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사회는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빈곤에서 탈피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등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리고 이제 풍요롭고 안정된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사회 도약을 앞둔 우리사회에 ‘사회적 자본 확충’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제기되었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협력을 촉진하는 일체의 사회적 자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협력을 촉진하는 제도, 규범, 관계망, 신뢰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기본조사 및 정책연구’ 최종 보고서는 우리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으며 개인적 관계망과 특수화된 신뢰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범위한 범위에서 사회적 거래 및 협력을 촉진하기에 적절치 않은 구조라는 분석이다.
정부도 지난해 ‘비전 2030’에서 성장동력 확충, 인적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능동적 세계화와 함께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5대 전략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를 높여야 한다. 우리사회의 사회적 신뢰와 관련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신뢰사회로 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김병훈·권태욱 기자

1979년까지 한국 식품회사들은 미국에서 우지(牛脂)를 수입해 식품을 만들고 있었다. 그 후 우지가 미국에서는 공업용으로 분류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우지를 정제하여 쓰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한 회사는 식품 제조 원칙상 공업용으로 분류된 원료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톤당 84달러의 원가부담을 감수하고 식물성 기름으로 교체했다.
시간이 흘러 1989년 공업용 우지를 식품 제조에 사용한다는 비난이 일면서 소위 ‘우지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10년 전 싼 공업용 우지를 포기한 이 회사는 파동에서 무사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로부터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신뢰를 얻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 다른 회사들은 참담한 추락을 감수해야 했다.
신뢰가 무엇보다 큰 자산이며 불신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불신의 악순환 뿌리뽑아야
새해 벽두부터 커다란 우려를 낳은 현대자동차의 노사갈등도 노사 불신, 노노 불신의 결과로 풀이된다. 해마다 대규모 노사분규를 반복하면서 노사 간에 서로 ‘못 믿겠다’만을 외치는 기업이 많다. 오랜 갈등을 겪으면서도 노사 간의 신뢰가 전혀 진전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월 7일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아 매년 1%의 경제성장률을 까먹었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연구원은 ‘법·질서 준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113개국의 평균 법·질서 지수와 2000년의 1인당 국민소득의 상관관계는 0.75로 매우 높고, 경제성장률 사이에서도 0.41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1인당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을 법·질서 지수와 대비한 회귀분석에서는 값이 1일 경우 완전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가정한다. 회귀분석을 적용한 결과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10년 동안 평균 법·질서 지수가 한 단위 높은 국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9%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선진국일수록 법·질서의 준수 정도가 높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차문중 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의 평균 법·질서수준을 유지했다면 1991~2000년 10년간 매년 약 1%p 내외의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이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부가 올해 237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이루고자 하는 경제성장률 목표가 4.5%이니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경제적 손해의 크기를 가늠할 만하다. 법과 질서만 지키면 국가경제가 저절로 살아난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신뢰와 불신은 경제에도 명암
그래서 ‘국민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등 사회적 신뢰의 수준이 선진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더욱이 우리사회의 신뢰수준이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 우려를 더했다.
지난해 12월 26일 발표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완전 불신을 0, 완전 신뢰를 10으로 할 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4.0이었다. 불신이 깊다는 의미다. 2001년 세계가치관조사의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신뢰의 국제비교’ 항목을 보면 스웨덴 6.63, 일본 4.31, 미국 3.63에 비해 한국이 2.73이었다. 시간적 거리, 조사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사회신뢰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공적 기관과 민간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국회, 정당, 정부, 지방자치단체, 검찰, 법원, 경찰, 노동조합, 대기업, 군대, 언론 등 대부분이 낮은 점수를 면치 못했다.
또 지난 5일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는 우리 사회 지도층에 대한 신뢰도가 15.8%로 지난해(17.1%)보다 더 떨어졌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가기관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은 불공정성에 대한 인식보다 더 우세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일선행정기관의 민원서비스가 공정하다는 반응은 70%, 불공정하다는 반응이 14%로 일반 시민들이 경험하는 일선행정이 불편부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압도적이며 개선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한국의 사회신뢰 왜 낮은가? 불신은 전쟁,급격한 현대화의 부산물 우리사회의 사회신뢰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역사, 사회, 문화적 해석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눈 돌릴 새 없이 급격한 변화를 겪은 현대화 과정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전쟁, 급속한 도시화,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한 현대화, 시민사회의 위축이 초래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해방 후 우리 현대사는 전쟁과 함께 시작됐다. 한국전쟁 중에 전국의 모든 지역이 수차례에 걸쳐 점령, 수복의 과정을 반복했고 이웃과 친족을 가리지 않는 살육과 복수극이 벌어졌다. 불신은 차라리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전쟁이 남긴 상호불신의 앙금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후 전개된 급속한 도시화는 전통적 촌락 공동체를 해체시켰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는 잦은 거주지 변경, 개발 및 재개발 과정에서 지역공동체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


“어느기업이든 노사갈등을 벌이는 이유는 노조와 경영진 사이에 신뢰관계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며 노사관계의 신뢰수준을 높여 서로가 승리하는 ‘윈-윈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노조창립 이래 45년간 무분규 기록을 세운 대한통운 김학수 노조위원장은 ‘노사간 굳건한 신뢰’를 무분규 달성 배경으로 꼽았다. 지난해 9월 노동부가 주관하는 노사문화 우수기업에 4번 연속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근로조건과 복지 향상을 회사에 매년 요구하고 협상해야 하는 노조가 단 한건의 분규 없이 노사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김 위원장은 “노사문제도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며 “서로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풀지 못할 일이 없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최근 사회적 갈등이 늘어난 것도 개인·기업·정부 등이 서로의 믿음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뢰나 신용이 늘어나면 사회적 비용과 정책 추진을 위한 예산은 물론 갈등기간으로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치안 유지비용도 낮아진다”며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같은 노사신뢰 구축으로 대한통운은 2001년 1조 원이던 매출이 2005년 1조2000억 원까지 늘었다. 경상이익도 같은 기간 290억 원에서 571억 원까지 증가하고 부채비율은 79%에서 59.6%로 낮아지는 등 경영실적이 크게 나아졌다.
고질적 갈등문화 극복이 성공열쇠
도요타가 일본을 넘어 26개국에 46개 자회사를 거느린 세계적 규모의 공장으로 성장하는 비결은 밖으로는 ‘글로벌 경영에 따른 수익선 다변화’, 안으로는 ‘노사간 상호신뢰·책임’이란 독특한 사내 문화가 비결로 꼽힌다.
1950년 경영악화로 위기에 몰린 도요타 경영진은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노조는 50일간의 파업으로 맞섰다. 노사대립의 결과물은 전체 근로자의 25% 감원, 파업이 노사 모두의 공멸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조는 이후 2005년까지 55년간 단 한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2003년 임금교섭 당시 사측이 사상 최대의 경상이익을 얻어 임금인상을 고려했지만 도요타 노조는 “국제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이를 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55년 무파업, 4년째 임금동결, 50년 이상 흑자의 신화는 무엇보다 ‘노사간의 신뢰’라 할 수 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김태종 교수는 “21세기는 신뢰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시대”라며 “신뢰가 축적된 사회는 성장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2류 국가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뢰회복이 선진사회 도약의 주춧돌
올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 섰다. 경제분야에서는 세계 10위권에 올라섰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은 세계 40위권에 머물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재정지수 비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38위로 나타났다. 특히 노사관계, 사회보장 등 사회분야에서는 전반적으로 중하위권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아직 ‘삶의 질이 높은 선진국’ 대열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 구석구석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의 국민의식과 고질적 갈등문화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서로 불신하는 풍토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대립과 불신이 판치는 불건전한 풍토에서는 우리가 열망하는 선진경제는 물론 선진국가로의 진입도 불가능하다.
불신사회에서는 각종 속임수, 뇌물과 협박 때문에 정상적인 비용과 방법으로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정상적인 비용을 훨씬 웃도는 과외의 비용은 결국 그 사회가 감당할 수밖에 없고 사회의 효율성은 끝없이 하락하고 사회는 결국 붕괴된다. 불신은 스스로 골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연세대학교 한준(사회학)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규범은 단연 정직과 신뢰”라며 “정직과 신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희망이 없다”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균관대 양정호(교육학과) 교수는 “경제적으로 우리나라가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서 선진국이 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제시스템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제3의 사회적 자본 키운다” 기획예산처 전략기획팀 조규홍 과장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사회가 발전하려면 경제성장 못지않게 사회 제도와 구성원들의 의식 및 태도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소득 수준이 높아져도 문화와 구성원들의 태도 및 사고 양식이 전근대적 수준에 머무르면 좋은 사회라 할 수 없습니다.” |

“나 얼만큼 믿어?”
한국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인 한석규에게 부인인 이미연이 묻는다.
한석규: 51%…. 내가 누군가를 51%를 믿는다는 건 다 믿는다는 뜻이야.
한석규의 직업이 건달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지만, 자기 부인만큼은 100% 믿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 사귀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구성원간의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사회의 신뢰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고신뢰 사회로 가기 위해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체감을 형성 시키는 상호신뢰는 대화와 참여의식에서 출발한다. 개인간 또는 조직상호 간 불신은 협력, 타협, 양보 등을 파괴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양식으로 결국 공동체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자발적 시민사회 육성 필요
그동안 도덕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신뢰’는 경제성장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는 사회적 신뢰여부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특히 상대를 존중하는 관용의 문화가 뿌리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고 서로의 차이를 극복해 갈등과 대립을 뛰어넘어 합의의 수준을 높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한준(사회학과) 교수는 “내가 상대방을 불신하면 상대방도 역시 나를 불신한다”며 불신을 벗어나 신뢰로 가려면 내가 상대방에 대해 믿는(trustful) 마음을 갖는 동시에 내가 상대방에게 믿을 만하게(trustworthy)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인간의 상호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 동질적인 사회 관계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학연, 혈연, 지연 중심의 전통적인 형태의 관계망이 활성화돼 있는 반면 공공성이 높은 사회·시민단체 가입은 저조하기만 하다. 사적 연결망이 공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박종민(사회학과) 교수는 “개방된 시민사회에서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적 자본, 특히 사회 신뢰를 확충하는 주요한 통로에 해당된다”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속에서 사람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집단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축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치주의 기본 충실해야 사회적 신뢰 구축
우리보다 사회적 자본이 잘 발달된 선진국들은 이 같은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활성화됐다.
미국 공동모금회인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일본과 독일도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사회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성균관대 양정호(교육학과) 교수는 “시민단체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부 유럽에 확산돼 있는 퍼센트법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퍼센트법은 소득세 납부액의 대략 1%내에서 납세자가 선택한 시민단체에 지원해 주는 제도.
이와 함께 개인 간 상호신뢰만큼 공적신뢰 회복도 중요하다. 원칙이 반칙에 의해 좌절되고 상식이 특권에 의해 훼손되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피어나지 않는다. 원칙이 바로 서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박 교수는 이를 위해 “법·제도의 권위 회복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들의 정부정책 참여가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 중 하나”라며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법적 대표성이 없는 시민 배심원이나 공론조사 제도의 경우 정책결정으로 곧장 연결될 수는 없지만 일반시민의 참여과정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시켜 사회적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한 교수는 “정부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과 경쟁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기업은 기업윤리에 충실하고 투명한 경영활동을 추구해야 한다. 선진사회의 숲은 신뢰의 토양위에서만 비로소 무성하게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국민들이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여론지도층이 법 규범의 권위 확립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는 “대립과 갈등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계층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신뢰집단이 필요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회집단이 없다면 대립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진국으로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불신을 뛰어 넘지 않고서는 피해갈 길이 없다. 기계는 사 올 수 있고 기술은 빌려 올 수 있다. 심지어 사람도 빌려 쓸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빌려 쓸 수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신뢰는 세계화 시대 우리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궁극적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경제번영의 원천으로써 사회적 신뢰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경험하게 된 것도, 현재 많은 기업들이 겪고 있는 경영 위기도 결국은 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기업이나 국가가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므로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 가고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투입 사건 때 존슨앤존슨이 보여주었던 신속하고도 솔직한 대응은 대외적인 신뢰가 기업의 생존에 직결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존슨앤존슨은 타이레놀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위기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언론을 통해 적극 알리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중에 이미 유통된 모든 타이레놀을 즉각 회수조치했다. 제품 제조상 결백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품 포장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결과 타이레놀 제품은 물론이고 존슨앤존슨은 고객들로부터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받게 됐다.
반면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사례는 위기를 회피하고자 사실을 숨기기만 한다면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쓰비시는 자사의 일부 차종에 결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콜이나 클레임에 대한 정보를 감추는 데 급급했다.
결국 정보의 은폐사실이 발각됨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회수 및 수리비용은 물론 불신에 따른 판매부진까지 겹치면서 2000년도에 36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했고, 주가도 40%나 폭락했다. 기업이미지도 추락했고 고객의 신뢰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져 큰 타격을 입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상완 컨설팅본부장은 “소비자나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고 하루아침에 도산한 기업의 사례는 너무 많다. 신뢰는 형성하고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일단 만들어지기만 하면 기업 경쟁력의 바탕이 된다”고 강조했다.
사회협약 체결 경제성장 업그레이드
이와 함께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머리를 맞대 논의한 뒤 합의한 사항을 이행해 경제회복, 노사협력, 고용안정, 외자유치를 달성한 국가들도 적지 않다. 비전2030 민간작업단이 작성한 ‘선진국 진입 성공과 실패 사례’ 자료에 따르면 공공·정치·경제·시민사회 간의 사회적 신뢰를 형성해 사회 전반의 선진화와 국가경쟁력을 높인 국가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유지하면서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해 선진국 도약에 성공한 나라들은 강력한 리더십, 정책의 일관성, 노사정 타협을 통해 사회·경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웨덴은 1930년대 과격한 노동쟁의로 혼란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사민당 정부의 중재로 1938년 노사가 함께 ‘잘츠요바덴 협약’을 만들어냈다. 이 협약에서 노조는 파업 자제와 국유화 주장을 포기하고 경제계는 일자리 보장과 복지재원 협력 등을 약속하게 된다. 이를 통해 스웨덴의 재벌가인 발렌베리 가문은 특혜적 기업지배를 보장받는 대신 일자리 창출과 기술투자 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타협과 사회협약이라는 ‘잘츠요바덴 협약’의 정신은 스웨덴의 노사관계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아시아 4마리 용에 비견되는 ‘켈틱 호랑이(Celtic Tiger)’라는 별칭을 얻은 아일랜드는 지난 1996년 2만 달러를 돌파해 선진국 진입에 성공했다.
1980년대까지 정치적 불안, 경기침체, IMF관리체제로 국가 위기상황을 맞았으나 1987년 노·사·정·농업조직으로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를 구성해 ‘국가재건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경제회생의 밑바탕을 만들었다.
아일랜드는 그 뒤 3년마다 총 6차례의 후속협약을 체결하며 노사안정과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룩했다. 1986년 0.4%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던 경제를 2000년대까지 연평균 8%까지 끌어올렸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반면 ‘후진적인 정치체제, 공공부문의 비중 과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소득의 양극화’로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국가들도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1만 달러를 돌파하고도 2만 달러 진입에 실패한 나라들은 대부분 정치체제가 경제발전을 못따라 갔거나 지역 격차 확대, 장기적 노사분규, 관료주의 팽배 등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998년 국민소득 8280달러 달성 이후 소득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남미 최고의 선진국으로 세계 5대 부국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극심한 정치·사회적 불안 속에 정치지도자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경제정책을 펼치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정후 연구위원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갈등을 생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의 수립이 필수적”이라며 “범국민적 합의를 통한 국력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동안 사이버 공간의 사회적 폐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한 복제와 익명성
에 따른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지적재산권 도용 등 갖가지 말썽이 일었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찬반도 시끄러웠다. 이처럼 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온 사이버 공간이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관계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관심을 끈다. KDI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공동체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법원, 검찰, 경찰과 같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사이버 공동체 활동이 사회적 단절을 줄이고 사회신뢰의 증가로 연결된다고 해석했다.
정치의식
가입자들의 25.3%가 ‘정치가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고 응답해 비가입자들의 20.7% 보다 높았다. 정치참여 경험도 많았다. 가입자들은 정치단체나 후보자 사이트 방문 등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가 높게 나타났다.
또 비가입자들 보다 높은 진보 성향을 보였고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은 더 높은 진보 성향을 나타냈다.
사회의식
참여자들의 사회의식은 포용성과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성향이 짙어 공동체 활동이 신뢰성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가입자들은 비가입자들보다 공공이익을 우선하는 시민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치관이 더 포용적이고 자유지향적인 경향을 보였다.
공적·사적신뢰
가입자들은 일반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4.67점으로 비가입자들의 평균인 4.91점보다 낮았다. 도시 지역 거주자들의 가입률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가입자들이 원래 비가입자보다 일반적인 신뢰가 낮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가입자 중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일반적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이들은 동호회, 다른 지역 사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
가입자들은 비가입자들에 비해 시민단체를 제외한 모든 기관에 대해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입자 중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법원, 검찰, 경찰과 같은 중요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았다.
특히 이러한 경향이 40대 이후 사이버 공동체 참여자들에게서 더욱 높게 발견된다. 이는 향후 사이버 공동체가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신뢰를 학습하게 하는 중요한 공론의 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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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