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인의 힘이 돋보인 현장은 한두 곳이 아니다. ‘마린보이’ 박태환은 아시아인으로는 무려 72년 만에 올림픽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박태환의 금메달은 단순한 올림픽 금메달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수영·육상 등 기초종목은 미국·호주 등 선진국의 텃밭이었다. 하지만 이번 금메달로 대한민국은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의 궁사들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는 마찬가지. 특히 88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베이징올림픽까지 6회 연속 금메달을 따낸 여자양궁 대표팀은 ‘신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한민국 여자양궁 대표팀을 챔피언 방어에 성공한 역대 최강팀”이라고 보도했고, 우리나라에 패해 2위를 차지한 중국의 시사통신은 “한국은 6연패한 거침없는 폭풍과 같은팀”이라고 묘사했다. 영국의 BBC는 아예 실력있는 전문가들을 패널로 참석시켜 최첨단 훈련방식을 도입한 것과 정신적·물리적, 그리고 영적인 영역까지 단련하고 있는 선수들의 자세까지 언급하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경기 매너와 의식수준에서도 대한민국 선수단은 선진일류 국가를 향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자 양궁팀은 일부 중국 관중의 매너 없는 행동과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올림픽 6연패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유도 왕기춘과 역도 이배영의 부상 투혼은 한국인의 혼이 살아있음을 각인시켰다. 왕기춘은 준준결승에서 갈비뼈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으나 부상을 참고 자랑스러운 은메달을 따냈다. 이배영도 다리에 쥐가 났지만 끝까지 바를 놓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또 펜싱의 남현희는 155㎝라는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170㎝가 넘는 유럽선수들을 밀어제치며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이처럼 선수들이 값진 투혼을 보이자 국민들의 성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네티즌은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에 “수고했다. 긴장 풀려서 몸살나는 것 아니냐”며 “푹 쉬고 이젠 또다른 도전을 위해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을 딴 장미란의 미니홈피에도 방문객들의 방문이 급증했다. 한 방문객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니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대견해 했다.
왕기춘과 이배영에게도 투혼에 박수를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왕기춘의 홈피를 찾은 한 방문객은 “괜찮아요 너무나 잘하셨어요. 이제 담 올림픽에 금메달 따주세요”하며 격려와 바람을 밝혔고 이배영의 홈피에는 “부상 투혼!! 진짜 멋있었어요”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이같은 저력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88서울올림픽’, ‘2002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대회를 치르며 생겨난 역량이 베이징의 저력으로 나타난 것이다.
1988년 대한민국은 ‘평화·조화·전진’이라는 표어 아래 제24회 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했다. 남북 분단의 현실과 약소민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발도상국가로서는 첫 번째,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인류의 종합축제인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40억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사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결정될 당시만 해도 전세계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폐회식에서 “훌륭하고 완벽한 대회였다”고 찬사를 보내는 등 올림픽을 치러낸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전쟁과 정치적 불안 국가로 알려졌던 한국이 세계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고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알 수 있게 되면서 시민들은 올림픽을 통해 서울에서 세계를 만났고, 세계 속의 서울을 보면서 잠재해 있던 시민정신을 발현시켰던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4년 뒤인 2002년 열린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의 신화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붉은 악마가 열띤 응원을 펼치면서, 한국의 하나된 저력과 경기 응원을 축제로 승화시켜 서울 거리를 가득 메웠던 모습을 통해 세계의 사람들에게 한국을 널리 알렸다.
새천년 처음 열린 월드컵의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일본과 공동개최했지만, 세계의 이목은 한국으로 쏠렸다. 2002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다시 한 번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민이 하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시 4700만 국민 모두는 하나였다. 온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한반도 전역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 함성 속엔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온국민은 용광로처럼 타올랐고, 그 속에선 너와 나의 경계가 녹아버렸다. 대신 한국인임을 서로 자랑스러워하는 자부심이 생겼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는 또 다시 한국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잠재된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에는 세계의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경기에 졌어도 상대방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 나라 국기를 흔들어주는 성숙한 응원문화는 훌리건에 익숙한 유럽의 국민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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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