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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무한진화’ 농업에 기술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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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계 최초로 누에고치를 이용한 인공고막이 완성됐습니다.”

지난해 12월 농촌진흥청의 한 연구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1년 남짓 연구를 거듭한 결과 누에고치에서 추출한 천연실크로 인공고막을 만들어낸 것. 25년간 묵묵히 누에고치의 실크 단백질 성분을 연구해온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권해용 박사는 “누에고치 천연실크가 수술용 실로 쓰일 정도로 인체에 적합한 의학 소재라는 점에 주목해왔다”며 “누에고치의 실크 단백질을 새 영역에 응용해보자는 인식의 전환이 큰 결실을 봤다”고 말했다.

누에고치를 이용해 인공고막 소재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연구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양잠업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누에고치 천연실크 응용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한 우물 파기가 가능했다. 인공고막 시술은 자기 귀의 근육막을 떼어 수술하는 고막성형술, 고막 손상 정도가 작은 사람에게 고막 대신 패치를 끼우는 종이패치술로 나뉜다. 고막성형술은 수술 비용이 비싸고, 종이패치술은 고막재생 효율이 낮아 인공고막 소재 개발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권 박사는 인공고막 시제품을 들고 의료진을 거듭 설득한 결과 한림대 의료원과 공동 연구를 하게 됐다. 그리고 1년 만에 놀라운 성과를 얻어냈다. 누에고치에서 실크 단백질을 뽑아 투명한 필름 형태로 만든 실크 인공고막이 사람 고막과 두께가 비슷해 천공 고막시술에 적합한 강도를 갖췄다는 점, 생체적합성·투명성·유연성·감염저항성 등이 우수하다는 점, 종이패치술보다 고막 재생률이 1백37퍼센트 높다는 점, 시술이 간단해 고막 재생기간이 짧다는 점 등 다양한 장점을 찾아낸 것. 이 기술은 미국, 일본 등 5개국에 특허를 출원했으며 일반인들이 이른 시일 안에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나 내년쯤 임상실험에 착수할 계획이다. 권 박사는 “누에고치의 실크 단백질 활용이 본격화하면 바이오 소재로 새로이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 우리 양잠산업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3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양잠산업은 1960~70년대에 크게 번성했으나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생사 수입 규제조치와 중국의 덤핑 판매로 크게 위축됐다. 그러다 1995년을 기점으로 상당수 양잠농가가 누에고치 생산을 중단하고 양잠산물 생산으로 전환했다. 누에가 뽑아내는 실크를 단순한 ‘비단’이 아닌 ‘다양한 기능성 양잠산물 제품’으로 바꾼 것. 누에가루, 동충하초에 이어 2000년대부터는 실크 비누, 실크 화장품, 실크 치약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됐다. 2007년에는 학습 및 기억력 개선 효과가 있다는 ‘피브로인 BF-7’이 개발돼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최근 실크 인공고막과 실크 인공뼈 개발 연구 등이 성과를 거두면서 양잠산업을 통한 농업 바이오 기술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누에고치에서 추출되는 실크 단백질은 생체적합성이 우수해 인공뇌막과 인공 척추뼈 소재에도 적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용화 추진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누에를 ‘생체공장’으로 이용해 인간 조혈 촉진 단백질 등 바이오 신약을 생산하는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연구를 맡고 있는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구태원 박사는 “현재 두당 50원 정도인 누에고치 가격이 향후 바이오 신약 생산 누에가 보급되면 10배 이상 뛰어오를 것”이라며 “피부질환 치료제, 가축사료 첨가제 등 다양한 바이오 신약들을 개발해 첨단 양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렇듯 최근 농산자원은 먹을거리와 생업거리를 뛰어넘어 신물질과 신소재를 개발하는 등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평소 식생활만으로도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기능성 작물이 보급되고, 치료제로 사용되는 생물 신소재가 개발되면 농촌 살림살이는 물론 국민 삶의 질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먼저 기능성 작물의 연구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토종식물 유전자원을 포함해 국가적으로 중요도가 높고 가치 있는 자원을 대상으로 한 DNA 은행을 마련했다. 벼, 콩, 고추, 율무 등 우리나라 주요 재배작물 40가지와 토종자원 및 주요 개발품종 DNA를 안전하게 보존해 지속적인 이용과 개발이 가능하게끔 돕고 있다.

벼농사 활성화를 위한 세계 최대 벼 게놈 연구의 국가관리 체계도 구축됐다. 벼 유전자 4만여 개 중 1만5천 개에 대한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국내외 벼 관련 연구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유전자 기능 분석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스트레스 저항성 증진 벼, 영양성분 강화 등 소비자가 원하는 작물로 디자인해 미래형 육종으로 키워낼 수 있다.

이런 기능성 작물 중 눈에 띄는 것은 야맹증 등을 예방하는 비타민A를 만들어내는 황금쌀이다. 비타민A 구성성분인 베타카로틴을 생성하는 황금쌀은 2008년 고추의 색소 유전자를 벼에 접목하면서 개발됐다. 또 황금쌀을 보완하기 위해 다중유전자 동시발현 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다양한 기능성 컬러쌀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물 신소재 개발 분야는 요즘 각광받는 첨단 농업기술 분야 중 하나. 실크 인공고막을 시작으로 누에고치와 같은 곤충을 이용한 첨단 과학농업 기술이 물꼬를 틔우고 있다. 벌의 독성분(蜂毒)을 대량 생산하고 분리 정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이용한 가축용 천연항생제도 만들어냈다. 쇠똥구리가 지닌 펩타이드성 생체방어물질인 ‘코프리신’을 이용한 염증질환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곤충 면역반응의 일환으로 분비되는 코프리신은 사람과 작물의 질병에도 효과가 있어 항생제, 항염제, 항암제 등으로 보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생물을 활용해 병해충을 없애는 기술도 보급을 앞두고 있다. 식물의 면역력을 높이고 식물 생장을 촉진하는 미생물 바이러스 EXTN-1을 오이의 잎과 토양에 뿌려줬더니 오이무름병은 90퍼센트가 방제되는 효과를 나타냈다. 이 바이러스는 친환경, 무농약 신선 채소 생산지를 중심으로 대량 보급할 예정이다.





 

인삼 등 국산 약초와 감귤을 소재로 개발하는 의약품 등도 생물 신소재 개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는 과제들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김영옥 박사는 “인삼엔 중풍에 의한 뇌신경세포 손상을 보호하는 사포닌 성분이 있다”며 “임상실험이 끝나는 대로 뇌졸중과 치매를 예방하는 의약품 소재로 개발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박사는 “미백기능성 천연물소재, 한방원료추출물인 황기, 당귀 등 국산 약초 소재에 나노생명공학을 결합한 화장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감귤 껍질로 사람의 피부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인공피부용 겔을 만드는 연구도 결실을 봤다. 감귤 껍질로 발생하는 쓰레기 처리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어 부가가치만 1백45억원에 이른다는 이 기술은 화상치료용 피부 등 새로운 산업소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영양크림, 얼굴팩 등 화장품을 만드는 데도 활용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최영훈 연구관은 이에 대해 “잉여농산물과 부산물을 부가가치가 높게 만들기 위한 매우 유용한 기술”이라며 “감귤 껍질 겔은 스피커 울림판 등 정보기술(IT)과 연계된 기술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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