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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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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한 봉지 값도 되지 않는 가격 5백원에 무게는 3.6킬로그램.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달동네에서 겨울을 나려면 꼭 필요한 것. 바로 연탄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연탄을 땠다. 당시 연탄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땔감이었고, 음식을 만드는 연료로도 쓰였다. 또 다 타고 버려진 연탄재는 눈 쌓인 비탈길 위에서 아이들이 미끄러질세라 푹신한 양탄자가 돼 주었다.

추위가 한풀 꺾인 12월 7일 오후, 연탄배달 봉사 현장인 서울 중계본동으로 달려가는 내내 그런 추억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느새 도착한 봉사 현장 인근의 ‘연탄은행’ 앞에는 청와대 어린이기자단을 비롯해 2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있었다. 연탄은행은 2002년부터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무료로 지원 배달해온 사회복지법인으로, 많은 기업과 개인이 이곳을 통해 ‘연탄 나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봉사활동은 연탄은행 대표인 허기복 목사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 허 목사는 먼저 청와대 어린이기자단 소속 초등학생들을 연탄이 쌓여 있는 창구 앞에 일렬로 세운 뒤 손수레에 차곡차곡 실어 나르도록 지시했다. 아이들은 얼굴에 시커먼 연탄가루를 묻혀가며 한 장 한 장 조심해서 옮겨 담았다. 연탄이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한 아이가 “이걸 언제 다 옮기지?”하고 한숨을 쉬자 허 목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허허 웃었다.

이동할 때는 아이들이 앞에서 손수레를 끌고 성인 자원봉사자들이 뒤에서 밀었다. 언덕길이 계속 이어지자 자원봉사자들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구슬땀이 맺혔지만 힘들다고 투덜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얼굴은 온통 땀과 연탄가루로 뒤범벅됐어도 다들 활기가 넘쳤다.

자원봉사자들은 한 골목 앞에서 손수레를 세우고 연탄을 배달할 집 앞까지 일렬로 길게 늘어섰다. 배달은 한 학생이 연탄을 손수레에서 집어 들고 옆 사람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야말로 단순노동이지만 팀워크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또 연탄 한 장을 나르는 데도 요령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힘겨워하던 김하은(경주 내남초교 6학년) 양은 “연탄을 위아래로 받쳐 드니 힘들지 않네요!” 하며 굉장한 비법이라도 터득한 듯 뿌듯해했다.

아이들은 손수레 연탄 배달을 마친 후 지게로 연탄을 날랐다. 이날 최연소 자원봉사자였던 유하랑(경기 남양주 금남초교 4학년) 군은 “연탄배달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며 “친구 중에 연탄을 때는 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네에도 배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성인 자원봉사자들은 손수레를 끌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중에는 수능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과 해외유학생 커플도 있었다. 싱가포르 SIM대학에서 매니지먼트학을 전공하고 있는 홍민호(25) 씨는 “외국에서 지내다 보니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커졌다”며 “방학기간에 한국에서 새롭고 뜻깊은 경험을 쌓고 싶어서 연탄은행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서울 중앙여고 3학년 이재람 양은 “오래전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수능시험이 끝나 이제야 뜻을 이뤘다”며 기뻐했다. 서울 청원고 3학년 최유림, 박재성 군은 “앞으로도 이런 봉사를 많이 하고 싶다.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마을 주민인 오영숙(77) 할머니가 미리 준비한 따끈한 생강차는 자원봉사자들의 추위와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할머니는 “연탄을 가져다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연탄불에 생강차를 끓여 놓았다”고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생강차를 따라주던 할머니의 표정도, 무게 3.6킬로그램의 작은 연탄을 통해 사랑과 온정을 전하던 자원봉사자들의 눈빛도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연탄은행 Tel 1577-9044 www.babsang.or.kr

글·김지영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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