자들은 4개월여 집중적인 논의 끝에 노사관계 선진화 입법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도출했다. 이로써 2003년 참여정부 노사개혁 프로그램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 민주화 이후 대립과 투쟁으로 얼룩졌던 우리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이 20년 만에 대화와 타협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특히 대타협 추진과정에서 노·사·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정신을 존중하고 보편적인 국제노동기준과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을 함께 고려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이 결과 노사간 자율적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의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


● 20년 만의 결실 노·사·정 대타협
김성중 노동부 차관은 “노사정 대타협은 대결적 노사관계가 대화와 타협의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되는 역사적 계기가 됐다”며 “지난 3년 동안 노사와 정부가 인내와 끈기를 갖고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세계화의 가속화, IT 등 첨단산업의 발달과 중국 등 신흥 경제대국의 등장으로 경제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과 근로자들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노사관계는 대립을  벗어나 세계를 상대로 한 경쟁에서의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동반자 관계로 변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우리나라 항만 인력공급의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 110년 동안 유지돼온 부산항운노조의 인력 독점시대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조가 좌지우지하는 클로즈드숍제의 인력 공급형태가 사라지고 올 1월부터 부두운영회사가 노동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부두운영회사가 인력을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무엇보다 노·사·정 3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조승환 항만물류과장은 “항운노조 110여 년 역사에서 이번 협약 타결은 항만 인력공급 체제의 큰 틀을 바꾸는 일대 혁신”이라며 “안정적인 고용 보장과 부두운영회사의 자율성 확보로 우리 항만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경주원전센터는 주민투표방식을 통해, 새만금방조제와 천성산 터널공사는 절차를 중시하면서 사법부 판단을 통해 해결됐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도 대화와 타협의 원칙 아래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는 지역갈등 극복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19년 동안 표류해온 방폐장 부지 선정이란 국책사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주민 의사를 반영해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로 확정한 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역 간 또는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 조정의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







● 일방통행식 문제해결은 화합의 걸림돌
새만금 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 공사는 법적 절차를 통해 긴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공사라는 평가를 받은 새만금 사업은 착공 → 중단 → 재개 → 중단의 가시밭길을 15년 동안 걸어오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논란이 종식됐다. ‘도롱뇽 소송’과 지율 스님의 단식으로 중단됐던 천성산 터널공사도 대법원 결정(2006년 6월)으로 공사재개가 확정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압축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환경문제, 지역갈등, 사회양극화 등 ‘해묵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해결에 나섰다. 갈등의 해결방법을 ‘통치(統治)’가 아닌 ‘협치(協治)’에서 찾은 게 핵심이다.  국민여론을 거스르지 않고 한 발 앞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해소 방식은 과거와 차별화됐다. 문제를 초단시간에 해결하기보다 해결이 지연되더라도 갈등의 근원을 치유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가 이처럼 사회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이유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정해 경제재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다. 분열과 불신, 양극화 속에서 갈등 주체간 대타협이 한국경제를 건져낼 유일한 활로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은 “정부의 탈권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정부의 법적 권한과 리더십만으로는 복잡다기한 사회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며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정부와 국민 사이에 불신을 키우며 모든 정책적 판단을 사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방식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 이경상 기업정책팀장은 “과거 선진국 진입이 기대되었던 중남미의 일부 국가들이 선진국 문턱에서 탈락한 것은 극심한 사회적 갈등 때문이었다”며 “우리나라도 만성화되고 있는 사회갈등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빈발해지고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생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지방자치제가 정착하면서 정책결정과정에 국민의 참여의지가 높아지면서 갈등이 폭발적으로 증폭됐다”고 설명했다.
 

●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
정책결정에 대한 모든 권력을 중앙정부가 장악했다. 따라서 모든 정책 구상, 계획, 집행은 중앙정부가 독점했고 지방정부는 하부기관에 불과했다. 국민 역시 통치의 대상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갈등은 사회 안전을 저해하는 혼란으로 여겨졌고 표출된 갈등은 주로 공권력에 의해 좌절됐다. 국민을 철저히 배제하고 국가와 중앙정부가 모든 권력과 권한을 독점하는 ‘막강한 1강’구조의 사회였다.


● 87년 6월 항쟁~참여정부 출범이전
6월 항쟁은 정책결정과정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정책집행의 대상에 머물던 국민들이 그동안 수면 아래 내재됐던 자신들의 욕구를 쏟아내며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농민회, 교원노조, 연합회 등을 결성하고 기존의 권위주의적 통치관행에 맞섰다.
이와 함께 시민단체 구성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시민들이 탈계급적, 민주적 요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금기시돼 온 환경·여성·교육·인권 등 새로운 이슈를 내놓으며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정책결정의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려는 정부는 시민사회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고 정부정책과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 참여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참여정부 출범 후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는 무엇보다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정책결정의 ‘다강 구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억압했던 제도를 개선하고 시민참여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면서 민주화를 완성해 나갔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국민들은 아무리 명분이 있는 공공정책이나 사업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주장을 펴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또 민주화와 더불어 정보에 대한 접근과 공유가 쉬워지고 분권과 지방화로 중앙을 견제할 수 있는 역량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했다.

건양대 김윤태(사회학)교수는 “참여정부는 그동안 이해 당사자들과 함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협상하는 새로운 참여행정의 모델을 발전시켰다”며 “마찰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참여자들이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변했기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민주 또는 비민주의 문제에서 지금은 사회집단이나 계층간 이해관계의 대립, 새로운 정책의 도입이나 법제도의 개선으로 이익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의 저항 갈등구조가 다양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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