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낡은 책장이 텅 비어간다.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연세대 물리학과 박홍이(65) 교수는 벌써 1년 전부터 연구실에 ‘아름다운 가게 기증의 집’이라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제자들에게 “필요한 책은 마음껏 가져가라”고 일렀다. 퇴직 후 집으로 갖고 갈 50여 권의 물리학 책 보따리를 빼고는 다 나눠주기로 했다. 지난 11월 말 MBC 사회봉사대상 본상과 함께 받은 상금 7백만원도 후원단체에 나눠주고 남은 10분의 1 토막만 부인에게 갖다 줬다.
나눔과 봉사는 박 교수에게 새삼스런 이벤트가 아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평생을 살아온 습관이다.
“초등학교 때 등교하기 전에 마당을 쓸면 아버지가 용돈을 주셨어요. 한 달치 용돈을 모으면 그중 10분의 1은 꼭 고아원에 갖다 주라고 하셨죠. 수학여행 못 가는 같은 반 친구의 경비를 아버지가 대신 내주시고, 겨울 코트를 입고 나가면 벗어주고 오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내 옆의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나도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이 귀한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아버지만큼은 못했다고 하지만, 박 교수가 실천한 나눔과 봉사는 많다. 강원도 홍천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동네 산골 아이들을 가르쳤다.
홀몸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돼주고 목욕을 시켜줬는가 하면, 소년소녀가장의 아빠 역을 맡았다. 행려병자를 염해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 달 동안 불교식으로 염하는 방법까지 배웠다. 최근 가양종합사회복지관에서 노인들의 영정 사진을 찍을 사람이 없다기에 사진도 배울 참이다.
박 교수는 주변에 봉사 정신을 퍼뜨리는 데도 열심이다. 한 주일에 한 시간씩 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자는 뜻의 ‘TOM(Three Ones Movement)’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연세대 교직원들 30여 명을 참여시켰다. 홀몸노인 간병, 소년소녀가장 보살피기, 무료 과외교습 등 몸소 뛸 수 있는 봉사를 하는 동아리다.
‘연세자원봉사단’의 단장인 그는 사회봉사 과목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봉사를 몸소 가르쳤다. 박 교수가 개설한 사회봉사 과목은 이론보다 실습이 주다. 한 학기에 40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학점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핵환자 요양소에서 환자를 돌보고, 요양원 텃밭에서 봄에 배추 모종을 심어 가을에 수확해 김장을 같이 담그는 일까지 박 교수가 솔선수범했다.
‘제일 힘든 일은 내가 해야 다른 사람들이 따라온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4년 전 췌장암이 발병한 뒤로는 몸으로 뛰는 봉사활동을 많이 줄인 편이다. 기적처럼 병이 나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봉사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가양복지관에서 밥 당번을 한다. 노인들의 어깨와 팔다리를 주물러드리면 “교수 같지가 않아.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다”는 칭찬을 듣는다.
박 교수는 소아암·소아백혈병 환자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인 한빛사랑후원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2004년 출범한 후원회는 같은 해 연세대 큰길 맞은편 철길 근처에 ‘한빛사랑나눔터’를 마련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아담한 연립주택으로, 어느 독지가의 후원으로 소아암·소아백혈병 환자를 위해 마련한 쉼터다. 특히 어려운 형편에 지방에서 올라와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쉼터를 병원 가까이에 둔 것이다.
쉼터에는 연세대에서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함께 놀아주고 캠프도 간다. 치유가 어려운 아이를 위한 호스피스 방도 마련돼 있다. 퇴직 후에도 연세자원봉사단의 단장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그는 요즘은 아코디언을 배운다. ‘희망의 속삭임’이라는 음악학교를 열기 위해서다.
“희망의 ‘ㅎ’자도 볼 수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음악 멘터를 해주는 학교예요. 친구들에게 하모니카나 색소폰이나 뭐라도 악기를 배워두라고 했습니다. 음악 선생들이 모이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희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을 떠난 뒤 천국 문 앞에서 ‘뭐 하다 왔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꿈을 심다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거란다. 지난 5월 박 교수가 펴낸 에세이집 <5분간의 生만 허락된다면-마지막 쓰는 편지>에도 ‘나눌수록 행복해진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시오. 인생은 건너야 할 강이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너야 할 강… 삶은 부메랑과 같아서 좋은 것을 힘든 이에게 나누어주면 언젠가 같은 것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한빛사랑후원회 Tel 02-3142-0675


‘73세 이oo씨는 10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 치료를 받아왔으며 만성신부전으로 전신부종, 구토로 식사를 제대로 못합니다. 혈액투석을 위한 검사와 인공 혈관 삽입술을 받아야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인숙에서 월세 30만원에 살고 있는데, 월 26만원 받는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활하기가 빠듯해 월세가 밀린 상태입니다.’
구복서(52) 씨가 지난해 8월 ‘수호천사 지원 대상자 신청서’에 적은 내용이다. 이 밖에도 구 씨는 A4 용지 2쪽 분량의 신청서에 이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 가족력, 경제력, 시급한 지원 내용 등을 빼곡히 적었다. ‘수호천사’로 채택되면 EBS ‘효도우미’ 방송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방영이 되면 시청자들이 ARS 후원금을 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덕분에 후원금 5백만원을 받아 수술을 한 이 할아버지는 구 씨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고마워한다.
서울 영등포보건소에서 방문간호사로 근무하는 구 씨가 지난해 4월부터 EBS, 평화방송, 불교방송 등에 사연을 보내 지금까지 도움을 받은 사람들만 1백18명. 의료비와 생계비로 지원받게 해준 후원금만 해도 1억1천9백42만3천원에 이른다. 방송작가도 아닌 구 씨가 영등포구 내 불우이웃의 사연을 적어 보낸 뒤 방송 채택률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높다. 돕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부터 맡은 제 업무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건강과 생활을 돌봐드리는 일이에요. 영등포구 내 5천4백여 가구를 돌아가며 혈압도 재고 식사를 제대로 하시는지 방문해서 점검했는데,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서 손을 쓸 수 없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을 도와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사연을 보내기 시작했지요.”
방송 말고도 도움을 주는 사회단체나 기업, 종교단체에도 문을 두드렸다. 덕분에 백내장 수술, 인공관절 수술, 전립샘 수술, 폐질환 수술, 심장질환 수술 등 의료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이 1천명에 가깝다. 구 씨가 작성한 연계 처리기관 명단에는 도시락, 간병인, 호스피스, 도배, 보청기, 차량 지원, 목욕, 쪽방, 휠체어 등 여러 분야에서 도움을 줄 만한 사람과 기관의 연락처가 정리돼 있다. 손만 뻗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봉사 서비스망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구 씨는 영등포동 쪽방촌에 주소 스티커를 다는 아이디어도 냈다. 벌집처럼 주소를 찾기 힘든 3백72개 쪽방에 일일이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화재나 응급상황 발생 시 쉽게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요즘은 매주 한 번 쪽방촌을 찾아 노숙자 수백 명에게 저녁식사를 나누어주는 일도 한다. 이런 공로로 지난 11월 행정안전부에서 주는 민원봉사대상 본상을 받은 구 씨는 “일찍 돌아가신 내 친정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노인분들을 돌봤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이상녀(59) 씨는 얼마 전 충북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 다녀왔다. 선고리는 하루에 버스가 한두 번 다니는 오지마을로, 홀몸노인 열 분이 이 씨를 기다린다. 이 씨가 속한 한울타리 봉사단은 50, 60대 여성 8명이 한 조가 돼 봉사를 한다. 벌써 6년째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
“두 사람이 목욕차 안에서 노인분을 목욕시켜요. 다른 사람들은 빨래하고 청소하고 냉장고 정리까지 다 하면 하루가 걸려요. 팔다리도 주물러드리고 손톱 발톱도 깎아드리면서 말벗을 해드리니 헤어질 때 많이 아쉬워하세요. 저희들도 돌아오는 길엔 친정엄마 놔두고 오는 것처럼 마음이 짠합니다.”
이 씨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앉은뱅이로 살아가는 할머니의 집 안 살림을 내 집 일처럼 돌봐주는가 하면, 급식비가 없어 굶는 소년소녀가장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졸업할 때까지 익명으로 통장에 급식비를 보내줬다. 태풍이 불어 만신창이가 된 집을 수리해주고, 폭설이 내린 곳에 찾아가 눈을 치운다. 2년 전 충남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때도 일손을 보탰다. 자원봉사센터에서 지원이 필요한데 갈 수 있느냐고 물으면 무조건 간다고 대답한다. ‘도와드리면 힘이 될 걸 아니까 집에 있는 것보다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성격이 활달하고 적극적인 이 씨는 지역에서 봉사와 관련된 감투도 많이 썼다. 1985년부터 새마을통회장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새마을부녀회연합회장을 거쳐 지금은 제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의 ‘남천동현동 사랑나누미’ 회장과 ‘한울타리봉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자원봉사 마일리지 제도 시행 이래 이 씨가 보유한 자원봉사 마일리지는 1천1백18시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2월 4일 행정안전부 주최로 전주에서 열린 ‘2009 전국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자원봉사자 포상 중 가장 큰 상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남편과 딸, 사위, 한울타리 봉사단원들이 와서 축하를 해줬다. 천성이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지만, 이 씨가 봉사에 더욱 발 벗고 나선 계기는 광부로 일하던 남편이 사고를 당한 후부터다. 16년 전 갱도가 무너지면서 탄더미에 묻힌 남편은 다행히 구조됐지만 하반신이 마비됐다.
“5년간 병원에 있으면서 주변 분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사고 보상금과 합의금을 타내고, 아이들 학비를 보조받는 등 제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일이었죠. 큰애가 중학교 1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병원을 집 삼아 살 때 이웃에서 아이들도 보살펴줬고요. 그런 마음이 고마워서 제가 뭐 도울 일이 없나 찾아봤습니다.
남편의 옆 침대에 누워 계시던 트럭 운전기사는 제 남편처럼 하반신 마비인데, 홀몸이어서 간병인도 없었습니다. 제가 빨래도 해드리고 손발이 돼드렸어요. 같은 병실에 있던 두 남자를 업어서 운전면허 시험장에 데려다줘서 면허시험에도 합격했고, 지금은 차를 몰고 다닙니다. 제가 우리 아저씨(남편)도 만날 업고 다니는데, 남자라고 못 업을 게 없죠.”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와 남편에게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들 부부의 낙이다. 이 씨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공을 가족에게 돌린다.
“남편 덕분에 남을 돌아볼 힘이 생겼어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제 딸도 빨래 도우미를 시작했대요. 가족들이 응원해주니 늘 고마워요. 힘이 닿으면 요양원을 만들어 오갈 데 없는 노인 서너 분을 모셨으면 하는 게 제 꿈입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이 아이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위시데이’ 행사에서 이기석, 이윤열, 홍진호, 임요환 선수 외에 당시 유명 프로게이머들의 도움으로 아이가 멋진 프로게이머 데뷔식을 가졌습니다. 위시데이 행사가 끝나고, 다음 해 겨울엔가 아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위시데이를 함께 했던 봉사자들과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잘생긴 아이였는데, 마지막 가는 길이라 그런지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부어서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간호하다 지쳐서 저희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옆에서 쪽잠을 청하고 계셨고,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삭막한 병실 한쪽 벽에는 그날 우리가 찍어주었던 그 많은 감동의 사진들이 가득하더군요.”
임재순(34)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시데이 행사를 진행하기 전 몸이 많이 아팠는데, 막상 위시데이 장소에 와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임요환 선수도 만나고 자신의 꿈을 이룬다고 생각하니 여느 팔팔한 아이 못지않게 뛰어다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특허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임 씨가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 재단의 자원봉사자로 일한 것은 벌써 6년째다. 주로 20, 30대 직장인들인 자원봉사자들이 팀을 이뤄 아이를 찾아가 소원을 들어주는 이벤트를 벌이는데, 임 씨네 ‘위시 컴 트루’는 초창기부터 활동한 고참 팀으로 명성이 높다. 그동안 35명의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위시데이를 진행했고 뿌듯한 사연, 눈물겨운 사연이 차곡차곡 임 씨의 가슴속에 쌓였다.
한 아이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는 아이를 만나고, 소원을 찬찬히 듣고,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린다. 파일럿이 되고 싶은 아이를 위해 대한항공의 도움을 받아 제주행 비행기 조종석에 아이를 앉히고 전문 비행사 훈련을 받게 했는가 하면, 또 다른 아이를 위해서는 2박3일 일정으로 강원도 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위시데이 이벤트. 11월 27일에 임 씨네 팀은 테라피스트가 되고 싶다는 13세 소녀를 위해 ‘테라피스트 되기’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골육종을 앓는 이 소녀는 아토피 질환을 앓는 동생을 위해 천연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팀원들은 전문 테라피스트를 초빙해 강습을 받고, 소녀를 초대해 아로마 테라피스트 자격증을 주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임 씨는 이 봉사를 통해 자신도 얻는 게 많다고 말한다.
“한 아이의 소원을 집중해서 들어주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사람이 각양각색이듯 소원도 같은 게 없습니다. 다른 아이가 체험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 아이만을 위한 맞춤 소원을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단 하루 최고의 날을 위해 집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는 아이디어가 샘솟고 불가능해 보이는 소원도 현실이 됩니다. 저희 봉사 팀 ‘위시 컴 트루’라는 이름처럼요.”
글·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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