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해외 진출한 G20세대들 "바이올린의 여왕이 되고 싶어요"




“세계인들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행복합니다. 저는 안네 소피 무터 같은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바이올린 여왕’이 되는 게 꿈이죠.”
 

강주미(24) 씨는 ‘G20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묻는다’ 행사에서 예술가 대표로 경험담을 발표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강 씨는 1990년 독일 만하임 음대 예비학교에 만 3세로 최연소 입학했고 다섯 살 때 함부르크 심포니와 협연하며 공식 데뷔했다. 그는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를 거쳐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역유학’을 왔다. 여기서 김남윤 교수에게 사사하며 각종 콩쿠르 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강 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2010년 10월 수상한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는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였고, 한국 음악인으로는 처음으로 1위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7년에는 티보 바가 3위, 2009년 독일 하노버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2위,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 1위를 수상했다.
 


그는 부모에게 예술가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버지 성악가 강병운 씨는 1980년대 유럽 무대에 진출했고 항상 ‘아시아인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주역을 맡았고 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정단원에 입단했다. 강 씨의 어머니는 소프라노 한민희 씨다.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음악하는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LP가 가득한 방에서 음악에 묻혀 살았다. “4남매가 모두 악기를 배웠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좋아했습니다. 네 살 때 연주했던 바이올린 레퍼토리는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강 씨는 1998년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마치고, 고2 때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유학 와서 대학 1학년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용어들은 이해하지 못해 2년가량 고생했습니다.”

 



7년간 다니며 예술사ㆍ전문사 학위 과정을 마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오는 2월 졸업한다. 이후에는 본거지를 독일 뮌헨으로 옮길 계획이다. “클래식을 더 대중화하고 한국을 알리려면 외국에서 활동해야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국내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자주 공연을 할 계획이에요.” 그의 올해 공연 스케줄은 이미 꽉 찼다. “1월 말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에번스 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4월에는 미국 8개 도시 투어를 합니다. 5월에는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바로 이어서 일본에서 협연을 합니다. 2012년에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1위 수상 특전으로 미국 카네기홀 연주도 잡혀 있습니다.”
 

올 9월에는 음반 녹음 작업에 들어간다. 유니버설 레이블에서 출시될 강주미 바이올린 솔로 작품집(무반주)을 위해서다. “레퍼토리 중 한 곡을 살짝 공개하면 에른스트 곡 ‘여름의 마지막 장미’입니다. 10분짜리 대곡인 데다 현란한 기교로 솔로 바이올리니스트 편곡으로는 웬만한 연주자가 하기에 부담스럽지만 자신 있습니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