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1976년 화성 탐사 무인우주선 바이킹호는 화성의 토양을 채취해 동화실험, 이화실험, 기체교환실험 등 세 가지 실험을 했다. 광합성이나 호흡 등 물질대사를 하는 생물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모든 생명체는 물질대사를 한다는 성질을 이용한 실험이다.
물질대사는 외부로부터 어떤 물질을 받아들여 체내에서 생화학적 과정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작용을 뜻한다. 외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작용은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다. 즉 외부와 소통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사람이나 민족, 국가, 문명 등도 외부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자연도태, 적자생존 등 자연계의 법칙은 인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우리나라 역사도 선진적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민족문화를 발전시켜온 과정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대륙으로부터 철기문화를 받아들여 농업과 수공업이 융성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주변 지역과 중국을 연결하는 중계 무역이 발달했으며 영토를 확장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유이민의 역할이 컸다.
삼국시대에도 개방과 소통은 사활적인 문제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중국으로부터 앞선 정치제도와 유교, 불교 등 문화를 받아들여 고대국가로 발전했다. 한반도 동남쪽 변방에 위치한 신라는 발전이 가장 뒤졌으나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통일 후 신라의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금성(경주)에 17만 호가 넘는 집이 있고(삼국유사), 기와로 지붕을 덮고 숯으로 밥을 지어 연기가 나지 않으며 노래와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삼국사기)는 기록이 신라의 융성을 말해준다.
이런 풍요는 개방과 무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발해, 당, 일본뿐 아니라 이슬람 상인이 울산에까지 와서 교역을 했다. 장보고가 동아시아의 바다를 누비고 신라인들이 산둥 반도와 양쯔강 하류에 대거 거주한 것도 무역을 위해서였다.
고려시대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송나라를 비롯해 거란, 여진, 일본과 함께 아라비아 상인들도 와서 수은, 향료, 산호 등을 팔았다. 고려 청자가 중국에서 명성을 얻고 고려의 이름이 서방세계에 ‘코리아’로 알려지며 고려가요 ‘쌍화점(만두가게)’에 ‘회회아비’라는 무슬림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귀화인을 받아들인 것도 고려시대이다.
고대부터 이어지던 개방과 국제화의 흐름은 조선시대에 맥이 끊어지게 된다. 조선왕조는 중국에 사대하고 여진, 일본, 류큐 등과 이웃으로 사귀는 ‘사대교린’을 외교정책으로 확립하고 세계로 향한 창을 닫고 지냈다.

일본이 쇄국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나가사키를 국제무역항으로 개방하고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조성하여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과 무역을 계속한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이 창구를 통해 조총을 수입했고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여 재빠른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은 네덜란드 선원이었다. 1653년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일행 36명과 도착한다. 조선은 이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그냥 억류했고 13년 후 탈출한 하멜이 일본을 거쳐 귀국, 한국 사정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표착한 무역상을 마냥 붙잡아 두었으니 국제 정세에 깜깜했던 당시 사정을 알 만하다.
성리학을 절대화한 조선은 흥선 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으로 문호개방이 늦어져 근대화의 물결에서 뒤지게 되고 결국 나라를 잃는 비극을 겪게 된다.
1945년 해방된 한국은 1960년대부터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시작했다. 섬유, 신발 등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자본을 축적하고 철강, 조선, 기계, 전자, 비철금속, 석유 화학 등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켰다. 1990년대부터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이 수출 효자종목으로 등장해 지난해에는 수출이 3000억 달러를 돌파하기에 이른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의 변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의 성장은 수출주도의 정책 등 세계 경제와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다. 엄청난 속도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의 압축성장이 결국 개방과 무역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조선왕조 500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고조선이 철기문화를 받아 들여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성기는 개방과 무역의 성쇠에 따라 교차했다. 고려라는 이름도 무역을 통해 알려졌다.
조선왕조는 문을 닫고 조용히 살려했으나 세상은 그냥 두지 않았다.
고립을 통해 발전한 나라는 없다. 개방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임을 우리 역사는 분명히 보여준다.
김병훈 기자 (코리아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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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