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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1101호

전문가 제언 - 안병진 동서대 교수







공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많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는 실용성을 전제한 공공디자인이 자리 잡고 있다.
 

공공 영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공공디자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디자인의 균형 발전을 이끌게 된다. 이는 선진 사회의 필수조건 중 하나인 디자인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공공디자인이 경쟁력을 갖추면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해 물질적, 정신적 안정감을 더할 수 있다. 결국 공공디자인은 서로를 배려하는 바람직한 사회를 유도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수요자 중심의 디자인이다. 공공디자인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공간은 공원, 광장, 버스 정류장, 쓰레기통, 보도, 가로등, 벤치, 광고물, 교통 표지판, 여권, 경찰 제복, 행정 서식 등 그 수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래서 시각, 건축, 패션, 프로덕트, 인테리어, IT분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수요자 중심의 디자인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공공디자인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우리보다 앞서 공공디자인을 국가 차원에서 유도한 미국은 1990년 초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법에 의해 공공디자인의 구체적 기준인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7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어떠한 사용자라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Equitable Use) △광범위한 개인적 기호와 능력에 맞을 것(Flexibility in Use) △직관에 의한 사용이 가능토록 할 것(Simple, Intuitive Use) △어떤 상황에서도 지각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질 것(Perceptible Information) △오작동에 의한 위험과 실수를 최소화할 것(Tolerance for Error) △피로 등의 신체부담을 최소화할 것(Low Physical Effort) △적당한 공간의 크기를 지닐 것(Size and Space for Approach and Use) 등이다.
 

또한 유럽에선 스웨덴,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디자인 포 올(Design for All)’이란 시스템을 통해 디자인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재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 두 시스템이 서구 ‘공공디자인’의 이전 개념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공공디자인의 필요성과 인식이 강화되어 수많은 디자인 활동을 통해 상업 목적의 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의 질적 차이를 뛰어 넘은 ‘수요자 중심의 앞선 공공디자인’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 이러한 선례는 디자인 활동에 자극을 주어 수요자를 위한 디자인이 생산되고 소비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공공디자인을 21세기를 이끌어갈 ‘문화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디자이너와 정책가들은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각 분야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공공디자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공공디자인 운용에 있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영국의 건축·건조환경위원회(CABE)가 내놓은 ‘스페이스셰이퍼(Space shaper)’의 8가지 부문의 평가기준이다. △공간의 동선과 배치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가(Access) △이 공간이 제공하는 활동과 기회들은 무엇인가(Use) △공간이 서로 다른 필요성들을 충족시키는가(Other People) △공간이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될 수 있는가(Maintenance) △공간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한가(Environment) △공간의 외관은 어떠하며, 사용된 소재는 무엇인가(Design and Appearance) △지역 주민에게 있어 이 공간이 지니는 중요성은 무엇인가(Community) △이 공간에 대한 개별 평가자의 느낌과 감상은 어떠한가(You) 등 8가지 평가기준에 따른 41개 항목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전문가뿐만이 아닌 일반인도 쉽게 참여 가능한 공공디자인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앞으로 각 지자체와 정부 부처에서 ‘공공디자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이 같은 노력을 통해 ‘과정’에서부터 다양성을 수용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디자인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리라 기대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디자인 관련 사업들은 디자인의 유효성을 인식한 디자이너와 관계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외적인 것에만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다수의 생활 속 디자인을 통해 다양한 문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사회구성원에게는 그것을 제대로 아끼고 지키는 책임이 주어진다.

 


 

지금까지의 공공디자인은 그 특수성 때문에 트렌드를 무시하거나 객관성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문화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디자인을 이루는 디자인의 주관성과 객관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좀 더 쾌적하고 안전하며 아름다운 공공디자인을 만들어가야 한다. 공공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바람직한 사회를 유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공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작업이다. 더구나 공공디자인은 디자인이라는 예(藝)라는 행위를 예(禮)의 관념에서 꺼내어 아름답게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오래전에는 예(禮)가 상류층만을 위한 행동규제 규칙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상호존중 의미의 생활규범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 공공디자인의 기준이 아닐까 싶다.
 

공공디자인이 상징화된 공원을 한번 상상해보자. 나무와 구름이 반영돼 디자인된 공원에는 하얀 구름 모양의 벤치가 놓여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고, 공원 바닥은 저녁 하늘의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처럼 몽글몽글한 패턴으로 장식돼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또 보라색 수련꽃 모양의 가로등은 연인의 데이트를 더 운치 있게 만든다. 이런 상상들이 현실이 되는 것이 ‘공공디자인’이다.
 

10년, 20년 후 우리에게 만들어질 수많은 이야기들이 공공디자인과 함께 기억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서로가 함께 누리며 지킬 수 있는 공공디자인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글·안병진(동서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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