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문과 홍채만으로 신원을 자동 인식하는 시스템이 일반 가정에까지 보편화된다. 지능을 갖춘 로봇이 모든 생활 편의를 제공하며 감정까지 주고받는 인간의 동반자로 자리 잡는다. 노트북과 휴대전화는 종이처럼 접거나 말아서 들고 다닌다. 가상 아바타를 통한 ‘세컨드 라이프’도 일반화된다. 세컨드 라이프는 인터넷 기반의 가상세계로 그 안에서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파티를 즐기는 등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공상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글로벌프런티어사업의 과제들이 실용화됐을 때의 미래 청사진이다. 2008년 사전기획과 2009년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올해부터 본격 추진되는 글로벌프런티어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선도기술 개발사업(G7 프로젝트), 21세기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의 뒤를 잇는 장기 국책 연구사업이다.
세계 일류의 기초·원천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총 1조5천억~2조원을 들여 연구단별로 9년간 연 1백억~3백억원을 지원한다.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톱 브랜드 구축(Global R&D)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기초·원천기술의 장기 연구(Ground-Breaking) ▲전략적인 집단 융합연구 및 네트워크 구축(Group Approach) ▲원천기술 확보를 통한 미래 성장동력 마련(Growth & Sustainability)을 기본 철학으로 한다.
사업 시행 첫해인 올해는 3개 연구단을 선정한다. 현재 최종 과제 선정을 앞두고 ▲맞춤의료 NBIT(Nano Bio Information Technology) 융합 테라그노시스 ▲지능형 바이오 합성 및 설계 ▲탄소순환형 바이오매스 생산 및 전환 ▲현실과 가상의 통합을 위한 인체감응 솔루션 ▲인체감응 지능형 나노융합 시스템 ▲인간친화형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혁신형 의약 바이오 컨버전스 등 7개 과제가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글로벌프런티어사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 선진국 추격형 연구개발(R&D)에서 벗어나 선도형 R&D를 추진해나간다는 점을 들었다. 10년 뒤 미래사회의 주요 이슈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발전 잠재력이 크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분야에 집중하는 한편 모방 연구나 개량 연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무엇보다 기초·원천기술 분야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들 7개 과제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간과 기술 간의 유기적 결합, 즉 ‘휴먼 3.0’이 우리 과학기술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했음을 알 수 있다. 원시 인간상을 휴먼 1.0, 산업혁명 이후 인간상을 휴먼 2.0이라고 한다면 휴먼 3.0은 로봇공학, 생명공학 등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몸과 기술의 경계가 무뎌지는 시대의 인간상을 표현한 신조어다.
‘현실과 가상의 통합을 위한 인체감응 솔루션’은 가상사회에서 인간과 인공물이 실시간으로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최근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스마트폰이나 증강현실 등이 대표적인 예. 이보다 더 수준 높은 인체감응 솔루션이 개발된다면 사용자의 뇌파로 감정을 읽어내 컴퓨터에 연결해주는 휴먼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과 자동신원인식 시스템, 가상 아바타 등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상황들이 모두 현실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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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감응 지능형 나노융합 시스템’은 인체의 외부와 생체 정보를 감지 처리하고 이에 적절히 응답하는 인체 상호작용 멀티스케일 나노융합 시스템.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의 기술을 접목한 메카트로닉스와 바이오, 나노, 의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인체의 감각·운동·면역·대사능력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을 한다. 이 시스템이 개발되면 인체와 기계가 서로 감응해 정보를 교환하는 기술, 휴대용 인간감응 슈퍼지능 나노소자 기술 등이 선보일 전망이다.
생명 메커니즘을 공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지능형 바이오 합성 및 설계’는 인공 바이오부품, 유전자 회로 등을 장착한 인공 세포를 통해 다목적 인공지능 생명체를 개발하는 합성생물학 프로젝트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생명 연장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환자의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재의 치료 방식은 특정한 약물에 대한 부작용을 유발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치료 방식이 질병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고, 개인별 맞춤의학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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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핵심 과제가 바로 NBIT 융합 의료소재와 맞춤형 의료기술을 접목하는 ‘맞춤의료 NBIT 융합 테라그노시스’다.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이 동시에 가능한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 기술은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개발되며 나노의학을 주도하고 있다.
이 과제가 실현되면 유전자, 단백질 등에 대한 정보 분석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개개인의 유전자와 단백질 정보를 반영한 맞춤형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진다. 말 그대로 개인 유전체 분석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탄소 순환형 차세대 바이오매스 생산 및 전환기술’은 광합성에 의해 생성된 유기성 생물체인 바이오매스에서 연료와 소재를 생산하는 친환경 기술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 기술개발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연구가 한창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기 상용화에만 목적을 두고 소규모의 산발적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선진국을 따라하는 추격형 R&D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학문 분야를 융합하고 결집해 바이오매스 원천기술 R&D에 집중하자는 취지에서 탄소 순환형 차세대 바이오매스 생산 및 전환기술이 주요 과제로 선정됐다.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혁신형 의약 바이오 컨버전스’는 신약개발에 대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해 질환의 예측과 치료를 모두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바이오융합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는 과제. 이를 통해 신약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성공률을 높임으로써 글로벌 의약 바이오 기술을 선도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 밖에 2020년 5백억 달러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인간 친화형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분야도 미래 한국의 먹을거리 후보에 올랐다. 소프트 일렉트로닉스는 손에 감고 다니는 신문, 접을 수 있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종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등을 만들기 위한 부드럽고 유연한 전자소자와 전자소재, 기기 제조공정을 개발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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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그동안 이 분야의 소규모 원천기술 연구에 지속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연구 역량을 충분히 끌어올린 상태로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 다만 기업에서는 신축성과 유연성이 뛰어나 미래형 플렉시블 전자기기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Graphene)이나 저가형 투명 산화물 나노소재와 관련해 소재의 성장기술 확보와 소자적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수준의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들 7개 후보 과제 가운데 2010년도 추진과제 3개와 연구단장을 오는 7월 국가과학자 8명으로 구성된 글로벌프런티어사업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핵심 역량이 집중되는 미래 도전과제를 국가과학자들의 안목을 빌려 선정하기는 이번이 처음.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2021년까지 총 15개 과제를 선정해 최종적으로 5개 이상의 세계적 기초·원천기술 연구거점을 구축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박항식 기초연구정책관은 “G7 프로젝트와 21세기프런티어사업이 한국형 원전(原電), 세계 최초의 차세대 플래시 메모리 등을 개발해 지금의 먹을거리를 만들어준 것처럼 글로벌프런티어 사업도 10~20년 후 중요한 먹을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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