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기지 근처 울창한 숲 사이로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듯 독특한 디자인의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띈다. 2006년 문을 연 국립해병대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Marine Corps)이다. 건물이 옆으로 기울게 디자인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5년 2월 5천9백31명의 미 해병대원들이 전사한 일본 이오지마 전투를 기리기 위해서다. 쓰러져가는 성조기를 힘겹게 세우는 미 해병의 모습을 본뜬 국립해병대박물관의 상징이다.
크리스마스만 빼고 1년 내내 개관하는 이곳은 초중고생들에겐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생생한 교육현장이다. 또 머리가 허옇게 바래버린 퇴역군인들이 가족과 함께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해병대박물관에선 1775년 발족한 미 해병대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11만1천 평방피트를 차지하는 광활한 곳에 터를 잡은 해병대박물관은 부지를 20만 평방피트로 늘리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미 해병 헤리티지재단이 앞장서 건립을 주도하고 대기업을 비롯해 재단과 개인들로부터 6천만 달러를 모금해 박물관을 완공했다. 운영은 정부가 맡고 있지만, 재원은 대부분 민간에서 조달하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싼 기념공원에 들어서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라고 새겨진 큼지막한 조각판이 눈에 띈다. 주변을 둘러싼 벽돌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해병들의 이름과 이들을 추모하는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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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해병 출신으로 박물관 홍보책임을 맡고 있는 아담스 씨는 “벽돌 한 장에 이름을 새기려면 2백 달러가 든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에 동참해 박물관 운영재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입구에서 관람객들에게 박물관 안내지도를 나눠주던 블랙 병장은 “해병 복장을 하고 밖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고마움을 표시한다”며 “식당에 가면 공짜로 음료수를 주기도 하고, 아예 식비를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해병은 자유와 권리를 위해 가장 먼저 나서 싸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치게 되는 전시관에 걸려 있는 문구다. 이곳에선 해병대 입소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머리를 짧게 깎고 힘찬 구령을 외치는 해병 지원자들이 수송 버스를 타는 장면이 실물 크기 조각상과 함께 비디오 화면에 생생하게 나온다. 마이크에서 울려퍼지는 요란한 복창 소리 때문에 실제 해병대 입소식에 온 듯하다.
박물관에는 미 해병대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념관이 3개 있다. 2차 세계대전기념관과 한국전쟁기념관, 그리고 베트남전쟁기념관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일본 이오지마 전투는 미 해병대뿐 아니라 세계전쟁사에서도 큰 기록으로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기념관에는 당시 전사한 해병 5천9백31명의 계급장 배지가 전시돼 있다.
아담스 씨는 “사상 최악의 이오지마 전투에서 전사한 미 해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들이 착용한 것과 똑같은 모양의 계급장 배지를 전시했다”고 말했다. 
“손과 발이 꽁꽁 얼어 모두 마비가 됐다. 뼈끝에 사무치는 추위가 엄습했다. 그렇게 많이 떤 것은 처음이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 7해병대 소속의 조지프 오언 중위가 남긴 글이다. 한국전쟁기념관에는 엄동설한에 10만명의 중공군이 미 해병 2만명을 공격한 ‘창진 전투’를 실감 나게 재현해 놓았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당시 살을 에는 추위를 관람객들이 느끼도록 하기 위해 찬 공기가 나온다. 인해전술에 나선 중공군에 고군분투하는 미 해병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1해병대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인 더글러스 윙은 “어떤 해병도 이처럼 열악한 기후에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고 적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 해병은 4천2백67명, 부상자는 2만3천7백4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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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로비 중앙에는 전쟁에서 탁월한 공을 쌓아 대통령에게 명예의 메달(Medal of Honor)을 받은 해병들의 사진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1775년 미 해병대 창설 이후 명예의 메달을 받은 해병들의 사진이 모두 걸려 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및 베트남전쟁 당시 이 메달을 받은 해병이 많았지만, 1974년 이후 명예의 메달을 받은 해병은 단 한 명뿐이다.
부인과 함께 콜로라도에서 올라온 노년의 한 신사는 기자에게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미 공군에 복무하면서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을 돌아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1968년 9개월 동안 한국 군산에서 헬리콥터 구조 등 한국군 지원활동을 했는데, 그때도 한국전쟁은 사실상 끝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이곳에 와보니 당시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고 말했다.
박물관에서 만난 테런스 루이스 예비역 소령은 23년 동안 미 육군에 복무하다 지금은 워싱턴 공립고교인 IDEA군사아카데미 교감으로 일하고 있다.
학생들의 박물관 방문을 위해 현지답사를 온 루이스 씨는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육군 보병으로 복무하면서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파나마 등지에서 특공대로 뛰었다”며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한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 해병의 역사는 바로 미국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글과 사진·최영해(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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