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2009년 8월 초 한글이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族)의 표기 문자로 채택됐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말은 있지만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없어 고유어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던 인구 6만여 명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은 ‘고마운 손님’이었다. 당시 보도를 접한 정덕영(49) 씨도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어떻게든 저곳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불과 석 달 만에 그에게도 고마운 손님이 될 기회가 왔다.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市)에서 한글과 한국어 보급사업을 펴고 있는 훈민정음학회는 정 씨를 2010년 1월부터 1년여 간 현지에서 근무할 한국어 교사로 선발했다.
다른 쟁쟁한 지원자 26명을 제치고 파견 교사로 선발된 정 씨는 “내 영혼이 원하는 일생의 꿈을 펼치게 됐다”며 소감을 털어놨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동시에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고, 가르치면서도 배우는 보람된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됐다”면서 “안도현 시인의 시(詩) ‘너에게 묻는다’에서 말하는 ‘뜨거운 사람’이 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2006년 한국어 실력 테스트 프로그램인 KBS 1TV의 ‘우리말 겨루기’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어 달인’이기도 한 그는 현재 경기도 안성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근무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2006년까지 정 씨는 한국어 교사와는 무관한 길을 걸어왔다. 1986년부터 꼬박 20년간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주로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학생 때부터 가슴속에 품어왔던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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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씨는 서울 신림중학교 2회 동창생인 고(故) 기형도 시인과 문필을 겨루곤 했다고 회상했다. 비록 다른 길을 걷고 있었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문학청년’이지 않은 적이 없었던 정 씨는 지금도 손에 닿기 쉬운 곳에는 늘 책을 놓고 읽으며 신문도 3종이나 구독하고 있다. 많이 읽다 보니 많이 쓰고 싶어졌고, 많이 쓰려다 보니 정확하게 쓸 필요성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국어’에 관한 지식이 쌓여갔다.
그의 꿈은 2006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영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승을 차지하며 8백80만원의 상금까지 획득했다. 이듬해 서강대에서 1백20시간 과정의 한국어교원양성 과정을 이수하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을 취득해 한국어 방문교사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2009년 8월 ‘찌아찌아족 한글 도입’ 기사를 본 시점으로부터 석 달여 뒤 한 일간지에 실린 ‘현지에 파견될 한국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본 정 씨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갔다. 지원서를 꼼꼼히 준비한 그는 최종 관문인 면접을 치르던 2009년 10월 31일, 그동안 한국어 교사를 향해 뛰어온 노력을 면접관들에게 보여준 끝에 최종 파견자로 선발됐다.
“최소 1년 이상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지만, 남편과 아버지의 뒤늦은 꿈을 이해해줘서 참 고마워요. 이런 가족들의 격려에 힘입어 찌아찌아족에게 열심히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고 오겠습니다.”
글·정환보(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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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