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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대담 - 신달자 시인·이원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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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시가 한자리에 만나면 시화(詩畵)가 된다던가. 베스트셀러 시집 <백치애인> <물 위의 여자> 등의 저자 신달자(66) 시인과 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로 이름 높은 이원복(64)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의 만남이 그러했다.

제4호 태풍 ‘뎬무’가 억수같이 비를 뿌리던 8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사회통합위원회(이하 사통위) 민간위원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과 자신의 암 투병까지 온갖 시련을 헤쳐온 신달자 시인은 고통과의 화해, 인간의 본질 찾기를 주제로 강연을 해오며 시인의 눈으로 우리 사회 이모저모를 바라봐왔다. 이 교수는 작품들이 대형서점 만화 코너가 아니라 인문교양·역사 코너에 꽂혀 있는 ‘만화가 아닌 만화가’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은 사통위 민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통위란 사회통합이 안 되니까 한번 제대로 해보라고 ‘멍석 깔아주는 자리’”라는 것이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의 이구동성이었다. 이제부터는 두 사람을 위한 멍석을 깔아볼 터다.
 

신달자 갈등이란 꼭 문제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말이죠.

이원복 맞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갈등 없는 나라는 없어요. 갈등을 찍어 누르지 않는 개방적인 나라일수록, 건강한 사회일수록 갈등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 속에 증오와 적개심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달자 갈등에도 질(質)이 있어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 내 것이 아니면 모든 것은 나쁘다고 본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의 질은 아주 걱정스러워요.

이원복 가장 큰 원죄는 분단에 있어요. 6·25전쟁을 전후해 얼마나 많이 죽고 죽였습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어떠한 갈등이든 ‘제로섬 게임’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내가 이겨야 살고, 남이 이기면 죽는다는 극단적인 고정관념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어떤 일에 대해서건 반대론자에 대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정서가 문제죠.

신달자 갈등 가운데 지역갈등의 골이 가장 깊다 싶어요. 어디서든 전라도냐 경상도냐 충청도냐를 따지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잖아요. 또 왜 날이 갈수록 행복해지지 않는가 하는 것도 문제예요. 대학 졸업을 해도 취직이 안 되니 삶의 질이 떨어져 불안하고.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남을 믿겠어요. 사회통합이 어렵습니다.

이원복 재미있는 것은 못사는 나라일수록 행복하다는 겁니다.

신달자 옛날엔 부자가 따로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땅값, 집값이 오르면서 누구나 부자가 됐어요. 같이 시래기만 먹던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벤츠를 타니, 이런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꿈도 희망도 사라지게 만들어 통합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요즘은 30년, 40년 못 본 친구도 딱 세 마디만 물으면 다 파악이 된다고 합니다. “어디 사냐” “어느 아파트냐” “차 뭐 타냐”.

이원복 우리나라는 평등 개념이 세계에서 제일 강해요. 서양에서는 누가 캐딜락 타고 지나가면 “저 차 좋다”고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짓해서 돈 벌었나’를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평등이 아니라 평등 갖고는 모자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균점(均霑)이란 말 아시죠? 똑같이 사과 3개를 줘도 남의 사과를 보고 ‘저 사과는 왜 내 거보다 좋은가’를 따져요. 똑같은 컵에 물을 담아주어야 말이 없어요. 하향평준화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나마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은 신세대입니다. 그들은 분단이나 이념에 덜 민감해 이념갈등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반복과 증오에 대해서도 자유롭습니다.

신달자 대신 신세대 사이에서는 다른 갈등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니 빈부격차가 심해지며 삶의 질이 떨어져 새로운 갈등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질이 떨어져 손쓸 수 없는 정도가 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화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원복 문제는 뻥 뚫리지 않는 것이죠.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계급제도가 완벽하게 무너진 곳도 없는데 이상하게 소통은 안 되고 있어요.

신달자 계급이 무너지면서 전통적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버렸어요. 어른도 존경하지 않고 선생님도 존경하지 않아요. 모든 관계가 인간 대 인간, 1 대 1의 관계가 돼버렸어요. 소통되지 않고 긴장만 고조되는 상태를 해소할 물꼬를 트지 않으면 인권마저 사라질 것 같아요.

이원복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와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교육에 있다고 봐요.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잠자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교육대국이라면서도 정작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잠을 잡니다.

신달자 제가 만약 교육담당 장관이 된다면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집도 하나씩 주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만 바르게 키워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가정교육도 겸비해야겠지만 초등학교 6년 동안 인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원복 요즘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인기더군요. 그 드라마를 보면 반죽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초등학교가 바로 인간을 만드는 반죽 과정입니다. 중고등학교는 굽는 단계고요.

신달자 콩나물국이 맛있으려면 콩나물 자체가 싱싱해야 하듯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사회가 되려면 사람이 올발라야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정상화해서 교육을 통해 좋은 품성을 길러야 합니다.

이원복 대한민국 교육을 망치는 주 요인이 과정을 무시한 선행학습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바로 엄마들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김치냉장고가 출시돼 정규 냉장고 판매 대수를 넘는 데 3년밖에 안 걸렸어요. 주부들, 엄마들의 힘이죠. 선행학습 역시 선지자적인 엄마들이 붐을 일으키고 흐름을 바꾼다면 해결할 수 있어요. 엄마들의 힘이 아니라면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몇 번 바뀌어도 절대 안 됩니다.

신달자 요즘은 여성들이 교육받고 직장 다니고 큰소리 치고, 남자는 약해졌다고들 하죠. 혹시 집 안에서 담배 피우세요?

이원복 집 안이라뇨. 전 옛날에 끊었어요.

신달자 여자들은 행복할까요? TV만 켜면 잘난 여자 나오지, 잡지만 펼쳐도 돈 번 여자 나오지, 참 살기 어려워요. 잘살고 못살고 하는 게 낱낱이 공개되니 비교되어 참 살기 힘듭니다. 시중에 나도는 우스갯소리인데 어느 여자가 동창회를 다녀와 핸드백을 남편에게 집어던지며 화를 버럭 내더래요. 남편이 “무슨 나쁜 말을 들었느냐” 했더니 여자 하는 말이 “남편 있는 여자가 나밖에 없단 말야” 그러더래요.(웃음)

이원복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따로 놀죠. 요즘 남자 노릇 참 어렵습니다. 1990년대에 ‘신세대’란 말이 나왔는데 이것도 안 맞는다고 해서 ‘신인간’이란 말이 나오더니 금방 또 ‘신인류’가 나왔어요. 내가 볼 때 인간의 모습만 비슷하지 요즘은 ‘신종족’이에요. 한마디로 ‘아바타’죠.

신달자 옛날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외계인’이라고 하더니 요즘은 ‘아바타’라고 하데요.(웃음) 아무튼 신종족이든 아바타든 가정의 화합과 소통이 굉장히 중요해요. 가정에서 되면 이웃하고도 되는 것이고, 경상도 전라도 지역하고도 되는 것이죠.

이원복 세대 간 ‘대화 코드’가 달라요. 우리 세대는 그림이 아니라 활자를 보고 자라 사고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데 요즘 세대는 그림을 보고 자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에요. 신세대에게 부모 세대의 코드를 이해하랄 수 없고, 결국 우리 부모 세대들이 풀어갈 수밖에 없어요.

신달자 예전에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모처럼 분위기 있게 대화 한번 해보자 하고 거실에 누운 남편을 꼬드겨 주방 식탁으로 불렀어요. 와인 잔을 부딪치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남편 한 마디, 나 한 마디, 남편이 한 마디 하고 끝이었어요. 딱 세 마디 끝에 남편이 버럭 소리 지르고 거실로 가버렸는데, 둘 다 똑같이 생각했죠. ‘어떤 놈은 되는지 몰라도 우리는 안 돼.’ 우리 국민 모두 우린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원복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아예 대화를 안 하려고 들어요. 우린 안 돼, 바로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국제행사에서 코리아란 이름을 달고 세계와 맞서면 모두 한국인으로 하나가 되는데 우리끼리만 있으면 삐걱거리고 갈라집니다.

신달자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에 가면 낯선 외국인과도 ‘하이’ 하고 인사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미친 사람이죠. 이원복 선생님 말씀처럼 모르는 이에 대한 경계심이 깊은 게 분단이나 6·25전쟁을 겪은 후유증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원복 사실 양극단으로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침묵하는 중간층이 넓어요. 외국에선 이러한 중간층을 자유주의자로 보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로 몰아요. 우리 사회의 갈등은 중간층이 마음 놓고 입을 열 분위기가 마련돼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다들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하지만 어느 정파나 정당, 사회단체들도 우리나라를 나쁘게 하기 위한 것은 없다고 봐요. 다만 ‘자기 식’으로 할 뿐이죠. 이를 이해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는 노력이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요.
 

신달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보면 다 훌륭한 사람들이에요. 엄마들을 보세요. 수능 100일 전부터 기도하는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수능시험이 한 일주일 남으면 봉은사에 남아나는 빗자루가 없대요. 아빠들은 수능 일주일 전부터 마당을 쓰는데, 자식 위한 마음에 남이 쓴 마당을 또 쓰는 거죠.

이원복 정말 열성적이고 대단한 나라예요.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단민국’입니다.

신달자 2002 한일월드컵 때도 외국인들이 다 놀랐잖습니까. 그래서 ‘코리아’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안답니다.

이원복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 하나 나오면 그 아래 딱 뭉칩니다. 예전엔 ‘잘살아보세’ 구호 아래 이렇게 경제발전을 이뤘잖아요.

신달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말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화두가 아직 맞는 것 같아요.

이원복 ‘잘살아보세’ 이후 국가적 슬로건이 사라졌어요. 이제 경제성장 이후를 이끌 국가적 슬로건이 필요합니다. 우리 국민이 공감할 비전이나 로드맵이 있어야 합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사랑받는 나라, 존경받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잘살아보세’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슬로건이어야 합니다.

신달자 새로운 비전과 로드맵은 인간의 질이 높아지고 꿈이 있는 나라를 향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분명 그것이 가능한 유전자가 있어요. 누군가 이끌어만 준다면, 우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라, 소통과 화합의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만 찾으면 될 것 같아요.
 

만화가와 시인의 만남. 얼핏 보면 이질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이날 대담은 우리 민족에겐 소통과 화합의 유전자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두 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어느덧 뎬무의 빗줄기는 잦아들고 있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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