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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재조명



 

“우리 여자가 없으면 세계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우리 민족을 구성하지 못할 것이다…한국의 현실을 볼 때에 국망(國亡) 30년 동안 조국광복과 민족의 자유를 위하여 맹렬한 활동을 한 것은 주로 남자 동지들이고 여성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럽다. 그러니 남녀평등과 여권을 찾으려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국가와 사회의 임무를 져야만 하며, 바로 지금이 여자들에게 그 기회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발간한 기관지 <광복>의 창간호(1941년)에 실린 ‘한국 여성 동지들에게 일언(一言)을 들림’이라는 기고문의 일부다.

단호한 필치로 여성들도 조국광복 활동에 나설 것을 독려한 이 글의 필자는 여성 광복군 오광심 선생. 한국이 일제에 강제병합된 1910년 평북 선천군에서 출생한 오 선생은 요녕성으로 이주해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에서 설립한 민족학교를 졸업한 후 20대 초반부터 광복 때까지 줄곧 독립운동에 투신한 여장부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연구사에 따르면 오광심 선생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남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조선혁명당 소속 조선혁명군(남만주 지역 독립운동군)의 비밀 연락책으로 활약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전선 청년공작대에서 중국의 문화단체와 협력해 항일 선전활동을 벌였다.

그 후 한국광복군 모병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했는데, 1945년 3월까지 약 3년간 오 선생이 속한 한국광복군 초모(招募)위원회에서 길러낸 한국광복군은 전체 한국광복군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성과가 뛰어났다. 오광심 선생은 1977년 독립유공자 최고의 서훈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며, 지난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재조명받기도 했다.

정부는 오광심 선생처럼 이미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를 재조명하는 작업과 함께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유공자들의 발자취도 새롭게 찾고 있다.

지난 3·1절 91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이경호 선생은 황해도 옹진군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 체포되어 7년 넘게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공채를 판매하고 만주에서 비밀결사 대원으로 활약하던 이경호 선생은 1930년 체포돼 복역하다 병고를 얻어 순국했다. 한편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이정국 선생은 중국 간도에서 국민회 경호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뒤 감옥을 탈출하려다 살해돼 순국했다. 이들과 함께 3·1절 91주년 기념식에서는 1백5명의 독립유공자들이 훈장, 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해외 사료를 바탕으로 미발굴 독립유공자를 찾는 작업도 활발하다. 지난 3월 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자료를 확보했는데, 이 자료에 언급된 2백28명의 독립운동가 중 89명은 이번에 처음으로 독립운동 사실이 밝혀졌다.

앞서 2월에는 일제강점기 간도 지역 일본영사관이 작성한 문건을 확보했는데, 여기에 실린 독립운동 관련 명단 2백1명 중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외국인의 사례도 발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46명의 외국인이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았다. 서훈자의 국적은 중국 31명, 영국 6명, 미국 4명, 아일랜드 3명, 캐나다와 일본 각 1명.

올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윌리엄 린튼 선생도 독립운동의 숨은 지원자다. 1912년 선교사로 한국에 온 린튼 선생은 전북 옥구 영명학교 교장 재직 당시 군산의 3·1만세운동을 뒤에서 돕고,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 선생은 한국 독립운동가를 변론해 무죄를 주장하는 등 항일운동을 적극 옹호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인으로는 유일무이하게 2004년 건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는 국내외에서 독립유공자를 찾아 포상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05년 출범한 전문사료발굴분석단은 국내외 독립운동 사료를 수집 발굴하는 곳이다. 분석단은 대상자의 공적서를 검토한 후 한국 근현대사 전공 학자들로 구성된 독립유공자 서훈공적심사위원회에 의뢰한다.
 

심사위원회에서 포상자로 의결되면 행정안전부가 포상 추천을 하고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로 포상이 결정된다. 그 결과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독립유공 포상자 2천2백37명 중 73.3퍼센트인 1천6백39명을 포상했다.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김성민 박사는 “국내외 독립운동 사료를 샅샅이 발굴해 단 1명의 독립유공자도 포상에서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수집 후 공인된 사료는 공훈자료사료관 홈페이지에서 원문 그대로 제공한다. 현재 약 1백50만 장에 이르는 방대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올라와 있다.


글·최은숙 기자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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