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유엔 21개국 해외 참전용사 찍는 사진작가 이병용

제목 없음 제목 없음



 

결혼한 지 꼭 6개월 만이었다. 먼 타국으로 떠난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전장에서 꼭 살아오겠다던 남편은 주검도 찾을 길 없이 먼지로 사라졌다. 신부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짧지만 행복했던 신혼생활이 꿈처럼 떠올랐다. 그렇게 59년이 흘렀다. 모진 세월이었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와 마주친 사진작가 이병용(53) 씨의 뷰파인더가 점점 흐려졌다. 자꾸만 목이 잠기고 눈물이 맺혔다. 깊게 팬 주름과 슬픈 눈망울만으로 가슴속 깊은 한(恨)을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미망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자랑스러워요.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도우러 가서 전사한 남편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이 씨는 그 순간에야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터키 등 6·25전쟁에 참가한 유엔군 용사들과 그 가족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병용 작가. 그는 2007년부터 유엔 21개 참전국은 물론 당시 총을 맞대고 싸운 북한, 중국, 소련의 참전용사까지 모두 만나보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이 계획은 운명처럼 그를 찾아왔다.

“2006년 소송 끝에 어렵사리 보험금을 받게 됐어요. 이 돈으로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그해 가을 우연히 에티오피아에서 온 참전용사와 그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우리가 6·25의 아픔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외 참전용사들을 찾아가 그들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혼자서 모든 작업을 준비했다. 2007년 4월 18일 에티오피아로 떠나 50일간 머물렀다. 처음엔 늙고 병든 참전용사들 앞에서 눈물이 맺히고 목이 잠겨 촬영 포즈를 요구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가슴이 미어졌다. 끊임없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그들의 고단한 삶 때문이었다.
 

“이게 그곳 벼룩시장에서 사온 훈장들입니다. 목숨 내놓고 싸운 전장에서 받은 유일한 ‘증거’인데, 형편이 어려우니 끼니라도 때우려고 내다판 거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참전의 대가로 집과 땅을 얻었지만, 36년 전 일어난 쿠데타로 모든 것을 빼앗겼어요.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준 그들이 이토록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에티오피아를 다녀온 뒤엔 터키를 두 번째 방문국으로 잡았다. 지금까지도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는 참전국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간 터키는 그 후 네 차례나 더 찾았을 만큼 그에게 뜻깊은 나라가 됐다.

“터키에선 참전용사들을 아주 명예롭게 예우합니다. 참전용사임을 알리는 표지와 모자를 쓴 할아버지들이 보이면 멀리서도 아이들이 달려와 손등에 키스를 하고 이마를 갖다대며 반갑게 인사를 하죠. 참전용사들도 6·25에 참전한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고요.”

6·25는 우리 땅에만 비극을 남기지 않았다. 전 세계 참전용사들의 가족에게도 생이별의 처절한 고통을 남겼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을 잃은 터키의 아이세(83) 할머니 앞에서는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결혼식 사진조차 없는 할머니를 위해 그는 59년 전 전사한 남편의 증명사진을 확대하고 그 옆에 할머니 사진을 넣어 선물했다. 지난 5월, 네 번째로 터키에 갈 때는 남편이 묻혀 있는 부산 유엔공원의 흙을 가져다줬다.

“그나마 생존한 참전용사들의 삶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싸운 전쟁을 기억하고 그들의 남은 삶을 응원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앞으로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2020년 이 프로젝트를 완성해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언제까지나 기리고 싶어요.”
 

글·김민지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